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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탈을 쓴 끝없는 변주

비트코인

by 이필립


처음 비트코인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중앙이 없는 신뢰를 코드로 대체한 시스템, 누구의 허가도 필요 없는 자유로운 네트워크, 그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기존 컴퓨팅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었고, 시대를 가르는 혁신,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 혁명은 오래지 않아 희석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그 모양을 흉내 낸 수많은 ‘알트코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마치 더 나은 기능, 더 빠른 전송, 더 낮은 수수료를 말하며 자신이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본질은 드러났다. 그들은 기술 이전에 ‘테마’였고, 시장을 자극하기 위한 ‘상품’이었다.


이어 등장한 이더리움은 코인 생성을 손쉽게 해 주었다. 이더리움 위에 수많은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의 코인들이 만들어졌고, ICO(Initial Coin Offering)라는 이름 아래 마치 벤처 투자처럼 사람들의 자금을 모았다.

당시 시장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거래소에 상장만 되면 곧바로 가격이 오르고, ‘돈이 돈을 부르는’ 분위기 속에 누구나 쉽게 코인을 발행했다.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기술의 깊이는 상관없었다. 언론과 정책기관, 기업들은 앞다투어 블록체인을 외쳤고,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하이브리드, 델리게이트… 이름만 바뀔 뿐, 실질적 혁신은 없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수많은 블록체인 기술과 프로젝트가 쏟아졌지만, 우리 일상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제품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코인 가격만 존재하고, 그 코인이 돌아가는 서비스는 없다.

누구도 ‘왜 블록체인이 필요한가’를 묻지 않았고, 묻는 자는 ‘기술을 모른다’며 외면당했다.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한 다음 수순은 실물 기반의 연결이었다.

달러와 1:1로 묶인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했고,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STO(Security Token Offering), 현실 자산을 온체인 화한다는 RWA(Real World Assets), 예술품과 디지털 콘텐츠를 묶은 NFT 등 새로운 개념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용어의 재포장’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물과 연결된다는 명분 아래, 다시금 투기 시장이 형성되고, 서비스보다 자산 가치에만 집중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의 시발점은 비트코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은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견고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정부는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블록체인을 만든 비트코인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비트코인을 외면한 채, 그 부산물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는 지금도 ‘비트코인 이후’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기술의 홍수 속에서도,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은 오직 하나, 비트코인뿐이다.

모든 것이 바뀌는 듯 보이지만,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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