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최승연
발에 달린 자동차다. 그렇다. 믿기지 않겠지만 저 신발 하나가 '2000만원'이다. 2000만원이면 평범한 자동차를 살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 자동차를, 아니 신발을 원한다고 살 수 있는가? 아니다. 돈이 있어도 못 산다. 세계적인 프랑스의 명품 패션 기업 디올과 전설적인 스포츠 브랜드 조던의 콜라보로 탄생한 에어 조던 1 OG 디올 리미티드 에디션 (이하 디올 조던). 해당 제품에 '당첨'될 확률은 0.16%였다. (작년 6월 진행된 디올 조던의 래플에는 5백만명이 넘게 응모하였고, 정작 당첨자는 8천명 뿐이였다.) 여기서 말하는 당첨은 공짜로 제품을 주는 것이 아닌, 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당첨이다.
그런데 신발에 당첨? 그렇다. 요즘 스니커즈를 비롯한 패션 업계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는 '래플' (추첨)이고 디올 조던 제품 역시 이 방식으로 구매권에 대한 부여가 이루어졌다. 신발이나 패션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쯤은 이러한 신발 구매 방식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나의 한정판 제품이 발매되면, 국내외 다수의 판매처에서 래플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로또를 사듯, 자신의 이름을 올려 제품에 응모하고, 당첨되면 발매가 정가에 구매를 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인을 총동원해 가능한 모든 사이트에 응모를 넣지만 한 족 당첨될까말까다. 아 물론 내 얘기다.) 이런 래플의 흐름 속, 제품 별 응모 가능한 래플 사이트를 모아서 정리해주는 '럭키 드로우'와 같은 사이트까지 등장하였다.
래플과 함께 가는 단짝 단어로는 '리셀'이 있다. 말 그대로 웃돈을 주고 당첨된 제품을 사고 파는 것이다. 발매가가 270만원이였던 디올 조던은 발매 직후, 2000만원까지 그 리셀가가 치솟았고, 돈이 있어도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품귀현상이 발생하였다. 40배 이상의 가치를 기록한 셈이다.
쉽게 말해, 리셀을 목적으로 이러한 신발들에 당첨되면, 잭팟!이 터진 것이라 생각하면다. 래플 제도의 등장과 함께 어느샌가 스니커즈 씬에서는 리셀에 목숨을 거는 '전문 리셀러' , '전문 리셀 업자', '신발 코인' 등의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달에는 나이키 부회장의 아들이 1억 4천만원 가량의 한정판 나이키 신발을 구매 후 리셀을 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어, 결국 나이키 부회장을 사퇴하기까지 이르렀다. 또한 국내외의 StockX,KREAM,XXBLUE를 비롯해 다양한 신발,의류 리셀 거래 플랫폼 시장또한 매우 활성화되고 있다. 이만큼 '래플'과 '리셀'은 하나의 재미있는 문화이자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러한 신기한 방식의 '래플'이 사용되는 것일까? 한정판이더라도 그냥 팔면 안되는걸까?
전 세계 스니커즈 시장은 계속해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2026년에는 119,510M USD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우 크고, 유망하고, 결국 '돈'이 되는 시장이다. 이러한 시장 속, 왜 수 많은 브랜드는 '래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인가.
래플이 계속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는 이유는, 래플은 인간의 경쟁 심리와 소유욕, 그리고 FOMO(fear of missing out)를 극대화시키는 매우 지능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판매 방식만 기존의 선착순에서 ‘제비뽑기’하나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런데 고객 입장에서는 신발에 당첨되는 것이 하나의 ‘영광’처럼 그려지게 된다. 구매를 하고 싶지만, 당첨이 되어야지만 가능하다는 심리에, 본인은 미당첨인데 타인은 당첨이 된다는 상대적 상황까지 더해져 극강의 경쟁 심리와 소유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이내 브랜드의 충성 고객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되게 된다.
또한 최근에는 오프라인 래플 시, 지정된 드레스 코드를 착용하고 방문해야하 래플의 기회를 주는, 일명 ‘드코’가 또 다른 래플 문화로 부상하고있다. 대게, 드레스 코드는 발매되는 신발의 회사의 의류로 지정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레스 코드에 통과하기 위해 해당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기 위해 또 다른 구매를 발생 시키는 것이다.
결국에는,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제품 구매 등을 통해, 기업에게 이득이 되는 사이클이 알아서 돌아가지는 셈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최소 비용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루어 낼 수 최고의 방법이다.
앞서 말한 듯이 필자는 몇 년째 꾸준하게 래플을 넣어오고 있지만, 상품에 당첨이 된 것은 두 세 번 뿐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야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필자와 같이 느끼는 스니커 매니아는 굉장히 많다. 실제로 나이키 매니아와 같은 신발 커뮤니티에 방문하여 글을 살펴보면, 상당 수의 글이 지속적인 미당첨에 관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래플을 통한 자사 이익 증대와 브랜딩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소비자들에 대하여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물음표이다. 지나친 소량 재고에 대한 래플과 연속적인 미당첨은 오히려 소비자에게 있어,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 하락과 반감까지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브랜드로부터의 고객 유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필자는 나이키를 비롯한 래플을 진행하는 스니커즈 브랜드들에, 지속적 미당첨에 대한 방지/보상 시스템 구축을 제안해보고싶다. 예를 들어, 10회 미당첨 시, 자사 브랜드 구매 때 사용할 수 있는 10% 할인 쿠폰과 같은 '과속 방지턱'이 존재해야, 고객 입장에서도 꾸준하게 래플을 시도하고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단기간적 관점에서는, 기업이 이러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손실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이러한 인센티브 제공은 고객 유출 및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대한 확률성을 낮추어, 브랜드 이미지 및 제품 가치 상승의 효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연세대학교 문화디자인경영학과 최승연
seungyeon96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