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인류의 역사에서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다. 지동설이 사실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한 것은 천동설이었다. 천동설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했다.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면 지구가 중심에 서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깊이 설명하려 들면 모순이 드러났고,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사람들은 ‘신의 섭리’를 끌어왔다. 관측과 논리가 아니라 권위와 믿음이 체계를 지탱한 것이다.
오늘날 ‘블록체인’ 담론은 이 천동설의 구조를 닮아 있다.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기존의 금융, IT, 통제 중심의 세계관으로 해석하려 하다 보니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을 설명하지 못한다. 디지털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겨진 비트코인의 가격이 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지, ‘혁신적’이라던 블록체인 기술이 왜 거대 IT 기업의 핵심 인프라가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시장은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한다. 논리 대신 구호가 난무한다.
많은 이른바 전문가들은 결과만 말한다. 가격, 트렌드, 규제, ‘웹3의 미래’를 외치지만, 그 기저의 원리는 비어 있다. 이는 천동설적 사고 때문이다. 중심은 여전히 국가, 기업, 통제된 시스템이며, 블록체인은 그 주변을 도는 보조 기술로 취급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이 질서를 뒤집는다. 신뢰의 중심을 권력이 아니라 암호학, 시간, 그리고 작업증명에 둔다. 이 전환을 받아들이는 것은 3차원 세계에서 4차원을 직관하려는 시도와도 같다. 어렵고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도약이다.
시간은 흐른다. 갈릴레오가 조롱받았듯이, 새로운 관점은 늘 저항에 부딪힌다. 그러나 결국 더 정합적인 설명이 살아남는다.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위변조 불가능한 시간의 기록이자 신뢰의 토대다. 이 토대 위에서 ‘비트코인 금융’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이 흐름을 보아왔다. 대한민국이 여전히 천동설에 머무르지 않고, 지동설적 전환즉 비트코인의 본질을 이해하는 전환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쪽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