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생각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기반이며, 시간은 그 위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강이다. 전통적으로 공간은 3차원으로, 시간은 1차원의 선형 흐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은 종종 이 전통적 개념을 넘어서며, 관찰자의 위치와 인식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구성하기도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흥미롭다. 만약 공간이 팽창이 아니라 ‘확대’된다면, 즉 공간 자체는 그대로인데 관찰자인 ‘나’의 크기가 줄어든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
우리가 ‘공간의 팽창’이라고 말할 때, 이는 우주의 구조 자체가 외부로 뻗어나가는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공간의 팽창이 아닌 ‘확대’란 관찰자의 관점에서 공간이 커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팽창이 아니라 관점의 변화, 인식 프레임의 재구성이다. 실제로 공간은 변하지 않고, 나의 기준이 축소되거나 상대적으로 작아졌을 때, 그 동일한 공간은 거대하게 다가온다. 이는 곧 존재의 상대성을 의미한다. 내가 작아지면, 세상은 커지고 낯설어진다. 반대로 내가 커지면, 세상은 익숙하고 통제 가능해 보인다. 공간의 절대성은 무너지고, 존재는 인식의 틀 안에서 재구성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간을 선형으로 경험한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직선적 흐름. 하지만 이 직선을 멈춰 세우고, 특정 ‘찰나’를 극도로 확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순간은 더 이상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연인의 눈빛 속에 멈춰 선 몇 초, 혹은 죽음 직전의 시간 왜곡처럼, 찰나는 무한한 감각과 의미를 품을 수 있다. 이는 시간의 ‘크기’란 본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간은 측정할 수 있지만, 그 ‘진짜’ 크기는 의식이 얼마나 깊게 그것을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듯, 절대적 시간은 없고 관측자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시인의 감성처럼 찰나에 영원을 담을 수 있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재를 정의할 수 있을까?
꿈속의 나를 떠올려보자. 꿈은 현실이 아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움직인다. 꿈속 존재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지만, 꿈의 공간과 시간 안에서는 분명히 존재한다. 반대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공간과 시간도 다른 차원의 인식으로 보면 또 하나의 ‘꿈’ 일 수 있다. 현실의 존재는 시간의 선형성 속에선 분명 존재하지만, 공간을 조각내어 보거나 인식의 스케일을 바꾸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예컨대, 공간이 무한히 세분화되고 나의 인식이 그 한 조각에만 머물 때, 나는 전체 공간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또, 내가 어떤 기억 속에만 존재할 경우, 실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정보’로서만 존재하는가? 이는 존재의 조건이 물리적 차원이 아니라, 인식과 관계, 시간적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는 중요한 통찰을 낳는다.
결국, 존재는 절대적 실체가 아니다. 존재는 관찰자, 시간, 공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출현하는 사건’에 가깝다. 내가 꿈을 꾸는 동안 나는 꿈속 존재를 만든다. 내가 찰나를 깊이 응시하면, 그 찰나가 나를 만든다. 그리고 내가 공간의 틈 속에서 작아지면, 거대한 세계가 다시 나를 감싼다.
우리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로 착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에 있다. 존재란,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식 위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파동일지도 모른다. 공간의 확대와 시간의 찰나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실존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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