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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도전장을 내민 퀴비, 숏폼 OTT의 미래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이민희


OTT의 바다 속 반짝이며 등장한 존재, 퀴비


   “브리저튼 마지막 화 봤어?”, “아 넷플 보느라 어제 밤샜어”, “너 왓챠도 해?” 

   바야흐로 OTT의 시대가 왔다. 넷플릭스 4인팟을 구한다는 인스타스토리가 종종 올라오고, 새로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오면 한동안 핫한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TV를 보느라 밤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기가 어려워졌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웨이브, 티빙··· 수많은 OTT 서비스들은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유저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 새로운 경쟁력을 뽐내며 2020년 4월 따끈따끈하게 출시된 OTT 서비스 ‘퀴비(Quibi)’가 있다. “Big Stories, Quick Bites.” 퀴비는 Quick + Bites 이 두 단어를 조합해 탄생한 이름이다. 명칭에 걸맞게 퀴비는 모바일로 짧은 호흡의 영상을 선호하는 유저들의 행동패턴을 파악하여 10분 안팎의 짧은 콘텐츠만 다룬다.


퀴비의 구동 화면


   언제 어디서든, 이동하는 순간에도 내용을 끊어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오직 모바일을 위한, 모바일에 의한 10분 미만의 숏폼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이 퀴비만의 정체성이었다. 자체적으로 개발된 ‘턴스타일(Turnstyle)’ 기능은 유저가 이동 중에 화면을 움직이며 시청하더라도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영상을 가로나 세로로 실시간으로 전환 가능하게 만든 기술이다.


가로/세로 전환 가능한 턴스타일 기능 [출처: 블로터]


   퀴비는 드림웍스를 공동창업한 제프리 카젠버그와 실리콘밸리의 여제라 불리는 멕 휘트먼이 설립을 주도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할리우드 거물급 감독들도 콘텐츠 제작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신세대 유저에게 안성맞춤인 서비스에, 믿음직한 경영진과 감독까지 갖춘 퀴비는 투자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10억달러로 시작한 퀴비는 서비스 시작도 전에 4억달러를 추가 조달했다고 한다. 정말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OTT 시장에 합류한 퀴비. 작년 4월 시장에 진입한 이후 약 1년이 지난 현재 얼마나 성장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퀴비는 서비스를 접었다. 그것도 서비스를 런칭한지 6개월만인 작년 10월에 폐업을 결정했다. 수많은 경쟁사들 가운데 혜성처럼 등장한 퀴비는 그렇게 혜성처럼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매력적이지 않으면, 사라진다.


   “짧아야 본다, 퀴비… 넷플릭스 떨고 있니” - “천재들의 굴욕… 10분 동영상 퀴비 반년만에 문닫아”

   위 문장들 가운데 전자는 퀴비 런칭 전 작년 1월의 기사, 후자는 서비스 종료 후 작년 10월에 나온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이 두 문장만 비교해봐도 퀴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얼마나 냉담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퀴비는 출시 일주일 만에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순위 50위권에서 탈락했고, 90일의 무료 체험일이 끝나는 시점에 전체 이용자의 90퍼센트를 잃었다고 한다. 초기 유료 이용자 수 약 90만명에서 7만명만 남은 것이다. 서비스를 접은 작년 10월, 전체 이용자 수 50만 명이라는 사업 부진을 기록하며 퀴비는 끝내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 투자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시된 퀴비가 처참한 실패로 끝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1. 무기이자 독이 된 숏폼

   5분에서 10분 가량의 짧은 동영상을 제공하는 퀴비는 애초에 이동하면서 영상을 시청하는 유저들을 주요 타겟으로 예상했다. 이에 모바일에 최적화하여 짧은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시청할 수 있는 숏폼만으로 콘텐츠를 기획했다. 그러나 퀴비의 예상은 빗나갔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오랫동안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디바이스에서도 이용 가능한, 시간을 길게 잡고 시리즈를 정주행 할 수 있는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퀴비는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다만 이러한 이유가 퀴비 측의 비겁한 변명이라는 시각도 있다. TV가 아닌 모바일 위주 플랫폼인 틱톡이나 유튜브는 코로나 시국에 오히려 이용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타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퀴비라는 플랫폼 자체가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퀴비 이용료는 광고가 포함된 경우 월 5달러, 광고가 없는 경우 월 8달러였다. 5달러 이용료의 경우 광고가 붙는데, 퀴비 콘텐츠가 5분~10분 사이의 영상임을 감안하면 긴 동영상일 때보다 더 자주 광고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광고 시청에 부정적인 유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8달러 이용료를 선택하기엔 넷플릭스와 가격이 비슷해지면서 가성비가 떨어지고, 무료료 이용할 수 있는 유튜브나 틱톡의 경쟁력을 압도하기엔 부족한, 어정쩡한 포지션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2. 유저의 니즈에 치밀하게 반응하지 못했다는 근본적 원인

