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를 입체적으로 그려봤다.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높은 건물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림책이 생각났다. 문득 만들어보고 싶어 집에 있던 클레이를 꺼냈다. 기역과 으, 리을을 만들어 붙이려 하니 모자 쓴 나그네가 길을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글을 쓰기 위해 길을 나서는 나그네. 모자를 쓰고 옷깃을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글감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 갈망하는 미래 모습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엉뚱해서 혼자 킥킥 거리며 웃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특히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 수필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대로 쓰는 글인 만큼 매력적이다. 글을 쓰다 영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 밖에 나가 걸으면 좋은데 내겐 그럴 여유가 없다. 글감을 머릿속에 넣고 동영상을 들으며 밀린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일상에 치여 재미와 흥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난다.
잠시 생각이 끊겨 ‘글’ 자를 또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공원 산책길에서 만나는 벤치를 닮았다. 잠시 쉬었다 가라고 마련된 벤치 말이다. 어떤 이는 벤치에 앉아 자기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어떤 이는 지친 마음을 달래느라 눈물을 닦기도 한다. 오후 따스한 햇살이 데운 벤치에 누워 봄바람맞으며 낮잠 자는 나를 상상해 본다.
글쓰기는 내가 세상에 자아도취 되게 만들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빠져들었고 세상이 내민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오늘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내가 빠져들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세상 일 아닌가. 글은 갈림길에서 내가 택한 일에 빠져들어 황홀할 수 있게 덫을 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