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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이 왜 구찌에서 나와?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9기 정승훈

2020년 12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이끄는 구찌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과의 협업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구찌는 협업 소식을 전하며 도라에몽에 대해 “2112년 9월 3일 태어난 고양이 타입의 로봇은 노비타라는 어린 소년을 돕기 위해 4차원 주머니를 든 채 22세기로부터 보내졌습니다. 장난기가 많은 도라에몽은 쥐를 싫어하고 달콤한 팬케익인 도라야키를 좋아합니다.”라고 소개했다. (하입비스트)


도라에몽X구찌 (https://hypebeast.kr/2020/12/gucci-doraemon-collaboration-capsule-collection-release-info)


콜라보레이션? 콜라보레이션!


콜라보레이션이란 공동연구나 공동제작을 뜻하는 것으로 단체나 조직, 개체가 서로 협력, 합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콜라보레이션은 주로 서로 다른 기업들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협력, 합작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최초의 콜라보레이션은 메디치 가문이 철학자, 시인, 과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후원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서 파생된 단어인 '메디치 효과'는 관련이 없는 이질적인 분야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효과를 일컫는 말이다. 


콜라보레이션의 목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브랜드 간 상호 보완의 목적이다. 나이키와 애플이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보강된 헬스케어 서비스'을 바라고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니즈 충족을 위해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애플워치 나이키 에디션을 탄생시켰듯, 브랜드 간 공통된 니즈를 위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브랜드들은 마케팅 측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기존에 없던 스토리를 제시하거나 브랜드 간 연관성을 제시하는 등 고객들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며 고객 경험의 새로운 장을 펼쳐주기도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브랜드 간 융합 창조의 목적을 가질 수도 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으로서의 콜라보레이션에서 나아가 기업과 기업이 자원의 확보, 정보의 공유,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전략적 제휴, 합작 투자 등의 형태로 협력 마케팅을 실행하는 경우이다. 개발 및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새로운 화학적 융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차후 브랜드 간의 M&A로 이어지거나 둘의 감성을 합친 새로운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브랜드가 창조되기도 한다.


현대 패션에서의 콜라보레이션은 크게 세 가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첫째는 패션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얼마 전 공개된 나이키와 엠부쉬의 덩크, 프레드 페리와 라프 시몬스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각자의 브랜드 철학, 디자인적 관점 등을 공유하며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보통 한 브랜드가 가진 아이덴티컬한 디자인에 다른 브랜드의 추가적 디자인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나이키와 엠부쉬의 덩크 같은 경우에는 기존 나이키 덩크의 디자인과 다르게 오토바이 배기관에서 영감을 받아 스우시를 신발 밖으로 돌출되도록 처리하고 신발의 뒷축을 입체적으로 제작하며 엠부쉬만의 감성을 담고자 노력했다.

둘째는 패션 브랜드와 아티스트 간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주로 힙합 뮤지션이나 현대 미술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곤 한다. 예를 들어 스파 브랜드 스파오와 하이라이트 레코즈가 협업하여 만든 아이템, 듀렉 데브와 레디의 콜라보레이션, 루이비통과 무라카미 타카시의 콜라보레이션 등이 있다. 보통 제품의 패턴을 변경하거나 제품의 관점을 변경하는 식의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된다. 루이비통과 무라카미 타카시의 예를 들면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나 마크 제이콥스가 20대 수요를 얻기 위해 그래픽 디자이너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협업을 진행했고, 루이비통 가방은 기존 루이비통의 올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팝스러운 컬러들을 활용해 20대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패션 브랜드와 전혀 연관없는 다른 브랜드들 간의 콜라보레이션이다. 구찌와 디즈니 캐릭터들, 하이트 진로와 커버낫의 콜라보레이션, KFC와 크락스의 콜라보레이션 등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해당 브랜드의 팬들을 서로 포섭할 수 있다는 데에 강점을 두고 있다. 이런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되었을 때는 비 패션 브랜드들의 요청에 따라 패션 아이템이 아닌 다른 굿즈 제작도 시도해 보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하이트 진로와 커버낫의 콜라보레이션에서 커버낫의 주력 상품이 아니었던 텐트가 제작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 주로 다룰 내용인 구찌X도라에몽 캡슐 컬렉션도 해당 파트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구찌는 도라에몽이고, 도라에몽은 구찌였을까? 그리고 이건 좋은 콜라보레이션의 예시였는가? 




