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회피하는 국가, 모방에 갇힌 혁신

비트코인

by 이필립



국가의 정책은 언제나 현실 위에 서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응시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국의 IT 정책을 돌아보면, 미래를 설계했다기보다 미국을 관찰하고 뒤따라온 역사가 반복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후발주자의 학습이 아니라, 주체성을 상실한 ‘레퍼런스형 정책’에 가까웠다.


인터넷 초기 한국은 기술적으로 뒤처지지 않았다. 검색, 커뮤니티, SNS, 포털 등에서 선도적인 시도가 있었고, 어떤 분야에서는 미국보다 빠른 실험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세계 시장에 남아 있는 한국발 플랫폼은 거의 없다. 그 이유를 우연이나 시장 실패로 돌리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 정책의 태도에 있다. 한국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이를 실험하고 보호하기보다, 규제와 행정 리스크로 옥죄는 방식에 익숙했다. 반대로 미국을 비롯한 개방적 환경에서는 미완성의 기술이라도 시장에서 부딪히며 진화하도록 두었고, 이는 대규모 투자와 세계적 서비스로 이어졌다.


이 패턴은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그리고 AI 시대에도 반복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더 빠른 지금, 국가라면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세계적 서비스를 만들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각종 규제와 그림자 규제가 먼저 등장하고, 기업은 국내에서 실험할 공간을 잃은 채 해외로 떠난다. 이후 해외에서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제야 ‘우리도 해야 한다’며 뒤늦게 따라간다. 이것은 전략이 아니라 추종이다. 더 심각한 것은, 단순히 따라 할 뿐 아니라 그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가는 정책을 만들 때 전문가 의견을 듣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의견을 듣는 것’과 ‘판단을 외주화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후자에 가깝다. 국가는 책임 있는 판단을 스스로 하지 않고 전문가 뒤에 숨는다. 정책이 성공하면 국가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전문가의 책임이 된다. 이렇게 책임의 주체가 흐려지면, 누구도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 결과는 혁신의 정체다.


더구나 지금은 ‘전문가가 불확실한 시대’다. 인터넷 초창기에 어떤 서비스가 성공할지 정확히 아는 전문가는 없었다. 비트코인의 방향을 완벽히 예측한 전문가도, AI의 최종 형태를 알고 있는 전문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타이틀 중심의 전문가를 지나치게 신뢰한다. 전공과 무관한 교수, 트렌드를 따라 이동하는 학자, 시대마다 옷을 갈아입는 컨설턴트들이 정책 자문 테이블을 차지한다. 이는 판단의 품질을 높이기보다, 책임을 분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국가가 진정으로 혁신을 이끌고자 한다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첫째, 전문가의 역할은 조언이지 결정이 아니어야 한다. 둘째, 정책 결정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셋째, 정책의 성과와 실패에 대한 사후 평가와 책임 시스템이 분명해야 한다. 5년, 10년 뒤에 흐지부지 사라질 정책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가 기록되고 책임이 따르는 정책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책임이다. 더 많은 전문가가 아니라, 더 강한 판단 주체다. 반복되는 실수를 멈추려면,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실패하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동하는 구조부터 끝내야 한다. 혁신을 말하면서 책임을 피하는 국가는 결코 시대를 이끌 수 없다. 한국이 다시 기술 강국이 되길 원한다면, 모방이 아니라 주체적 판단과 책임의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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