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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Jul 01. 2024

평안하더라

#2024. 06.30  #worship ##wooridle

올해 2월에 심정지로 잠깐 다른 세상에 다녀온 터라, 두 번째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때 중요한 것들을 우선시하는 변화가 많이 생겼다. 근심과 걱정보다는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평안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오늘 말씀은 온 성이 평안한 것에 대해 들어보고 묵상하는 시간이다. 


제목 : 온 성이 평안하더라

말씀 : 왕하 11:13~21 (김양재 목사님)


온 성이 평안하려면?


1. 진정한 반역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왕의 씨인 요아스는 왕위에 올랐습니다. 요아스가 왕위에 올라 "왕의 만세"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달랴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바알의 집이 있었기에 여호와를 섬기는 성전에 들어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왕의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그 성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보니 7살 꼬마가 있었고, 백성들이 그를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달랴는 멀리서 나는 소리를 현장에 와서 보고, 체면도 중요치 않고 옷을 찢고 '반역이로다'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온 국민은 그것을 즐거워합니다. 아달랴 혼자만 괴롭고 분이 나는데, 온 국민은 즐거워하는 반역입니다.

여호야다가 그동안 6년간 숨죽이며 지내다가 7년째에 드디어 행동을 합니다. 아달랴를 죽이라 하되, 성전에서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군사들 아달랴를 체포하여 왕실 마구간 앞에서 처형을 당합니다. 그 당시 교통수단은 말인데, 그 성전에 들어갈 때 걷지 않고 말을 타고 가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말이 다니는 길이었습니다.

아합 가문이 모두 죽고 이제 마지막 남은 아달랴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의 씨를 진멸하려 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아달랴는 다윗과 정 반대가 되어서, 성전에 가득한 즐거움에 전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반역이라고 외칩니다. 온 속이 평온할 때도 혼자 괴로운 것입니다. 요아스를 못 알아보는 것이 비극이고 슬픔입니다. 

평생 아무 말 안 하다가 또 반역을 해야 할 때는 구원 때문에 큰소리를 쳐야 합니다. 적용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큐티를 하면서 어떤 말씀도 나에게 나쁜 게 없습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받아야 합니다. 진정한 반역을 하는 사람은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목장에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순종 자체가 우상입니까? 때가 차매 구원을 위해 반역도 할 수 있나요?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가 즐겁고 목장이 기다려집니까? 아니면 늘 목장에서 즐거움에 녹아들지 못하고 반역이로다 외치고 있습니까?


2. 언약을 세워야 합니다.

여호야다가 처음 한 일은 반역을 위해 개혁을 한 것이고, 언약을 세우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도 둘이 언약하고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언약을 세워야 집안과 나라가 세워집니다. 

하나님 보다 높게 두는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눈에 보이는 우상을 아무리 깨뜨려도, 기복이 중심에 있으면 안 됩니다. 이게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는 것입니다. 아달랴는 바알을 믿어야 인생의 선물이 생긴다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맛단은 선물이란 뜻입니다. 우상을 철저히 죽이는 일은 하나님보다 좋아하는 세상, 욕심을 죽이는데 까지 나가야 합니니다. 

내 안에 가득한 욕심을 죽여야 하고, 인생의 목적을 세상 성공이 아닌 거룩에 두어야 합니다. 내가 큐티를 해야 하고, 구속사적 큐티를 하는 것이 창조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창조를 알아야 큐티를 제대로 알고, 언약의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로잡힌 모든 때를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구속사를 깨달아도 기복으로 나갑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은 어떤 선물이 제일 좋습니까? 어떤 선물에 마음을 쉽게 빼앗깁니까? 내가 깨뜨리기 너무 어려운 우상은 무엇입니까?


3. 내 역할에 충성해야 합니다.

아달랴에게 빼앗겼던 왕의 자리를 다윗의 후손이 다시 찾아야 합니다. 여호야다는 호위병을 거느리고 천부장과 제사장과 합니다. 가정마다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아달랴가 있습니다. '내가 저기에 앉아야 하는데' 하며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좌에 앉아 권세를 휘두르는 아달랴가 있고, 그 권세에 휘둘리는 내가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 가정에 영접해야 합니다. 콩가루 환경에서도 말씀 보는 한 사람이 되면 온 집안이 평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야다 한 사람이 말씀을 가까이 하니 온 국민이 즐거워합니다. 

조용한 역할, 맞서 일어서야 할 역할, 요아스 만세를 부르는 역할 등 때에 맞는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왕좌, 가정의 왕좌에 오시는 것은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7살짜리 꼬마가 왕좌에 앉았다고 어떻게 저 아이가 왕이냐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달랴가 왕으로 적합하다 생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과 행위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수없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온 성이 평안해지기 위해 7살 요아스, 98살 여호야다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평온이 오늘의 키워드입니다.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이 사건든 솔로몬의 통치가 복권되는 것 같은 대단한 일입니다. 평온 다는 것은 소란과 다툼이 끝나고, 하나님이 베푸신 것들을 인정하며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달랴 밑에서는 즐거움도 평온도 없습니다. 7살 요아스가 왕좌에 앉으니 즐거움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우리 가정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7살 요아스를 예수씨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내 안에 사는 이" : 제가 연주한 곡입니다~^^

https://youtu.be/gYbsOd4vNsk?si=FqgMLCtJiEkOvP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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