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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Jul 19. 2024

삶과 영혼의 무너진 곳을 세우는 과정

#2024. 07.14  #worship ##wooridle

한 번에 세워지지 않는다. 아주 오래 걸리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세워져 있다. 세우는 과정이 잘 되고 있는지 한 번씩 물어보고, 어떤 일이 왔을 때 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뒤를 돌아보면서 세워진 것들을 바라보며 감사하자~


제목 :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말씀 : 왕 12:4~16 (김양재 목사님)


중세 고딕 양식 대표적인 독일의 퀠른 성당이 있습니다. 성전이 계속 파손되고 수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수릭되었다고 해서 우리 영혼이 천국가지 못합니다. 우리 영혼의 성전이 수리되어야 합니다.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려면?


1. 교훈을 넘어서려는 마음을 수리해야 합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가 있는 동안 정직히 행했으나,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거하지 못한 요아스의 산당은 무엇일까요? 40년이나 나라를 다스린 요아스입니다. 40년 나라를 다스린 다윗이 행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같은 40년인데 요아스는 성전 수리와 산당예배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성전 수리 시에 이것을 지시하는 것은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해야 하는데, 100년 된 성전은 수리하라고 하는데 그냥 제사장을 불러서 합니다. 세 종류의 헌금을 모아서 성전세금으로 하여 수리하라고 하는데, 그 방법을 

아달랴의 박해로 제사장들이 자기 아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성전세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 방법을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상의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대제사장의 질서를 깨트린 것입니다. 이때 이미 그 질서와 교훈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찐 고아인 요아스의 입장에서 보면 여호야다를 배제하고 제치려는 게 이해가 되나요? 나이는 증조할아버지 뻘이 되는 90살 차이가 나는 요아스에겐 여호야다가 마음이 어렵고 눌리는 것입니다. 구속사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럼 공감도 분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요아스 네 마음에도 하면 안 됩니다. 무조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게 이 시대의 악함입니다. 인간은 불쌍할 수도 잘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모두 100% 죄인입니다. 구속사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항상 감동이 있고 인간은 죄인입니다.

여호야다는 산다을 제거하고자 했겠지만, 요아스는 왕이 되고 보니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편하게 예배를 드리라고 제거를 못했고, 백성과 요아스가 악한 마음으로 연합하고, 믿음보다 정치가 위에 있던 것입니다. 이러니 점점 인기가 높아졌지만, 결국 여호야다의 밑에 있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말씀이 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계속 승승장구하고 올라가지만 여호야다의 밑에 있으니, 야망이 올라가고, 권위가 올라가고, 자기 연민에 휩싸이니 결론은 여호야다를 제쳐야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힘이 부족하니, 여호야다를 제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공격을 요아스 혼자 하고 있습니다. 찐 고아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의 제치고자 하는 민족성으로 일본에 비해 무고죄가 500배가 넘고, 보이스 피싱도 아시아에서 가장 높습니다. 요아스는 산다 예배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엄청 믿음 좋아 보이는 성전 수리 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여호야다에게 잘 보이고자 했지만, 여호야다를 배제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이 것을 모두 알고, 여호야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기를 들 수 없습니다. 요아스가 왕이고, 여호야다는 대제사장이라 반기를 들지 못하고, 질서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질서를 깨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때를 기다리다가 23년에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서 왜 성전을 수리하지 아니하였는 말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여호야다를 같이 불러서 책망하며 혼을 냅니다. 하지만 이 말을 여호야다 한 명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모두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여호야다 한 명에게 혼을 내는 것입니다. 여호야다를 넘어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아무리 잘 만들면 뭐 합니까? 말씀을 넘어서려는 마음으로 내적인 성전을 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약자가 피해자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열등감을 느낍니까? 내가 넘어서고 싶고 제치고 싶은 사람은 누구?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2. 뜻대로 되는 게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사장들 앞에서 여호야다를 혼을 내고, 이제 성전 수리하는 것에서 손을 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돈을 안 받고, 성전 수리를 하지 않으라고 얘기하니, 제사장들도 모두 동의합니다. 그리고 성전 수리 2탄을 발표합니다. 

