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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혁신적이었던 이스포츠 리그의 몰락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이동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틀렸다. 모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는 아니다. 오직 잘 한 실패만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머지는 그냥 실패다. 오히려 이런 실패는 기업이나 조직을 망하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한 때 전세계적으로 잘 나갔던 한 이스포츠 리그의 실패를 다루며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했다면 위기가 아닌 성공의 기회로 역전할 수 있었을지 알아본다.



블리자드의 야심작


    오버워치는 2016년 블리자드에서 공개한 하이퍼 FPS (First-person shooting) 장르 온라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6명이 한 팀이 되어 각각 딜러(공격군), 탱커(돌격군), 힐러(지원군)를 선택할 수 있고 거점 공방, 화물 공방 등의 목표를 위해 협업하여 상대 팀과 싸운다. 전 세계 게이머들은 오랜 기간 RTS와 전통적인 FPS 장르가 대세인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피로감을 느끼던 차였다. 오버워치는 캐릭터성과 몰입감을 둘 다 잘 살린 이 기존에는 거의 없던 하이퍼 FPS 장르였고 게이머들은 게임성이 뛰어난 오버워치의 등장에 열광했다. 특히, 블리자드라는 게임 회사는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오랜 기간 한국인들에게 사랑 받아왔기 때문에 오버워치는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리자드는 오버워치를 출시한 2016년 전 세계 연 매출 66억 1천만 달러 (약 7조 5,981억 원)를 기록했고, 이는 전년도(2015년) 연 매출 46억 6천만 달러 (약 5조 3,566억 원) 보다 42%가 증가한 수치였다. 영업 이익은 14억 1천만 달러(한화로 약 1조 6,242억 원)로 그야말로 오버워치는 블리자드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다. 순식간에 오버워치는 전 세계 2500만 유저들을 확보했고 2년 뒤인 2018년에는 4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오버워치의 인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한국에서 몇 년 동안이나 PC방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켰던 리그 오브 레전드 (이하 '롤')를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몇 달 동안이나 밀어냈다. 한국에서는 이스포츠 종주국답게 발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들이 생겼고 자체 리그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호황, 호실적 속에서 블리자드는 거대한 이스포츠 리그를 조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전망은 밝았다. 일단 게임 자체가 진입 장벽이 꽤 낮았으며, 2016년과 2017년 한국에서 진행된 자체 리그가 전성기 스타크래프트 못지 않게 성공하면서 전세계적인 리그 출범을 꿈꾸는 블리자드의 리트머스지가 되어 주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오버워치 리그 출범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모건스탠리는 2017년 오버워치 리그가 연 매출 최소 2천만 달러 (222억 원)에서 평균 1억 달러 (1,112억 원) 이상, 그리고 최상의 조건이 갖춰지면 최대 7억 2천만 달러 (8,000억 원)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라이선스비, 광고비, 스폰서십, 티켓 및 IP 관련 상품 판매 수익 등을 합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이스포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전 세계 도시들을 연고지로 한 12개 팀으로 조직된 오버워치 리그가 세상에 나왔다.


왼쪽: 오버워치 게임 표지. 오른쪽: 한국에서 진행된 자체 리그 오버워치 APEX

오버워치 리그: 화려한 개막


Esports Awards 2018 올해의 e스포츠 라이브 이벤트 "오버워치 리그 그랜드 파이널"

