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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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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ul 15. 2023

하루만 엄마가 내 딸이 된다면

꿈 많던 그 시절로 돌려보내드리고 싶다

‘딸들은 다 도둑년이야’라는 말은 단면적인 모습만 보고 생긴 말이 아닐까. 친정엄마는 살림하랴, 일하랴, 자식 키우랴, 힘들다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었다. 챙겨준 걸 깜빡 잊고 집에 오면 지나가는 길에라도 챙겨다 주었다. 건강원을 시작하고 내 건강을 더 챙겼다. 여름에 가마솥 온도가 높아 더워서 지치고 일하기 힘들어도 건강해서 일할 수 있는 걸 감사하던 부모님.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잡아준 건 부모님이었다.


나의 글쓰기를 응원해 준 것도 친정엄마였다. 매주 수요일 글쓰기를 배우는 도서관은 내가 태어나고 부모님 가게가 있는 동네였다.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며 엄마와 전화하는 횟수가 늘었고 가끔 시간이 맞으면 수업 끝나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차에서 글 이야기와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어린 딸로 돌아갔다. 여동생까지 모두 시집보내고 마음이 편할 만도 한데 큰딸인 내가 마음 쓰이나 보다. 차에서 내릴 무렵 엄마가 건넨 검정 비닐봉지는 그동안 참고 눌렀던 눈물샘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 봉지에는 자두가, 또 다른 봉지에는 며칠 전 이야기한 돼지껍데기 무침이 들어 있었다. 봉지를 손에 들고 차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루만 엄마가 내 딸이 된다면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에 함께 가고 싶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했던 엄마에게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주고 싶다. 큰 책장과 넓고 편안한 공간 안에서 오롯이 책에 집중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다. 힘들 때마다 일기를 썼던 만큼 글이 삶의 동반자였던 엄마를 닮아 나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속이 타 남편과 자식들에게 못다 한 이야기, 홀로 외로움을 이겨내느라 애가 탄 이야기, 만 가지의 생각으로 괴로웠던 이야기 등 엄마는 일기에 마음을 묻었다. 내가 글에 쏟아붓는 이 희열을, 글에 매달리는 나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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