열왕기 기록은 요아스인 것은 역대기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혼내면서 새로운 성전 수리 계획을 명령했고, 여호야다는 순종하며 그 명령대로 합니다. 여호야다는 겉으로만 들어간 것입니다. 실제로 돈을 받는 것은 여호야다도, 제사장도 아닌 요아스가 명령한 사람들이 돈을 받아서 작업자들에게 다시 돈을 주어서 수리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수리가 척척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넘을 수 없었던 여호야다인데, 이렇게 한 순가에 넘어섰습니다. 이제 드디어 제쳤다고 요아스는 좋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직접 성전에서 돈을 넣는 것이 멋져 보이는 것이고, 이것이 포퓰리즘인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이 사건을 보니 요아스는 성전 수리를 멋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를 넘어서고,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후에게도 한계를 보면 금송아지를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여호나답은 광야로 떠났던 게 있었고, 요아스 역시 여호야다는 그런 그를 보면서 마음이 애통해하면서 요아스를 아프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요아스는 자기가 세운 사람이기에 반역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빈틈이 요아스를 말씀을 넘어서는 것을 보아도 뭐라고 할 수 없던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이 통치 23년을 기점으로 여호야다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이야기하면서 원하는 것을 다해주는 것, 인권이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형통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바탕이 파손된 상태라 형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축복이고, 고난이 축복인 것입니다. 고난을 겪어야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고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집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성전이 파손되었다고 슬퍼할게 아닙니다. 내 욕심과 탐욕과 정욕으로 살면 파손된 인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면 축복인 것입니다. 

(적용 질문) 내 뜻대로 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입니까? 뜻대로 술술 풀리게 되었다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적이 있습니까? 뜻대로 되는 게 축복이 아니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고난이 축복임을 믿습니까?


3.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성전에서 사용하는 모든 집기는 이것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이런 예배 물품들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성전을 수리하는데 쓰게 합니다. 성전이 중요합니까? 예배가 중요합니까? 성전은 예배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고, 예배가 목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비교 불가로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성전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게 있어야 여호야다를 확실히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30년 전 솔로몬이 성전 건축 이후 처음 있는 기념비적인 업적입니다. 요아스는 이 일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급한 일이 되니 요아스는 중요한 일들을 잃어버렸습니니다. 그리고 그에게 산당이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싶은 사람은 산당이 있잖아 하며 거기서 편하게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머릿속에서 성전은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자기를 빛낼 기념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예배드려야 할 원칙을 깨트렸습니다. 스스로 원칙을 어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 성전 수리에 쓴 돈을 회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수리하는 사람들이 성실히 일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정직하게 양심껏 예산을 집행했기 때문에 회계하지 않았습니다. 직원을 믿어주는 사장이고 상사였을 것입니다. 나이 많은 대제사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은 어떤 돈입니까? 이 은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돈이고, 성물입니다. 우리는 피 같은 헌금이라고 표현합니다. 귀하고 무겁게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용도로 누가 썼든 철저하게 관리하고 회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속건제의 은과 속죄죄의 은은 성전 수리에 쓰지 않고 제사장의 생활비로 준 것입니다. 제사장이 받는 생활비는 이렇게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은을 제사장의 생활빌로 주게 한 것입니다. 앞에서는 채찍을 내렸다면 이제는 당근을 준 것입니다. 아무리 성전 수리를 완전하게 한들, 어디에 쓸 수 있습니까? 건물이 번듯해도 자기 마음은 세상의 유혹대로 방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힘써야 할 성전은 우리 마음을 수리하는 것입니다. 이 첫걸음이 바로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파손된 내 영혼을 수리하는 것입니다. 

역할에 순종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양육, 선교, 예배 모든 것에도 원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쉽지 않았고,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훗날 어떻게 원칙을 지켜왔는지 다 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안다가 여호야다의 뜻입니다. 

저출산에 대한 원칙은 동성애, 낙태법을 막는 것인데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는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칙을 지키니 아이를 잘 낳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칙은 하나님의 원칙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돈 버는 게 위에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인 한 사람이 회복되니 낳고, 낳고의 교회가 회복된 것입니다. 처음 교회 왔을 때 파손된 성전이었는데, 붙어만 있었더니 이렇게 수리된 것입니다.


(적용 질문) 원칙을 지키는 게 편합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게 편합니까? 사소하게 여기며 잘 어기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가족들에게 내 맘대로 강요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느헤미야의 성벽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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