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나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대표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플랫폼, 안정적인 기술력, 고객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운영 중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고객이 예치한 자산의 총액과 우리 거래소 장부상에 기재된 가상자산의 수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고객 자산의 일부가 장부상 사라져 있다. 실수일 수도 있고 시스템적 오류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구조적인 누락일 수도 있다.
문제는 단순히 ‘왜’ 이 일이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다. 자산 불일치가 공론화되는 순간, 고객은 패닉에 빠질 것이고, 뱅크런처럼 예치된 가상자산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 그 순간 거래소는 순식간에 붕괴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첫 번째 전략은 ‘출금 억제’다.
고객이 자산을 인출하지 못하게 하면, 시간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출금 절차를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직접 출금은 막고 제3의 거래소를 거쳐야만 인출이 가능하도록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지치거나 인출을 포기할 수도 있다. 출금 수수료 역시 핵심 전략 중 하나다. 평균 3천 원 수준의 비트코인 수수료를, 30~40배 이상으로 설정한다. 소액 보유 고객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출금하지 않게 된다.
두 번째는 ‘정보 차단’이다.
거래소의 지갑 주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고객은 물론 외부 감사기관도 정확한 내부 보유량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로써 고객 자산 대비 실제 보유 자산의 불균형은 감춰진다. 동시에 데이터 기반 추적도 어렵게 한다. 내부 구조는 불투명하지만, 외부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게 연출한다.
세 번째는 ‘신뢰 구축의 착시’다.
TV 광고,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거래소’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언론 플레이, 유명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심지어 전직 고위 공무원 영입을 통해 방패를 세운다.
사람들은 ‘신뢰’를 직접 검증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메시지에 노출되며 신뢰를 ‘느낀다’. 그 감정이 유지되는 한, 시스템 내부의 균열은 눈에 띄지 않는다.
네 번째는 ‘제도적 방어막’ 구축이다.
법과 제도를 활용한다. 현행법상 감사를 피할 수 있는 구조를 찾고, 필요하다면 로비를 통해 규제 변경도 검토한다. 감사를 지연시키거나, 외부 감시를 축소하는 조치를 정당화시킬 논리를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
누군가는 윤리의식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보다 냉정하다. 고객의 자산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이야말로 최우선이다. 나의 존재 이유는 거래소의 존속이며, 존속 없이는 고객도, 신뢰도, 윤리도 무의미하다.
나는 도덕과 생존 사이에서, 생존을 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래소는 굴러가고 있다. 균열을 감춘 채,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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