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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이 상식이 되는 세상

by 이필립


세상은 변한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상식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무너지고, 비상식이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날 TV 뉴스를 본다. 명백한 범죄가 발생했지만,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눈앞에 있고,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사법부는 구속 사유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법은 원래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법을 적용하는 사람들이 변한 것일까?


쌀을 많이 생산하면 쌀값이 떨어지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농민들은 땀 흘려 벼를 재배하지만, 정작 수확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오른다. 가격 상승의 원인이 자연재해도 아니고 공급 부족도 아닌데, 우리는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범죄 현장을 담은 CD에는 용의자의 얼굴이 또렷이 담겨 있다. 그런데 검찰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술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애써 눈을 감는 것이라면, 이는 단순한 직무 유기를 넘어 정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수천억 원어치의 마약이 국내로 반입됐다. 놀랍게도 세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마약 운반책이 세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세관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세관의 감시 카메라는 침묵하고, 책임질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마약은 대체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런 일이 한 번만 벌어진 것일까?


국회의원의 자녀가 대기업에서 몇 년 근무한 뒤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평생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런데 검찰은 이 돈이 뇌물이 아니라고 한다. 특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왜 이런 대우를 받지 못할까?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법 아닌 법’이 존재하는 것인가?


삼성 계열사에서 대규모 회계 부정이 발생했다. 상장폐지가 원칙이지만, 금융감독원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를 막았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대마불사의 논리일 뿐이다. 기업이 크다고 해서 법 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직원들이 여전히 근무 중이며, 청탁을 주고받은 사람들 역시 처벌받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준비해도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하는데, 일부는 쉽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부당함은 시간이 지나면 묻혀버린다.


정부는 실효성이 없는 정책에 매년 수천억 원의 세금을 쏟아붓는다.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 사업이지만, 계속해서 예산이 투입된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와 공무원들은 침묵한다. 세금 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외면받고, 무책임한 행정이 반복된다.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출산율은 개선되지 않는다. 정책이 실효성이 없음을 모두가 알지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단기적인 지원금 정책만 남발한다.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주거 문제, 교육비 부담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도 효과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현실을 외면한 채 탁상공론만을 반복한다.


이 모든 일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상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불공정한 일이 벌어져도 ‘원래 그런 것’이라며 체념하고, 부당함을 목격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외면한다. 그러나 이렇게 타협하는 순간,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면,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법과 제도를 통해서든, 국민들의 감시와 참여를 통해서든 우리는 더 이상 비상식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정의와 공정이 무너진 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상식이 상식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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