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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Dec 26. 2023

비위, 안녕하십니까

비위는 무엇을 하고 싶은 기분이나 생각

무엇이 꼬였을까. 하는 일이 순순히 되지 않아 얽히거나 뒤틀렸을까. 비위에 거슬려 마음이 뒤틀린 것일까. 지금 내가 느끼는 꼬였다는 생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난 전자에 강했다. 하는 일이 순순히 되지 않으면 미련을 두지 않고 차선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처음 계획한 바가 아쉽긴 하지만 상황과 처지가 맞지 않으면 쉽게 단념했다. 추후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비하는 편이었다. 꼬였던 경험은 틀에 박힌 나를 깨 주었다. 그래서 닥친 상황에 토를 달기보다 수긍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후자에는 약했다. 비위에 거슬린다는 게 무엇일까. 음식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은 비위란 표현을 쓰곤 했다.

“비위가 상해서 그건 못 먹어.”

식성이 좋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추어탕이나 곱창처럼 모양을 연상해서 못 먹는 음식이 있고 과메기처럼 비린내가 나서 못 먹는 음식이 있다. 그건 음식을 대하는 사람의 기분과 생각일까. 충분한 경험을 해본다면 먹을 수 있을까. 추어탕과 곱창, 과메기와 장어는 처음부터 먹을 줄 아는 음식은 아니었다. 선입견을 깨고 한두 번 먹다 보니 조금씩 맛을 알아갔고 지금은 몸이 허하거나 계절이 되면 떠오르는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비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무엇을 하고 싶은 기분이나 생각’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위로 오빠, 아래로 여동생이 있어 부모에게 사랑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가족의 평화를 추구했다. 다툼으로 분위기가 삭막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틈이 없었다. 그렇게 참고 견디는 게 당연한 아이로 자랐다.


아이라면 참고 견디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순종적이고 착해 대화가 잘 통하는 아들이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이 불합리하면 강하게 거부했다. 그런 표현으로 아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의 비위도 성장했다. 비위에 거슬리면 마음이 뒤틀렸고, 마음이 뒤틀리면 보이는 것이 모두 꼬여보였다. 꼬인 것을 푸는 건 칡덩굴이 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이 맑다. 비위가 상하는 상황이 오면 그 순간 생각을 멈추고 기분 좋은 일을 떠올리거나 책을 읽었다. 힘든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이를 현명하게 보낼 것인지, 피폐하게 보낼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다. 꼬인 인생 역시 누구의 탓이 아닌 나의 탓이란 사실을 이제 조금 알 거 같다. 내년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해라고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눈과 귀는 활짝 열고 입은 웃을 때만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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