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글사랑 Jul 19. 2023

야반도주

야릇한 밤 10시...


   기억에 남는 영화 제목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애칭이다. 독서모임 이름을 정할 때 다양한 이름이 나왔지만 야반독서를 듣는 순간 야반도주가 생각났다. 그래서 혼자 웃었다. 야릇한 밤 10시에 줌에서 모이는 그녀들. 일하랴, 살림하랴, 바쁜 그녀들은 그 늦은 시간에 왜 꼭 만나야 했을까.


   숭례문학당에 독서모임 리더양성 과정 강의를 요청했다. 비경쟁 독서토론이 마음에 들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경쟁을 지양하는 토론 방식이 좋았다. 논제로 발제해서 깊이 책 읽는 연습을 하고 싶어 후속 독서모임에 들었다. 논제에 포커스를 맞춘 계획적인 독서모임 이어서일까, 조금 더 의미 있고 발전적인 독서를 하고 싶어서일까. 미리 선정한 책을 읽고 이 주에 한 번씩 꼬박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눴다. 조별로 논제를 미리 올려주어 그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 나눴다. 1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스피드 한 분위기를 즐겼다.




   짧은 토론시간은 아쉬움을 키웠다. 책뿐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고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읽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에서 따뜻한 이웃 이야기 속 참. 참. 참. 은 우리를 하나로 묶기 충분했다. 오프 모임을 추진하게 된 계기의 사건이었다. 둘째 주 수요일 줌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시간을 조금 앞당겨 만났다. 참이슬과 참깨라면 그리고 참치삼각김밥을 챙겨서 모였다. 장마로 습하고 더운 날이어서 계획했던 루프탑 행사는 포기하고 사무실에 에어컨을 켜고 파티 준비를 했다. 각자 준비한 음식은 순식간에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우리는 그동안 책으로 나눈 삶의 이야기를 서로의 일상과 엮으며 조금 더 가까워졌다.



   아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함께한 K는 케이크를 준비했다. 아이들의 체험활동으로 만나 독서모임을 통해 동무가 되었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동지가 되었다. 어느새 십 년이 되어가는 우리는 비슷한 교육관으로 험난한 고등 학부모를 살고 있다. 십 년 터울 딸을 키우는 K는 다시 초등 학부모로 살고 있다. 한층 여유 있는 둘째 육아가 늦둥이에 대한 욕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부러움으로 끝낼 뿐 함께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지금의 야반독서는 아이들과 별개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오롯이 책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음속에 숨겨놓은 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를, 솔직하게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야릇한 그 밤을 우리는 손꼽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둠을 뚫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