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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Aug 06. 2024

안식'(Sabbath, rest): '멈추다, 쉬다'

#2024. 07.28  #worship #wooridle

바쁜게 중요한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들을 위해 멈추고, 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속도가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보자.



제목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말씀 : 느 10:30~39 (정지훈 목사님)


느헤미야 6장에서 성벽 중수가 완성은 되었기에 느헤미야가 끝나도 될 것 같은데, 계속 이어집니다. 성벽 재건 이후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를 불러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적용합니다.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우자고 하면서 총 84명의 지도자 레위 인들이 인봉하고 적용을 하였고,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본문에서 강조되는 단어가 "우리 하나님의 전"입니다. 이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자녀를 불신 결혼 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스라엘 타락을 지적할 때 나오는 것이 불신 결혼입니다. 솔로몬도 1,000명의 첩을 거느리며 불신결혼을 하였고, 우상 숭배를 하였고, 그 시작점이 "불신 결혼" 이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 하였습니다. 거룩의 목적은 하나님께 있고, 행복의 목적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다른 표현은 가치관인데, 믿음이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 대한 가치관에서 나타납니다. 불신 결혼 후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 결혼을 하여도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신 결혼 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결혼의 목적이 거룩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늘 우리 가정과 자녀들을 공동체 속에 두어야 합니다. 말씀과 목장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부목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신앙의 유산입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가정을 구별하고 "신결혼" 하게끔 맹세합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세상에 놓아두십니까? 공동체에 놓아두십니까?


2.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이방인들이 이날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을 안 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때문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책임을 주십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가 거룩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안식입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나의 가치관이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이 안식입니다. 예배당 속에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교회 문만 나서면 세상의 가치관과 욕심에 흔들립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거룩한 가치관을 배웠다면 그것을 적용할 곳은 세상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원칙을 갖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것이 안식입니다. 세상은 복음을 보는 것은 우리의 모습과 삶을 통해 보게 됩니다.

각자의 훼파된 성전을 보고 회개하고, 그리고 그 성전을 다시 살리겠다고 애쓰고, 목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나가서 살려고 하는 모습이 삶으로 전하는 복음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안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인데, 하나님 나라의 계산과 세상의 계산이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계산은 모두 나를 위한 계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계산 방법은 밖을 향합니다. 내가 받은 복으로 신앙고백하며 이타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십니까?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했다고 들으시나요?


3.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고 나눠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적으로, 내가 인정받기 위해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하나님의 전이고,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지키시고 도와주셨다는 신앙 고백을 담을 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요아스도 성전을 재건하고 느헤미야도 재건했지만, 그 안의 내용이 다릅니다.

교훈을 받는 동안 요아스가 하나님 앞에 정직이 행했지만, 교훈을 떠나기 위해서 성전 수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성전을 수리하는 동안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성전을 잘 세워도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성벽 재건을 위해 쓴 분량보다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으나 밖으로는 산발란 도비야, 안쪽으로는 배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벽 재건은 하나님이 이루셨다고 고백합니다. 요시아는 원칙을 져 벼렸지만, 느헤미야는 달콤한 산발랏 도비야의 제안을 거절하고 원칙을 세우며 성전을 재건합니다. 우리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시켜 달라는 고백입니다. 헌금과 수고의 구체적인 적용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라고 31절에 쓰여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고, 말씀 듣고 적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는 것이고, 거주할 처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께 드릴 것,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신앙고백하는 마음으로 살고 봉사하고 있습니까?
출처 : https://blog.naver.com/nan0000/22148218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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