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정운채
한 때 도시의 상징이었던 매캐한 매연, 우리의 옷에 담긴 폴리에스테르 섬유, 주유소의 기름 냄새...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잡았던 석유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이동과 소비가 줄어들며 석유 업계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마주했는데요. 모두가 난관에 봉착한 이 상황 속, '환경 보호'를 전략으로 내세운 석유 회사가 있었습니다. '석유 회사'와 '환경'을 떠올렸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는 '오염'과 '파괴'이지 '보호'가 아닌데, 이 회사는 왜 이런 전략을 내세운 걸까요?
올해 2월, 세계 최대 석유 및 가스 회사 BP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Net Zero'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점차적으로 석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 및 배출량부터 줄여나가, 2050년에는 궁극적으로 환경 친화적인 기업을 만들며 2015년 파리 기후 협약의 목표를 준수하겠다는 것이죠. 석유가 초래하는 탄소 배출량을 감안했을 때, 이 전략이 과연 현실적인지, 또는 BP가 환경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Greenwashing'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많았는데요.
그랬던 BP가, Net Zero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며 실질적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 8월 5일자 The Washington Post에 따르면, BP는 앞으로 새로운 국가에서의 석유 및 가스 탐사를 중단하고, 석유/가스 생산량을 40%로 낮출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탄소 배출을 약 1/3로 낮추고, 저탄소 에너지에 대한 자본 지출을 10배 증가시키겠다는 선언인 것이죠. 투자사 Raymond James의 Senior Energy Analyst인 Pavel Molchanov의 평을 빌리자면, BP는 '에너지 전환에 대해 실제적인 관점으로 자세히 접근한 최초의 슈퍼메이저'가 된 셈입니다.
BP의 CEO Bernard Looney는 이것이 Net Zero를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접근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는데요. 앞으로도 BP가 환경 친화적인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는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BP는 International Oil Company에서 Integrated Energy Company로의 역사적 전환을 꾀하고 있습니다. 즉, 단순 석유 회사가 아니라 저탄소 에너지, 재생 에너지 등의 다양한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가지겠다는 것이죠. 실제로 저탄소 initiative에 대해 2025년까지 30억 달러, 2030년에는 5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도시에 재생 에너지, 백업 배터리, 금융 분야를 포괄하는 'Power Package'에 대한 조언을 제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환경 친화적인 변화와 재생 에너지로의 관심 전환이 순탄하게 흘러올 수 있을까요? Financial Times의 9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BP는 변화의 과정에서 드는 비용으로 인해 175억 달러의 배당금을 삭감했습니다. 영국 연기금은 BP의 배당금에 의존하고 있기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는데요. 그렇다면 BP의 주가는 떨어졌을까요?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BP의 주가는 환경 친화적 움직임 이후 7.8% 이상 급등해 다른 석유회사들을 앞지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아가 비평가들에게서도 '기후변화 상황에서 산업계가 해야 할 일을 앞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았는데요. 나아가 현재 자산 운용가들이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대한 압박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한 전략이 좋은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ESG'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비롯된 현상인데, ESG가 과연 무엇이길래 이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알아봅시다.
이는 다른 석유 회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일례로 Exxonmobil의 경우 새로운 석유 탐사와 생산을 강조했으며, 배당금을 유지시키려고 노력중입니다. 또한 8월 24일자 Financial Times에 의하면 Exxonmobil과 Chevron은 기후 변화 관련 움직임에 반대하는 로비를 했다는 이유로 대형 자산운용사 Storebrand에 의해 투자금을 회수당했습니다. 그 외 여러 에너지 회사들 역시 새로 강화된 기후 정책을 따르지 않아 퇴출당했는데요. 현재는 현상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는 'ESG 붐'에 빠져있습니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M&G Investments의 기업 재무&스튜어드쉽 수장 Rupert Krefting에 의하면 ESG는 가히 '폭발' 했다고 합니다. ESG란 Environment / Society / Governance의 약자인데요, 기업들이 재무적 가치 추구를 넘어 환경, 사회, 거버넌스적 가치를 추구할 것을 촉구하는 의제입니다. 왜 ESG가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투자자들은 ESG 요소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단순히 좋은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을 넘어, 재무적으로도 높은 효율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ESG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들은 더 지속가능한 생산 및 판매 체인을 만들어내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오래, 안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것이죠. 또한 소비자들에게도 공동체의 책임감을 이행하고 있는 기업으로 비춰지며, 기업의 책임을 다하는 면에서 타 기업보다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ESG의 부상과 함께 그저 표면상으로, 투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ESG로 눈속임을 할 수 있다는 'Greenwashing'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합니다. 아직 환경, 사회, 거버넌스적 가치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정립되는 중이고, 어느 정도는 비객관적인 부분이 있기에 그러한 우려는 타당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세계 여러 유수 기관에서 ESG rating을 정립하여 기업의 평가와 지표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실제로 투자자들의 큰 고려 사항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더욱 투명화하기 위해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도 지표의 점검과 기록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보여주는 것은, 기업 생태계의 근본적 가치 변화입니다. 이전에 기업의 목표는 그저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그 이익이 누구의 이익인지에 대한 초점이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파이를 전반적으로 키운다면, 기업에게 돌아가는 파이도 커지지 않을까요? 또한 그 파이를 먼저 늘리는 사람에게, 결국 더 많은 파이가 돌아가지 않을까요? ESG 추구가 가져오는 재무적 이익이 검증되는 만큼, 앞으로 기업들이 가져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기업이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로 살아남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경영 정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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