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가족앓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글사랑 Sep 17. 2023

꿈을 짓는 아이

대학 간판이 아닌 진짜 저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자신이 진정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고 싶은 게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적어보자. 그리고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해 보는 건 어떨까. 이 장면이 아이에게 주는 힘은 대단했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진로에 대해 말하기 전 이런 대화를 나눴다.

   “셰프가 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넌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니?”

   “어떨 때 가장 행복하니.”     


   나는 아이에게 거꾸로 질문하고 있었다. 첫 질문부터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셰프가 되고 싶지만 아직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단다. 그냥 요리가 좋고 재미있고 그래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요리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은지 물으니 입 꼬리가 올라가며 눈앞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따뜻한 요리사가 되겠단다. 요리사면 음식을 잘해야지 마음이 따뜻하다니, 엉뚱한 아이의 대답에 눈이 동그래졌다.   

   

   노후에는 착한 식당을 운영하겠단다. 돈의 제약이 많은 청소년이나 어르신들이 적은 돈으로 마음껏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겠다고. 따뜻한 마음에 감동해 아이가 달리 보였다. 하지만 돈벌이가 될지 걱정된다고 하니 자신의 노후를 위해 젊어서 열심히 저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꿈 짓기는 시작되었다.

     

   “대학 간판이 아닌 진짜 저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자신의 진로에 더 확고한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어느 정도의 내신 등급이 있어야 취업과 대학 진학도 수월했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학교에서 특성화고신문 강승구 대표의 강연이 있다고 해서 바로 신청했다. 십삼 년째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만나 소통한다고, 아이들의 실질적인 고민과 문제점을 들어주고 상담하는 컨설팅을 오 년간 무료로 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강연은 유튜브와 인스타에서 듣지 못한 알찬 정보가 많았다. 정적이 흐르기도, 호탕하게 웃기도 하며 2시간 30분은 금세 지나갔다. 강연 마지막 PPT 화면은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 이 강연을 듣는 목적과 이 학교에 입학한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였다.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이뿐 아니라 부모, 교사의 역할도 들어있다. 일반고와 특성화고를 비교하는 게 자칫 열등감으로 비출 수도 있었지만 강사는 현실을 직면하게 만들었다. 공부 총량의 법칙,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고개를 끄떡이게 하였다. 아이들에겐 들인 시간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희망도 안겨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의 가슴은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융합형 인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외식조리경영학과에 도움이 되는 학과가 무엇인지, 삼 년 후 어떤 학과로 진학할지 이야기하며 들떠있었다. 막연했던 자신의 진로 그래프를 선명하게 본 듯 이대로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금의 이 마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귀가 따갑도록 아들에게 한 잔소리를 강사님은 달콤한 설득력으로 유혹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취업 일기>와 <국어 1등급 어휘력> 책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아들은 정답을 찾은 듯 매일 일기를 쓰며 자신을 기록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절실해야 보인다고 했던가. 아들은 자신이 찾던 보물을 발견한 듯 분주해 보였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부터 집중하겠다고. 주말 아침부터 타이머를 맞추고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아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보살펴 주었는가. 청소와 빨래를 하며 나만 왜 이걸 해야 하는지 투덜거렸다. 없는 솜씨로 요리를 하면서 더 잘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아이를 위한 공부 환경이었다는 걸 몰랐다.     

      

   꿈을 짓기 위해 공부 총량의 법칙에 도전하는 아이를 보며 게을러진 나를 추슬렀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게 바로 실천이 아닐까. 성공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실패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 앞에서 한 발짝 물러나곤 했다.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더 머뭇거렸다. 아이가 도전하고자 하는 재직자 특별전형제도는 어쩌면 백세 시대를 위한 교육체제가 아닐까. 독일처럼 언제든지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픈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제도 말이다.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한, 먼저 경험을 해보겠다고 용기 낸 우리 아이들에게 손뼉 치며 응원할 사람은 바로 부모여야 한다.   

          

   아들에게 어떨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물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의 열여덟 번째 생일에 엄마를 위해 요리한 아들. 퇴근하고 돌아와 잠시 쉰다고 누운 것이 잠들어 버렸다. 자기도 학교에서 요리를 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엄마를 위해 일본식 두부덮밥을 만들어 주었다. 입맛이 없었는데 아들이 만든 두부덮밥은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피곤했던 피로까지 녹여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표정만으로 아들은 이미 행복해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물 같은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