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정운채
‘Fashionately Fight Poverty in Africa’ 패션으로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브랜드 ‘에트리카’의 슬로건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감,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문양, 아프리카의 원단인 ‘키텡게’와 ‘캉가’… 2014년 봄에 창업한 에트리카는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활용하여 브랜드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갔다. 에트리카를 창업한 안지혜 대표는 “아프리카인들이 자국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고, 그 과정에서 저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낸다면…(출처: 탑클래스, 2016.02, 이채희 인턴기자)” 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윤리적 소비가 아니라 브랜드의 디자인으로서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야심찬 비전을 가지고 시작한 에트리카는 창업 초기, ‘텀블벅’에서 1000만원 이상의 후원을 이끌어냈으며 열매나눔재단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되었다. 에일리와 수지 등 유명 연예인 역시도 에트리카의 의상을 입으며 2030 여성 쇼퍼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에트리카만의 화려한 아프리카 감성은 에스닉한 의상을 좋아하는 패션 피플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의 정체성을 살려 계절별로 ‘한복과 아프리카의 만남’ 등 키워드를 잡아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에트리카의 발자취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패션 브랜드로서의 존재감을 넘어 윤리적 패션을 추구했던 에트리카는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네 명의 현지 학생을 선발하여 에트리카 교육생으로 디자인 관련 교육을 진행하였으며, 해당 교육을 위해 사업 초기 자본 전부를 사용하였다. 그 이후에도 사회적 기업 지원금 및 의류 판매 수입을 교육 분야에 투자하며, 아프리카 패션 산업의 자립을 위하여 고군분투하였다. 이는 향후 해당 교육생들이 디자이너로 성장하여 에트리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을 내다본 전략이었다.
그러나, 감춰진 발자취
필자가 에트리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여름, 고등학교 2학년으로서 즐겼던 학교 축제였다. 교내 패션동아리는 축제 때 런웨이를 진행하였고, 이 때 에트리카와의 협찬을 통하여 피라는 에트리카 브랜드의 옷을 입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감각적이고 화려하면서 ‘힙’한 디자인에 매료되었으나, 당시 에트리카 브랜드 원피스의 평균 가격은 10만원을 호가하여 학생 신분에서는 입고 다니기 쉽지 않은 가격대였다.
그 이후로 4년이 지난 2020년, 대학생이 되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생긴 필자는 그 당시 가지지 못했던 에트리카 의상이 문득 생각나 브랜드를 검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주한 검색 결과는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에트리카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한 마지막 게시물 업데이트는 2017년 12월.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공식 홈페이지는 이미 도메인이 넘어간 상태였고, 구글링을 통해 찾아낸 공식 판매 사이트에는 아무 제품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에트리카의 ‘Shop’ 카테고리에서는 다섯 가지 하위 카테고리를 볼 수 있었다. SOLD OUT, ALL 4,900, ALL 9,900, ALL 19,900, ALL 24,900. SOLD OUT을 제외하고는 모든 카테고리에서 상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에트리카에서는 더 이상 상품을 생산하지 않게 된 것일까?
2021년 현재 환경, 사회, 거버넌스적 가치를 의미하는 ‘ESG’는 기업 경영의 주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그러나 에트리카가 런칭을 시작했던 2014년은 사회적 기업 및 윤리적 경영에 대한 국내 관심이 지금보다 저조한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트리카의 대표들이 내린, 2016년까지 수입을 가져가지 않으며 아프리카 교육생에게 전액 투자하겠다는 결정은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다가오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구매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창업 후 2년 동안 대표들에게 돌아가는 수입이 없었다는 것 역시도 브랜드 유지에 단기적인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 역시 있다.
에트리카는 아프리카에서 수입해온 원단을 활용하여, 한국의 소규모 공장에서 종류별로 20벌씩의 의상을 소량 생산하였다. 이렇게 생산된 에트리카의 제품은 온오프라인을 합쳐 20여개 매장에서 판매되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디자인 교육을 진행하고, 원단을 수입하는 데에 들여온 비용과 대비하여 소량 생산된 20벌의 제품은 충분한 매출을 내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더불어, 소규모 생산이기에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한계점 역시 존재하였을 것이다.
만약…
패션을 통해 아프리카의 코코 샤넬을 키워 내고 아프리카인의 자립을 꾀했던 에트리카의 비범한 시도를 감히 ‘실패’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윤리적 의도와 더불어 감각적인 디자인을 통해 에스닉한 바람을 가져왔던 에트리카의 시도, 그리고 에트리카에서 만들어 낸 높은 품질의 의류들은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사회적 가치에 대한 소비자 및 정부, 기업의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에 에트리카가 런칭했더라면 더 많은 지원 속에서 윤리적 시도를 병행하며 기업의 상생을 꾀하기가 비교적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2014년 당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하여 ESG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높았던 유럽 및 해외 시장의 진출을 도모해보는 것 역시도 하나의 방법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역시 든다.
만약 에트리카가 국내 소규모 공장에서 소량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고정비 및 인건비가 낮은 점을 활용하여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양의 옷을 생산했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옷을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부터 먼저 타깃하여 사회적 가치를 브랜딩하였다면?
‘만약’이라는 단어는 어쨌든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에트리카가 의류 시장에서 오랫동안 입지를 확보했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에트리카가 윤리적 가치와 더불어 기업의 이윤 역시 함께 장기적으로 추구할 방향을 도모했었다면, 지금도 에트리카의 옷을 공식 매장에서 사입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회적 가치와 기업의 이윤 추구는 많은 사회적 기업이 마주한 딜레마이다. 에트리카를 비롯하여 여러 기업이 기업 가치 및 목표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기업을 오랫동안 생존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이 때 이들을 위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기업의 ESG 관련 가치에 대하여 충분히 주목하고, 이를 소비할 수 있는 관심과 눈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정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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