   퀴비는 모바일과 숏폼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MZ세대 유저를 겨냥하고 출시된 서비스이다. 그러나 실제 퀴비 이용자의 리뷰를 살펴보니 정작 서비스 런칭 후에는 유저의 목소리를 열심히 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비는 할리우드 스타 감독과 제작사들을 섭외해 숏폼 콘텐츠를 고급화하는 전략을 내세웠는데, 실제로 콘텐츠 제작 비용은 분당 10만달러로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주요 시청자인 MZ세대를 사로잡을 만한 예능, 스포츠 콘텐츠들이 부재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실제 퀴비 유저의 리뷰를 살펴보면 ‘Quibi, as it stands, is not going to be worth the $5 per month minimum to most.’, ‘there’s very little rewatch value either given the short episode length.’ 등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다. 퀴비와 다르게 경쟁사인 유튜브나 틱톡에서는, 콘텐츠가 퀴비에 비해 퀄리티는 낮을 수는 있으나 이용자들이 스스로 만든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동영상이 다량 생산되어 MZ세대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모바일 전용 숏폼이라는 컨셉에 매몰되어 확장성이나 사용자 편의성을 간과했다는 리뷰도 많았다. 퀴비는 초기에 ‘only 모바일’ 전용을 지향하며 태블릿이나 TV의 미러링도 지원하지 않았다. 퀴비 유저들이 집 밖에서는 스마트폰을 전적으로 사용하는 게 맞긴 하지만, 집에 와서는 대형 디스플레이로 영상을 시청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I know Quibi is going to fail cause my mom keeps asking me how to put it on the TV.’, ‘Quibi still lacks a web app, support for gaming consoles such as the Nintendo Switch, and apps for either Roku or Amazon Fire TV devices.’ 등의 서비스 리뷰에서 퀴비가 대형 화면에서의 서비스 이용을 지원하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는 유저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OTT와 숏폼의 미래


   살펴보았듯 퀴비는 야심차게 등장했지만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해당 사례를 통해 OTT 시장에서의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첫째, 수많은 경쟁사 가운데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며, 둘째, 플랫폼의 기획에 있어서 유저의 니즈를 명확히 파악하고 빠르게 대응해야 함을 또 한 번 되새겼다. 퀴비는 이처럼 비교적 확실한 실패의 원인이 드러났지만, 이미 서비스가 종료되었기에 이러한 피드백을 적용하여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카카오TV의 구동 화면 [출처: 카카오tv]


   그래서 퀴비와 비슷한 색을 띠는 국내 플랫폼 ‘카카오TV’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카카오TV는 퀴비와 매우 흡사하게, 짧은 호흡의 콘텐츠를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유통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네이버 인기웹툰 원작인 ‘연애혁명’과 같이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대작보다는 세대별 취향을 저격하는 모바일 맞춤 오리지널을 제작한다는 점이 퀴비와의 차별점이다. 과연 카카오TV가 퀴비의 전철을 밟을지, 혹은 또 다른 숏폼 OTT로서 새로운 성공모델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고 흥미롭다. 카카오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국시장에서의 독보적인 플랫폼 경쟁력과 월 구독료가 없다는 점이 기대되지만, 앞서 되새겼듯 카카오TV가 얼마나 매력적인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낼지, 유저의 니즈를 얼마나 정확히 겨냥한 플랫폼을 만들지가 사업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TV가 퀴비의 사례를 뛰어넘어 국내외 OTT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길 바란다.



연세대 불어불문 이민희

2mini031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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