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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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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Dec 10. 2023

구김살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하려 했다. 어두운 낯빛을 말끔히 씻어 주고 싶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다. 나의 잘못된 판단 때문일까. 그의 구김살은 믿기 힘들 만큼 깊고 참혹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내일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을 담았다.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눈을 꾹 감고 손에 힘을 주었다. 물이 뿜어져 나오며 열기와 뜨거운 김으로 지지직 소리를 냈다. 그 열기는 구김살을 펴기 시작했다. 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빨래를 널려고 하는데 아들 와이셔츠 목 때가 눈에 띄었다. 빨기 전 샴푸로 비벼 빨았어야 하는데 빨래 양이 많다고 그냥 돌린 탓이다. 표백제를 풀고 행주를 삼았던 경험으로 와이셔츠도 삶았다. 잠깐 삶고 세탁기에 돌렸다. 널려고 꺼내는 순간 깨끗하게 삶아진 하얀 와이셔츠를 생각했는데 구김살이 잔뜩 진 하얀 와이셔츠로 변해 있었다. 털어서 말리면 조금 펴질까 싶어 말렸지만 저녁에도 구김살은 그대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리미를 꺼냈다. 설거지보다 더 싫어하는 다림질이라니. 내일 당장 입을 와이셔츠가 없기에 다리미에 물을 가득 담았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팔부터 다렸다. 생각보다 빨리 구김살이 펴졌다. 승모근 부분이 다려지지 않아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조끼를 입으면 보이지 않으니 괜찮다고 했다. 한 개를 다린 후 다리기 전후 모습을 보니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결혼 18년 차, 주부 9단을 앞두고 있지만 뭐든 서툴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무엇이든 자신감이 없어 남편에게 질문을 하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주 안 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부 9단의 살림 구김살을 오늘은 다리미로 팍팍 폈다. 다음에도 꼭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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