The Game Awards 2018 소식: 오버워치 '올해 최고의 e스포츠' 수상


    오버워치 리그는 시작부터가 매우 혁신적인 이스포츠 리그였다. 우선, 모든 리그 선수들의 최하 연봉을 5000만 원 이상으로 보장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게임 리그들의 선수 대우가 형편 없고 팀과 스폰서들이 선수를 살인적인 연습량과 적은 페이로 혹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다. 이에 비해 오버워치 리그는 매우 선수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으며 선수들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일반 대중과 게이머들도 환영했다. 리그 출범 이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스타 플레이어들에게는 억대가 넘는 연봉이 제안되었으며 많은 오버워치 선수들과 실력자들이 오버워치 리그에 도전하게 해 전반적인 선수 풀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또한 기존에 있던 리그가 아니라 오랜 기간 기획하고 인위적으로 출범시킨 리그인 만큼 참가비와 스폰서십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리그였다. 참가비는 무려 2,000만 달러이고 2019년에는 3,50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따라서 팀에게는 스폰서가 필수적으로 붙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들 스폰서십의 네임 밸류가 매우 높았다. 로지텍, hp, T-mobile과 같은 게이밍 관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팀을 지원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버워치 팬층을 겨냥했다. 리그 자체에 대한 스폰서십은 더 엄청났는데 인텔, IBM, 코카콜라, 디즈니, 토요타 등의 게이밍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대기업들을 포함한 20여개의 기업이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오버워치 리그의 예상 규모를 보고 광고 및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만큼 재무적으로든 게임적으로든 좋은 평가를 받은 이스포츠 리그였다고 할 수 있다. 트위치는 이스포츠 역사상 역대 최고액인 9천만 달러에 연간 중계권을 계약했고  2018년 리그의 스폰서십 수익만 1억 5천만 달러를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 최대 시청률 2,125,324명을 기록했으며, 오버워치 리그의 가치는 측정이 불가능 하다는 평가까지도 나왔다.


2019년 오버워치 리그의 결승전 Grand Final. 12000석 이상이 매진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갔다. (출처: estnn.com)

확장성이 부족하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 시청자 수와 시청시간이 지속적으로 줄면서, 앞서 지대한 찬사를 받았던 오버워치 리그의 명성은 현재 사실상 추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이유에서 실패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로 게임 자체가 혁신을 멈췄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밸런스 패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오버워치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메타 고착화와 캐릭터 부족을 개선하는 데에 시큰둥했다. 심지어 2020년 이후로 아예 신규 캐릭터 개발을 아예 멈춰 버렸다. 이는 게이머들, 나아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하는 선수들이 매번 같은 캐릭터와 조합을 사용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발매 당시 30개의 캐릭터 중 절반은 딜러, 나머지 절반을 탱커와 힐러가 나눠 가졌는데 이후에도 블리자드는 플레이 하는 맛과 보는 맛이 있는 딜러 쪽만 패치하고 신규 캐릭터를 많이 내놓는 행보를 보였다. 이는 전체적인 밸런스에 큰 악영향을 주었고 선수들이 매번 같은 메타 몇 개를 돌려 쓰게 되는 지루한 현상이 일어났다. 보는 맛이 중요한 FPS 이스포츠에서 팬들은 똑같은 조합에 식상함을 느끼고 게이머들도 게임이 발전을 안 하니 지루해졌다. 이러한 게임성을 해치는 정책과 방만함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게임 자체가 재미 없어지고 이에 기반한 리그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1년 사이에 얼마나 사정이 악화되었는 지가 잘 드러난다. 블리자드는 이 모든 것을 코로나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밸런스, 캐릭터 패치 관련 게임성을 개선하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원하는 게이머들을 무시한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오버워치 리그의 2019년과 2020년 통계 비교. 시청자 수, 시청시간 등 모든 면에서 실적이 좋지 않다. (출처: esports charts)

