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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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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Sep 13. 2023

선물 같은 하루

매미가 그토록 운 이유는

    오늘은 나에게 선물 같은 하루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무를 좋아할까. 도서관 문헌정보실 한 곳에 위치한 노트북 좌석에 앉으니 눈앞에 푸른 숲이 펼쳐졌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빛났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가 나뭇가지를 간질 듯 나뭇잎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매미소리가 바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내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듯 매미는 더 세차게 울어댔다. 도서관 푸른 숲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도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양 강하게 우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독서와 글쓰기의 부작용일까. 옹졸한 내 생각의 밑바닥일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을 쌓게 도와주지만 독단적인 내 생각에 올가미를 우기도 다. 독서에서 끝나지 않고 토론으로 이어지는 독서문화가 성행하는 게 바로 나처럼 자기 늪에 빠지지 말라는 숨은 뜻이 있는 것일까.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게 도와주지만 절대 아집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밖의 나무처럼 남편은 내 옆에서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력하는 내 모습은 안 보이니. 좋아지는 듯 나빠지는, 매일 되풀이되는 말다툼에 지쳐 남편이 나에게 쏘아붙였다. 당장 내 마음이 괴로우니 남편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누군가 장난으로 툭 던진 한 마디는 나의 약점을 건드렸고 날 보호하려 내뱉은 말은 날카롭게 날아갔다. 미처 아물지 않은 나의 상처는 싸한 분위기만큼 곪아갔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건 그동안 소홀했던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내 마음속에 싹튼 오해의 불씨를 꺼트리기 위해서였다. 그동안의 공백으로 낯선 곳에 외톨이처럼 서 있는 나의 마음은, 어색함을 내색하지 않으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나는 보이지 않는 걸까.


    아침부터 서둘러 남편과 아들을 요리학원에 내려주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갈 때 편하기 위해 맨 끝에 주차를 하려는데 바로 옆에 바위가 튀어나와 있었다. 주차공간도 일자가 아닌 사선이었다. 제대로 보지 않고 일자 일 거라 판단한 내 잘못이었다. 자동차 바퀴가 튀어나온 블록 모서리에 심하게 긁혔다. 이상한 소리에 급히 차에서 내렸다. 모서리에 차가 꽉 껴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수업이 시작되기도 했고, 혼자 해결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자동차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그려보았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살짝 후진을 한 다음 내려서 확인했다. 다행히 모서리에서 몸체가 빠져나와 있었다. 다시 핸들을 가운데로 놓고 전진하니 다행히 긁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혼자 끙끙거리긴 했지만 무사히 옆자리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오늘 하루 낯선 도서관에서 남편과 아들을 기다리며 보낸 시간은 내게 선물로 다가왔다. 해가 지니 더 이상 숲을 볼 수 없었다. 볕은 뜨거운데 숲은 어두웠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숲이 달리 보이듯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리 해석될 것이다. 남편과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데 매미가 더 세차게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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