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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ul 18. 2023

어둠을 뚫고

오늘을 집착하다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책을 대출하기 위해 수정도서관으로 향했다. 우리 집 바로 뒤 중원도서관은 자료실 공사 중이다. 아들 저녁을 먹이고 어두워지기 전 돌아오기 위해 서둘렀다. 도서관은 왜 한적한 곳에 있을까. 비는 그쳤지만 흐린 날씨라 산성동은 재개발로 인적이 없어 한적하다 못해 스산했다. 어제 찾아둔 도서검색 캡처화면을 열며 입구에 들어서는데 '부분휴관'이란 글자가 불길했다, 설마. 어제 홈페이지에서 휴관일을 분명 체크했는데 열람실만 운영하는 부분휴관일이라니. 어쩔 수 없이 인근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검색했다.


   논골도서관과 해오름도서관에 책이 있었다. 그러나 월요일은 휴무였다. 다른 때 같으면 이쯤 포기하고 집으로 갔을 텐데 오늘은 꼭 빌리고 말 거란 집착이 생겼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중 가깝고 낯익은 동네인 복정도서관을 검색하니 책이 있었다. 복정동은 대학가 치고 외진 동네다. 가천대와 동서울대가 있지만 주택가라 그런지 저녁이면 깜깜했다. 우선 지도로 도서관 위치를 확인하고 어떤 정거장에서 내려야 가까운지 살폈다. 복정초등학교에서 내린 후 걸어가는 경로를 지도로 확인했다. 이런 실수를 하는 편이 아닌데 오늘따라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복정도서관은 깜깜한 동네를 밝히듯 따스한 빛이 눈부셨다. 2층에 올라가니 자료실 투명 문 바로 앞에 8 문학 글자가 보였다. 8을 향해 걷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잡지코너가 자리하고 있었다. 책꽂이 눈높이에 눈에 익는 표지가 보였다. 2021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으로 문우들과 공저로 쓴 <나는 나로 살고 싶다> 산문집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찾으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꿈만 같았다. 게다가 문학동네와 월간문학 월간지 옆에 놓여 있어 가슴이 벅찼다. 최근에 도서로 검색을 하니 논골, 서현, 중원, 구미, 분당, 수정, 위례도서관에서 대출이 가능했다.


   오늘 책을 꼭 빌리고자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서 쓰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일백장의 99일 글감인데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한 번쯤 써보고 싶었다. 나를 돌아보고 가족과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는다면 남은 가족들은 얼마나 눈앞이 깜깜할까. 죽는 것보다 난 어둠이 무섭다. 오늘 어둠을 뚫고 밤거리를 거닐며 이 두려움이 죽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나로 의한 과실보다 자연재해나 타인에 의한 사고로. 오늘따라 한적한 밤길이 유독 짙게 느껴졌다. 동네 주민이라면 산책로였을 길이 나는 누군가 불쑥 나타나 해칠 것만 같았다. 오늘 내가 집착한 책이 바로 삶에 대한 애착이었을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빌리고 <나는 나로 살고 싶다> 책을 두고 나오며 그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주기를 바랐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바로 도착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100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1학년이지만 음악을 공부하는 만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난 대화였다. 100억이 생긴다면 평생 음악만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아파트 3채를 사서 월세를 받으며 음악 연주를 마음껏 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들을 응원했다. 절실히 하고자 하는 그 열정은 어둠을 뚫고 100억의 효과를 낼 것이라고.


   내릴 때쯤 비가 왔다. 작은 우산을 꺼내 비를 즐겼다. 가로등 아래 가늘게 휘날리는 빗줄기는 마치 봄날의 벚꽃 잎 같았다. 난 오늘 어둠을 뚫고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 걸었을까. 내리는 이 빗줄기가 어느 누구에게는 생명을, 어느 누구에게는 죽음을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행복을 미루지 말자. 우연히 찾아온 꿈같은 기회를 마음껏 즐겨보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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