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7기 김가영
영상 제작 기술이 단순화되고 보편화 되면서 1인 미디어가 급증하고 있다. 유투브, 인스타그램, 트위치 등 개인이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거대 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출연, 제작, 편집까지 혼자 진행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넘어 공중파 뉴스 방송에서도 1인 제작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소니가 새롭게 출시한 ELC(Enhanced Live-production Control system) 오토메이션 솔루션은 기존의 여러 명이 담당하던 뉴스 제작 과정을 한 사람이 담당할 수 있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로 기존의 뉴스 스튜디오 장비들에 적용 가능하며 기존의 운영을 완전히 자동화한다. ELC 솔루션은 기존의 방송 워크플로우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며 프로덕션의 제작 인원 크게 절감하고 또 비대면 방송 제작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공중파 뉴스는 카메라에 나오는 앵커나 뉴스의 원고를 다듬는 작가 이외에도 음향, 카메라, 그래픽, 디바이스 컨트롤, 프롬프터 조작, 조명 등 뉴스 제작과정에서 필요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ELC 솔루션을 이용하면 한 명의 담당자가 앞서 설명한 모든 요소들을 관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명의 담당자가 각각 다른 지역에 위치한 스튜디오들을 동시에 관리할 수도 있어 진다. 더 이상 각 지역의 스튜디오 마다 담당자들이 배치되야 하는 것이 아닌, 중앙의 한 명의 관리자가 모든 요소를 중앙 스튜디오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방송국 또한 실내 스튜디오에서 여러 명의 직원들을 동시에 수용하기 어려워진 만큼 미국의 주요 방송사 4곳은 이미 60여개가 넘은 ELC 솔루션을 도입해 원격으로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ELC 솔루션을 도입한다면 각 지역의 방송국에는 뉴스를 진행할 한 명의 앵커만 있어도 중앙 스튜디오의 한 명의 관리자가 무리없이 뉴스를 송출할 수 있다.
방송 제작 프로세스가 단순화되고 제작 인원이 절감되면서 방송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방송들이 이제는 최소의 인원과 기술만으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웹 기반 콘텐츠들과 같은 제작 인원으로 공중파 방송을 제작하고 송출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가지 장비들을 한 사람의 담당자가 집에서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대두된 것은 고용 문제였다. 하지만 기본적인 고용문제 외에도 공중파 방송의 제작 인원 절감은 공중파 방송에도, 웹 기반 온라인 콘텐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금까지 많은 인원을 투입해야 했기에 그만큼 제작비가 필요했던 공중파 방송들은 인건비 절감으로 제작비가 크게 줄어든다. 기존의 광고나 투자에 크게 의존했던 공중파 방송사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과도한 광고와 투자자들의 개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공중파 방송 광고 생태계 또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적은 인원과 적은 노동력으로 빠른 업로드와 빠른 전개를 내세운 웹 기반 콘텐츠들은 공중파 방송 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그 장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공중파 방송들이 기존의 인건비로 사용되던 비용을 제작비에 투자한다면 웹드라마, 웹예능 등을 제작하는 중소 프로덕션은 뚜렷한 개성없이는 콘텐츠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공중파 방송국에서 웹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시점에서 공중파 방송 제작 과정의 단순화는 기존의 공중파 방송 제작에 들던 비용을 웹 콘텐츠 제작에 투자해 웹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선택지도 가능하게 했다.
흔히 공중파 방송은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고, 유행에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물론 웬 기반 콘텐츠들보다 공중파 방송 제작자들이 평균 연령이 높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중파 방송은 제작 인원이 많은 만큼 제작 시간이 웹 콘텐츠들보다 훨씬 길고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출 시간적 여유가 적었다. 하지만 ELC 솔루션과 같이 장송 제작 프로세스를 크게 단축하고, AI 카메라 등 자동화 기술 발전하게 된다면 빠른 제작 기간과 적은 노동력은 더 이상 웹 콘텐츠만의 장점이 아니다. 콘텐츠 산업은 웹 콘텐츠들의 빠른 발전과 성장으로 크게 변화되었고, 코로나19 사태로 그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방송 워크플로우의 혁신이 가져올 콘텐츠 산업의 또 다른 변화는 웹 콘텐츠와 공중파 방송 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방송 기술의 발전만큼 그 기술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의 질은 발전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빠른 업로드와 빠른 전개를 내세우는 숏폼 콘텐츠는 이미 주류로 자리 잡았고, 오래 생각하고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보다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스낵 비디오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짧은 이동 시간, 쉬는 시간에 소비하기 좋은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겠지만 적은 노동력과 가벼운 주제의 양산형 콘텐츠가 끊임없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은 오히려 소비자들을 지치게 하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소설이 크게 유행하면서 문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었다.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없고, 깊은 사유가 필요한 책은 읽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인터넷 소설만 본다며 우리나라 독자의 글을 읽는 능력, 독해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인터넷 소설이 문학계는 물론 도서 산업을 크게 위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인터넷 소설의 유행은 낮은 수준과 얕은 주제의식에 지친 독자들에 의해 빠르게 식어버렸고, 독자들은 다시 전문 작가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제는 영상 또한 문학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순간의 즐거움, 순간의 재미를 쫓다 보니 오래 생각할 수 있고, 오래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콘텐츠 산업은 패스트 비디오와 슬로우 비디오,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이를 판단해줄 소비자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 해보고 싶다.
연세대 국문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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