구찌는 도라에몽과 함께하고 싶어서

구찌는 2020년 초에도 디즈니와 협업하여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등 캐릭터가 담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기존 구찌의 가방 모노 그램 위에 디자인하거나, 구찌의 어패럴 아이템에 프린트하는 등 콜라보레이션을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캐릭터와의 콜라보는 구찌뿐만 아니라 루이비통과 리그오브레전드(LOL)과의 콜라보,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와 이웃집 토토로의 콜라보, 발렌시아가와 헬로키티의 콜라보 등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로에베X토토로 (https://www.eyesmag.com/posts/133382/loewe-totoro-collaboration-collection)


그런데 왜 구찌는 도라에몽이었을까? 구찌의 시즌 컨셉은 계속적으로 '레트로'를 표방하고 있다. 이는 BTS의 Dynamite 뮤직비디오에 구찌가 각각을 위한 레트로 의상을 준비해 준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구찌의 컬렉션에도 이런 시즌 컨셉이 잘 반영되어 있다. 패션을 돌고 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패션의 주요 소비층이 경제력이 있는 30 40 세대이며, 이들은 과거의 자신이 10대 20대였을 시절의 유행하는 패션을 동경했으며, 이를 약 20년 후에 비슷하게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20년 주기로 유행을 반복시키는 주체는 소비자가 아닌 디자이너 계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어쨌든 현재 30 40 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 '레트로'하고 '클래식'하며 당시의 모두가 알 정도로 '센세이션'했던 캐릭터 중 하나로 아시아 시장에서는 일본의 도라에몽이 있다. 작년에 구찌는 이미 디즈니 캐릭터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레트로 컨셉을 지향하는 서구 고객들을 포섭한 바 있으며, 미키마우스는 구찌 라이톤 등에 프린트되며 나쁘지 않는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에 구찌는 일본 시장에서의 판매량이 과거부터 많았던 만큼, 이번에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도라에몽 측에서는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사실상 도라에몽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전혀 없는 거래라고 생각한다. 도라에몽 캐릭터로 수익창출을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더 이상은 애니메이션 시청이 아닌 30 40 세대의 입맛을 저격해 추가적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도라에몽 측에서는 충분한 사유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찌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브랜드이며 또한 명품 중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도라에몽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보장된 수익 구조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일종의 상호 보완이다. 구찌 입장에서는 아시아 시장에서 '레트로 컨셉'을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도라에몽'이라는 캐릭터의 지적재산권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도라에몽 입장에서는 지적재산권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적 수입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찌, 도라에몽 양측에서 밝힌 명확한 사유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얻은 수익의 증대 측면의 데이터가 없기에 위의 모든 것은 합리적 추측임을 밝힌다.)




잘 된 콜라보레이션인가?

비욘드클로젯의 고태용 디자이너의 말을 빌리자면, 구찌와 도라에몽의 콜라보레이션은 '기존 스테디셀러에 아트웍을 얹는 정도'에 그쳤다. 그는 구찌 옷을 입고 있는 도라에몽 등의 디자인을 활용했다면 한 단계 높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인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레이아웃으로만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두 브랜드가 융합된 캐릭터의 모습을 표현하는 편이 더욱 가치 있는 콜라보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이 패션 어태용? (https://www.youtube.com/watch?v=kxz__WITfuM)


결국 고태용 디자이너의 말처럼 콜라보레이션 제품의 목적이 <아트>이냐 <니치 시장 겨냥>이냐에 따라 '잘 된 콜라보레이션'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니치 시장 겨냥>이라면, 도라에몽을 사랑하는 매니아층만을 노린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도라에몽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구찌를 가볍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한국의 도라에몽 덕후로 유명한 심형탁 배우도 인스타그램에 높은 가격대로 구입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424770&memberNo=23067845

<아트>라면 이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보는 것인데, 디자이너가 도라에몽이 지닌 가치, 예를 들어 '4차원 주머니에서 나오는 선물'에 의미를 두고 특정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면, 잘된 콜라보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한 디자이너의 필요에 의한 콜라보레이션이라면 오히려 훌륭한 방식을 활용했다고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내가 생각한대로 '상호 보완'의 목적이 맞다면, 이는 해당 콜라보레이션을 '아트'가 아닌 '니치 시장 겨냥'으로 보는 것이며, 그렇다고 했을 때 크게 잘 된 콜라보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이점은 서로 얻었을지 몰라도 디자인 측면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캐릭터만 바뀌었지 작년 디즈니 콜라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신선도도 떨어진다고 본다. 캐릭터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다면 캐릭터의 특성을 담은 새로운 아이템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도 실험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찌에서 만든 도라에몽 주머니나 구찌에서 만든 대나무 헬리콥터 악세사리 등이 출시된다면 이런 방향성을 나는 더 잘된 콜라보레이션으로 볼 것이다.


마무리

콜라보레이션은 패션 업계에서 중요한 키워드임이 틀림없다. 고상한 위치를 고집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스트릿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넘어서 캐릭터와도 콜라보를 하는 것에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자는 목표가 담겨 있고, 이는 때로 브랜드의 성공을 안겨 준다. 개인적으로 도라에몽과 구찌의 콜라보레이션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다음엔 또 어떤 재미있는 콜라보레이션들이 쏟아져 나올지 기대가 된다.



tmdgnstothesky2020@gmail.com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정 승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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