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나는 오늘 한 가지 역설적인 상황 앞에 서 있다. 보통 서비스를 가입한다는 것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더 나은 편의를 기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요구되는 서비스 가입은, 오히려 많은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발단은 SK텔레콤 유심(USIM) 정보 유출 사건이다. 나와 같은 수많은 고객들의 소중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이는 개인의 안전망을 스스로 강화해야 하는 상황을 강제하는, 명백한 책임 전가다.
나는 이제, ‘온갖 서비스’라는 이름의 일련의 보호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유심 정보를 기반으로 내 명의를 도용하거나, 내 휴대폰 번호를 이용한 범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나의 정보를 악용해 금융 거래를 시도하거나, 비대면 계좌를 개설하고, 해외에서 접근을 시도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가입해야 하는 서비스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 유심 보호 서비스
• 명의 도용 방지 서비스
• 번호 도용 문자 차단 서비스
• 여신 거래 안심 차단 및 비대면 계좌 개설 안심 차단(금융기관 보호 서비스)
• 해외 IP 차단 서비스(은행)
• 단말기 지정 서비스
이 모든 조치는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다. 그러나 역설적이다. 평소에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이 서비스들이, SK텔레콤의 관리 부실로 인해 이제는 ‘반드시 가입해야만 하는’ 필수 옵션이 되어버렸다. 더욱 불합리한 것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추가적인 현금 지출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고객이 정보 유출이라는 위험에 노출된 것도 억울한데,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현실은 매우 부당하다. 나는 피해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간과 나의 돈을 들여 다시 안전을 구입해야 한다는 상황이 벌어졌다. 더구나 이 서비스를 가입하면, 역설적으로 다양한 기존 서비스들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제한까지 생긴다.
서비스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더 많은 자유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다. 서비스를 가입함으로써 나는 선택의 자유를 잃고, 이용할 수 있는 기능도 제한받는다. 이는 ‘서비스’라는 개념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가 고객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권은 어디에도 없다. ‘정보가 유출됐으니, 스스로 방어하라. 그 비용도 네가 부담하라.’ 이 일방적인 통보 앞에서 고객은 무력해진다. 기업이 저지른 실수로 인한 피해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이 방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나는 묻고 싶다. SK텔레콤은 정보 유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단순히 보상금 몇 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혹은 서비스를 가입하라고 안내하는 것으로, 진정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고객의 신뢰는 현금처럼 바로 보상할 수 있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다. 신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결과이며, 무너졌을 때는 그 무엇으로도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사고를 통해 배워왔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이라는 것을. 명의 도용으로 인한 금융사기, 사생활 침해, 정신적 고통 등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들은 ‘사고는 날 수 있다’는 식의 변명을 반복하고, 고객에게 책임의 일부를 떠넘기는 행태를 고치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갖가지 서비스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 가입하지 않으면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무시할 수 없기에, 결국 가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강요된 선택, 왜곡된 자유다.
정보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서비스를 가입해야 하는 현실. 서비스 가입이 편의가 아니라 필수 생존 조건이 되어버린 시대. 나는 이 부조리한 구조를 지켜보며, 다시금 묻는다.
기업은 고객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구조를 감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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