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시대의 흐름을 이끈다. Analog 시대, 새로운 기술은 주로 물리적 제품으로 구현되어 우리의 삶 속에서 가치를 명확히 드러냈다. 자동차는 이동의 한계를 극복했고, 전화는 거리의 제약을 없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기술, 특히 소프트웨어 기술은 물리적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기술들은 변화의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그 실질적 가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간 디지털 기술은 미래를 바꿀 혁신으로 치장되며 수많은 트렌드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트렌드로 떠오른 기술 중 상당수는 금세 그 열기를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록체인이다.
15년 전, 블록체인 기술은 세상을 바꿀 혁명으로 포장되었다. “제2의 인터넷”, “미래 금융의 기반”, “디지털 생명의 신기술” 같은 찬사가 이어졌고, IT 기업들은 앞다투어 블록체인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주가는 기술의 유행을 등에 업고 폭등했고, 언론은 블록체인의 활용 가능성을 찬양하며 대중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 화려한 구호를 외치던 기업들 중 얼마나 블록체인을 실제로 구현해낸 곳이 있는가?
블록체인 기술은 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유행처럼 번졌다. 많은 도시가 블록체인 관련 기업을 유치하며 성과를 자랑했지만,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피드백조차 부족하다. 이는 블록체인 기술이 단순한 신기루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블록체인은 2008년 비트코인의 탄생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2016년 비트코인의 가격이 수천만 원을 기록하며,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의 성공 뒤에 가려진 키워드로 남아 있다.
더 나아가 블록체인이 과연 기술적 혁신을 위한 도구였는지 의문이 든다. 이를 둘러싼 열광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가능성보다는 암호화폐를 만들어 판매하고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블록체인은 신기술의 포장지였고, 그 포장지를 이용한 이들은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기술 트렌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용어들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블록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퍼블릭 블록체인, 프라이빗 블록체인, 컨소시엄 블록체인 같은 용어들이 쏟아졌고, 최근에는 STO, NFT, RWA 같은 알파벳 약어들로 대체되었다. 이들은 본질을 흐리며 여전히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키워드를 내세우며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용어를 앞세워 지식인인 양 행세하며, 실체 없는 주장을 반복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는 암호화폐 전문가로, 가격이 떨어지면 비판가로 돌변하며 대중의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러한 행태는 기술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그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분명 기술적 가능성을 지닌 혁신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블록체인 열풍은 그 가능성보다 투기와 욕망의 산물에 가까웠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것은 신기루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기술의 본질은 삶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블록체인은 한때 그 본질을 충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블록체인은 신뢰를 구축하기는커녕 기술에 대한 허상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제는 진정으로 기술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 본질에 충실한 혁신을 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