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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ul 25. 2023

성남촌뜨기 서울역 가다

조금 낮으면 좀 어떤가


   예전에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했다. 요즘은 서울에 나가도 한적한 동네가 좋다. 서울역은 복잡할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한적했다. 서울역까지 경로를 검색해 두었는데 아침 행정안전부의 재난 문자로 노선을 변경했다. 광역버스에서 지하철로 바뀌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새벽에 책을 읽느라 4시간 밖에 못 잔 것도 있고, 지하철을 2번 환승해야 했다. 발표할 작품을 출력해서 가려고 했는데 프린터가 안 돼서 인근 도서관에 들렸다. 복사를 하려는데 들고 간 카드는 고장이고 현금이 없어 허탕을 치는 바람에 출발이 늦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셨다면 괜찮았을 텐데 만나서 마실 생각에 꾹 참았다.


   지하철 빠른 환승 경로를 확인했다. 모란역 8호선 6-4번 칸에서 석촌역에 하차해 9호선 5-2번 칸에서 노량진역으로 가는 경로였다. 9호선 석촌역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리며 다음 노선을 확인하려는데 어제 본 모란역 8호선 경로가 사라졌다.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9호선 노량진역에서 1호선 서울역으로 가면 끝인데 빠른 환승이 안보였기 때문인지, 처음 시작점인 모란역 8호선이 사라져서인지, 불안감이 올라오며 얼굴이 빨개졌다. 낯선 곳에서 경로를 벗어난 듯 머리가 하얘지고 당황스러웠다. 9호선에서 내려 1호선 노량진역에 도착하니 세 정거장인 서울역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도착하기로 한 9시 30분을 지키려고 이렇게 노심초사 왔나 보다. 다들 조금씩 늦었다는 톡에 마음을 놓고 천천히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는 아침부터 이 자리에 모이기 위해 전투를 마친 전사였다. 비가 왔지만 한적한 커피숍에 들어서자 이전의 일들은 다 사라지고 평온했다. 마치 조금 전까지도 여기 있었던 것처럼. 6~7명이 모여서 합평회를 하기에 넓고 쾌적했다. 이젤 꼼지락님은 궂은 날씨에 꽃다발이 가득 든 종이 백을 들고 왔고 보자마자 지니써니 님은 종이 백을 들어 드렸다. 퍼플데이지님은 리틀 미사시언인 서현이와 오느라 짐 보따리가 한 아름이었다. 엘리자 님은 처음 만났지만 캐릭터 모습과 흡사하여 바로 알아보았다.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고 작품 발표를 하였다. 다들 작품 속에 각자가 가고자 하는 미래가 담겨 있었다. 맞다, 우리는 미래를 사는 시간을 위해 모인 미사시언이 아닌가.


   다양한 모습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그녀들. 정신이 여유로운 낭만가, 정의로운 운동가, 생활 전선에서 꿈을 키우며 N잡러를 꿈꾸는 현실가.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사랑스러웠다. 그녀들과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상상하며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희망의 말씨 앗을 심어주었다. 꽃 선물과 좋은 글귀가 담긴 양말선물을 받고 합평회를 마치며 백일백장 2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꼽시계가 자꾸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였다. 자리를 떠날 때쯤 커피숍에는 단 한 명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다음 장소는 여기라고 눈도장을 찍었다.


   어디를 갈지 주변을 둘러보다 큰길로 나오니 바로 앞에 식당이 보였다. 이래서 도시가 좋은 것일까. 2층 숭례회관의 메뉴판이 크게 눈에 띄었고 산채비빔밥과 김치찌개 등 메뉴가 발길을 끌었다. 커피숍만큼 한산한 식당이 좋았고 우선 안으로 들어갔다. 추천 메뉴를 물어보니 보쌈 정식을 권해 통일해 주문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졌고 나물과 김치전, 연근 샐러드, 콩 조림 등 모든 반찬이 맛깔스러웠다. 상추쌈에 보쌈 고기를 얹고 먹지도 않는 마늘 하나를 된장에 찍어 한 입 먹었다. 알싸한 생마늘향이 기분 좋게 입맛을 당겼다. 좋은 사람들과 먹으니 뭐든 맛있나 보다. 다 먹을 때까지 우리는 맛있다는 감탄을 연발했다, 촌사람들처럼.


   우리는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작은 것에 감사했다. 촌뜨기라는 말이 촌사람의 낮춘 말이라고 했다. 조금 낮으면 좀 어떤가. 포근하고 따뜻하고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우리는 남이 보는 시선에 사로 잡혀 나를 닦달하고 괴롭히며 살고 있다. 그냥 내가 좋은 대로 조금 부족하고 불편해도 나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닌가. 남해 한달살이를 다녀온 이젤 꼼지락님의 이야기에 우리는 꽃향기에 취하듯 자연인이 되었다. 오늘 처음 알았다, 아름답다는 말에 나답고 자기답다는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오늘부터 난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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