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진리를 향한 길목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수많은 비트코인 및 암호화폐 관련 토론회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은 대체로 안타까움이었다. 사회의 석학으로 존경받는 금융 전문가와 경제학 교수들이 토론회에 나서면서도 첫마디가 “비트코인은 잘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비트코인을 옹호하는 측에도 일부 경제학 전공자나 컴퓨터 공학자가 있었지만, 토론다운 토론이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본질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근거를 들어 반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토론의 목적은 단순한 주장 교환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깊이 이해한 뒤, 그 주장 속에 숨은 핵심을 파악하고, 그 위에서 논리적 검증을 거쳐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토론의 본질이다. 하지만 현실의 비트코인 토론회는 각자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청중이 얻는 것은 진리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견해가 병렬적으로 나열된 피상적인 인상뿐이다. 이것은 토론의 본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토론자가 반드시 상대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비트코인 논의는 이 기본 전제를 충족하지 못했다. 이는 곧 대한민국 비트코인 정책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의 근저에는 사회 전반에 깔린 고정관념이 있다. 마치 천동설이 당연한 상식이던 시대처럼, 비트코인은 허구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즉 지동설 같은 ‘올바른 진리’를 받아들일 가능성 자체가 봉쇄된다. 학문적 태도란 본래 자신의 신념과 다른 주장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그것이 옳다면 수용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만약 토론자가 사회적 통념이나 권력의 입장에 기대어 발언하거나, 기존 지식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그는 더 이상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상의 길에서도 멀어지고, 사회적 리더로서의 자격을 잃는 행위다.
비트코인 토론회는 더 이상 ‘내 말이 옳다’는 독백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리로 가는 문을 닫는 것이며, 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진정한 토론은 자신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의 논리와 근거를 깊이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재검토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는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허구와 진리를 가르고,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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