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글사랑 Jul 16. 2023

USB가 사라졌다

이 USB가 네 것이냐?

   밤 11시 30분 USB가 사라졌다. 분명 10시 50분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안경집에 넣어서 왔는데 안경집이 살짝 열려 있었다. 도서관에서 떨어졌나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이미 도서관 문이 닫힌 시간이었다. 오자마자 확인할 걸 그제야 후회했다. 다음 날은 전체 휴관일이라 만약 바닥에 떨어졌어도 청소하는 분이 그냥 버리면 어쩌지, 누가 줍더라도 안에 있는 파일을 다 지우고 그냥 쓰면 어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출근 전 남편이 도서관에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기뻐하는 날 보며 그동안 글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남편이 달라졌다. 휴관일이지만 혹시 출근하는 직원이 있을 수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남편과 차를 타고 도서관에 갔다. 쉬는 날이라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2층 공사를 위해 인부들이 왔나 살폈지만 조용했다. 1층 로비도 불이 꺼져 깜깜했다. 쉬는 날인지 몰라 비가 오는데 우산을 쓰고 온 사람들은 발길을 돌렸고 우리도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보자며 아쉬운 마음을 접고 출근했다.


   속상하고 속상했다. 왜 하필. 오랫동안 묵히고 망설였던 일을 어렵게 결정해서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 작품이 든 USB가 사라지다니. 이대로 그만두라는 것인가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괴롭혔다. 북클럽 단톡방에 속상함을 올리니 더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한 시련이라며 블로그에 있는 원본을 다시 새롭게 써보라고 응원해 주었다. 나의 꼼꼼하지 못했던 태도를 탓하던 마음이 누그러지니 다시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이전에 썼던 글을 떠올리려 하니 더 글이 안 써졌고 마음을 비우고 써놓은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갑자기 글이 말을 걸어왔다.


   토요일 아침 7시, 남편과 눈을 뜨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1층 데스크에 직원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목요일 앉았던 자리 근처를 싹 훑어봤지만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한두 명만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텅 빈자리 어디에도 USB는 없었다. 나오며 혹시 몰라 안내데스크에 분실물로 접수된 USB가 있냐고 물었다. 산신령이 금도끼, 은도끼를 보여주며 묻듯 내 USB색깔을 묻는데 횡설수설하며 엉뚱하게 예전에 썼던 빨간색과 검은색의 USB 색깔을 이야기했다.


   직원이 보여준 USB는 은색이었다. 보자마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북카페 7월 7일 포스트잇을 보자 내가 잃어버린 장소와 날짜가 동일하니 컴퓨터에 꽂아서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1층 로비 컴퓨터에 꽂고 USB를 클릭하자 내 이름 폴더가 나왔다. 다리에 힘은 풀렸지만 잃어버린 1등 로또를 찾은 듯 기뻤다. 아직은 인심 넘치는 살만한 세상이 분명하다.


   7년 간 글을 쓰며 소리 없이 울었다. 코를 푸는 척 흘린 눈물이 엉켜 콧물이 되었고 화장실로 달려가 꺼억 소리를 삼키기도 했다. 마음 고생한 아내를 위해 내 일처럼 마음 써준 고마운 남편. USB에 담긴 그동안의 시간을 소중하게 존중해 주는 마음이 전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왕초보 작가지망생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