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윤재이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산 해외 주식은 과연 어떤 종목일까? 구글? 아마존? 애플? 정답은 테슬라였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7월부터 9월 9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테슬라에 약 2조 원가량을 투자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생 전기차 기업 니콜라는 순매수 종목 5위에 올라있다. 이는 곧 전기차에 대한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 잠재성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이렇듯 신생 전기차 업체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성 자동차 업계는 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그 해답 중 일부를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최근 1-2년간 현대자동차에서 출시된 새로운 차량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파격적 디자인 하나로, 현대차 제품들은 출시되는 족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불과 5년여 전만 해도 현대차는 모두가 공감할만한 무난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현대차의 디자인 큐가 이토록 급진적으로 바뀌었을까? 디자인 역량이 떨어진 것일까? 역시 한국 디자인은 세계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현대차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만들어낼 역량이 충분함에도 호불호가 큰 디자인의 차량들을 고의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일례로 현대차의 프리미엄 디비전 제네시스의 차량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감탄을 연발해낸다. 즉, 디자인 역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현대차의 파격적 디자인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기차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차이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기차와 내연기관 차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엔진의 유무’이다. 전기차는 엔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차체 어디에든 납작한 배터리를 설치하기만 하면 된다.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는 차체 어딘가에 커다란 엔진을 배치해야 한다. 중심에는 변속기가 지나가야하며, 이를 연결하는 수많은 부품들이 추가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3 BOX 형태의 자동차는 이런 구조적 한계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 한계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달리 말해, 전기차의 디자인적 자유도는 매우 높으며, 전기차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자동차의 형태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성 자동차 제조사들은 기존과 동일한 디자인 형식을 전기차에 적용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가 느낄 이질감을 고려했을 것이고, 단가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굳어진 생산 공정을 바꾸는 것에는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높은 디자인적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출시되는 전기차들의 디자인은 기성 차량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이 문제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른 제조사들도 컨셉트카들을 통해 저마다의 비전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현대차는 양산차량에, 그것도 전기차가 아닌 내연기관 자동차로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 3월 출시된 아반떼와 며칠 전 출시된 투싼은 모두 노골적인 삼각형 패턴의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각형은 그 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자동차 디자인에서 거의 ‘금기시’되었던 형태이다. 생산적 측면에서도, 위와 같은 형태의 과격한 굴곡으로 철판을 성형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중차는 넓은 층의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므로 금기에 대한 도전을 가급적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대중차 브랜드인 현대차가 이러한 업계 관행을 거스른 것이다.
현대자동차 디자인 총괄 이상엽 전무는 유튜브 채널 ‘안오준 TV’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은 미래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만의 미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정립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온 기존 수단들에 질문을 던지며 관행에 도전하는 것이다.
일례로 ‘라디에이터 그릴’을 생각해보자.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 다양한 업체들이 각자의 모델들에 비슷한 형태의 그릴을 적용해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고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엔진을 식히기 위해 공기를 빨아들이는 그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때 과연 라디에이터 그릴은 브랜드 캐릭터로서의 가치를 유의미하게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그렇기에 다른 기업들이 통일된 이미지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때, 각각의 특색이 살아있는 그릴 디자인에서 볼 수 있듯 현대차는 오히려 모델들에 저마다의 개성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동시에 삼각형, 마름모 등 금기시되었던 디자인을 적극 차용하고 그릴과 램프의 경계를 허무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것으로 보아 미래 자동차의 디자인을 진정으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엽 디자이너는 ‘전통적 구조를 깨는 것이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콘텐츠’라고 밝힌 바 있다. 기존 관념처럼 자동차의 정형화된 형태가 아닌, ‘혁신’과 ‘도전’이라는 추상적인 키워드가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판단은 시장의 몫이겠지만, 대중차 브랜드로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시도를 양산차에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담대한 결정이며, 유의미한 행보라 생각된다. 몇여 년 전만 해도 불호 의견이 더 많았던 여론이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중성이라는 뛰어난 무기를 확보했던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금기에 도전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혁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궁무진한 디자인 가능성을 가진 미래 전기차가 도래하는 이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차량들이 통일된 이미지를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금기시되었던 디자인에 도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어쩌면 지금이 다시 원점에서 고민해아할 시기가 아닐까?
연세대 경영 윤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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