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경험은 곧 믿음이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살아오며 체득한 수많은 순간들, 수치와 감정, 냄새와 소리,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하나의 신념으로 정착되어 있음을 느낀다. 나는 내가 겪은 것을 믿고, 내가 믿는 것을 근거로 삼아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경험은 진정한 진실일까?
경험은 사실이다. 틀림없는 현실로 존재했던 과거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절대적으로 중립일 수 없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지식과 감정, 관점 위에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경험은 사실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진실과는 멀어질 수 있다.
사실과 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경험은 그 자체로 오류가 없다 해도, 해석의 과정을 거치며 왜곡된다. 우리는 특정한 감정 상태에서, 혹은 특정한 기대를 안고 경험을 해석하고, 그 결과로 믿음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언제나 타당한가? 그 믿음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아니면 눈을 가리는가?
믿음은 단단한 구조를 가진다. 한 번 형성되면 그것은 나의 판단 기준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믿음이 견고할수록, 새로운 사실 앞에서 유연하지 못하다. 이전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믿음은, 때로는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 ‘내가 겪어봤기에 안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내가 겪은 것만이 전부다’로 흐르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험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니, 정확히는 그 경험을 바라보는 나의 해석을 의심해야 한다. 여기서 ‘제3의 눈’이 필요해진다. 그 눈은 나와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보는 시선, 한 발짝 물러나 나의 해석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각이다.
우리는 자신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멀리 산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듯, 감정의 열기에서 떨어진 자리에서 나의 해석을 다시 들여다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경험과 믿음 사이에 놓인 오해를 조금씩 걷어낼 수 있다.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설명하는 한 단서일 뿐이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보려는 노력, 그리고 내 믿음을 잠시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객관성이란 타인이 아닌, 내 안에 자리한 또 다른 나의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진실인가? 아니면 그저 익숙한 경험의 그림자에 불과한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겸허해지고, 조금 더 솔직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