운영 상의 문제가 많다


    두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성 스포츠는 몇 십 년, 혹은 백 년을 넘게 이어져 온 팀들이 많다. 그만큼 지역사회가 만들고 팀들이 그 지역사회의 일부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 리그에서도 지역 연고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다시 말해 기성 스포츠 리그에서 지역과 그 사회 문화적 요소들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기성 스포츠 리그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이스포츠 리그에도 이 문법이 적용된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이스포츠인 롤의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는 지역별로 자연스럽게 생긴 팀들을 기반으로 각국 리그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연고지 개념이 생기니 리그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토너먼트인 롤드컵 결승전을 전 세계 1억 6천만 명이 동시에 시청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버워치 리그는 가입비를 내고 리그에 가입할 도시와 스폰서 기업들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2018년 출범 리그 가입비가 2,000만 달러에 이르렀으니 어느 정도 규모가 되지 않는 이상은 가입도 하지 못 했다. 기업이 무조건적으로 팀 운영에 개입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배경에서 팀 명에 들어가는 지역의 정체성은 찾을 수 없었다. 각 팀은 오로지 성적을 위해 로스터를 구성했고, 그 결과 선수들이 해당 팀 연고지와는 전혀 무관한 출신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대부분이 한국인들이었고 잘 하는 팀들 대부분이 선수들부터 코치진 까지 전원 한국인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세계 리그를 표방하는 것 치고는 단일국가 출신 비중이 지나치게 높았으며 용병 쿼터제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따라서 도저히 지역 사회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스포츠 리그가 수익을 창출할 수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가장 큰 수익이 중계권에서 나오고 그 다음은 스폰서십 및 광고, 그리고 IP 활용 굿즈 등의 컨텐츠 사업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급조된 팀이 자신의 지역 이름만 달고 하는 경기를 응원할 리 없으며 이들을 위해 소비 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리그 운영사인 블리자드가 완전히 오판한 부분이다. 미국의 MLB나 NBA가 용병 쿼터제 같은 제한 없이도 잘 나가는 이유는 미국이 가장 뛰어난 선수 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버워치 리그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데 뛰어난 선수 풀은 한국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 잘 운영되고 있는 롤은 자연스럽게 생긴 지역 리그를 존중하고 인정했다. 동시에 전세계적인 이벤트인 롤드컵을 운영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려 지역 리그를 살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적인 리그를 섣불리 만든 블리자드의 잘못이다

뉴욕 연고 팀인 뉴욕 엑셀시어 로스터. 이 팀은 3년째 모든 구성원이 한국인들이다. (출처: namuwiki)

결국 문제는 혁신이다


    앞서 살펴본 오버워치 리그의 흥행과 실패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문제는 혁신이다. 오버워치 리그는 혁신적인 이스포츠 운영 시스템으로 선수 육성과 스폰서십에 긍정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이 기초를 다져놓은 혁신적인 선수 보호 시스템은 인권과 선수 풀 확대 측면에서 이스포츠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수많은 기업들에게 이스포츠 광고와 팀 스폰서십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어 이스포츠 후원 규모를 키워놓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 자체에 혁신이 없어졌다는 문제와 전세계적 리그를 표방하면서 지역 연고제를 느슨하게 도입한 안일함이 결국 리그를 망쳤다.


    만약 블리자드가 다시 리그 출범 때로 돌아간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리그 운영을 기민하게 바꿔야 한다. 게이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속적이며 밸런스가 갖춰진 캐릭터들의 전반적인 패치를 진행했다면 게임의 확장성과 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거창한 전세계적인 리그 출범을 기획하기 보단 작지만 이미 지역 기반으로 갖춰져 있던 중소 리그들을 인정하고 육성하며 스폰서십 중계를 해주는 식으로 점진적인 리그 확대를 기획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블리자드가 염원하던 리그 지역 연고제 완전 도입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블리자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하다. 아직 정량적인 자료는 나오지 않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2021년 상반기 상황이 안 좋았던 2020년 보다도 더 안 좋을 전망이다. 게다가 게임성 부분에 있어서는 1년 가량 신규 캐릭터를 내놓지 않고 아예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의 게임성 관련해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오버워치2'라는 구체화도 되지 않고 기약 없는 신규 게임에 대한 정보만 단편적으로 던지고 있다. 심지어는 프로 게이머들도 다른 게임으로 전향하거나 은퇴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오버워치를 떠나면서 프로 게이머들은 하나 같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한때 너무나도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 재미있게 봤던 리그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 이동현

paul3ldh1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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