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김태연
'인천(짝짝짝) 에스케이(짝짝짝) 와이번스(짝짝짝)'
인천을 외치는 뜨거운 함성, 홈런과 함께 구장을 울리는 뱃고동 소리, 경기가 끝나면 펼쳐지는 불꽃놀이까지. 평생 인천에 거주하며 야구를 좋아한 필자에게 SK와이번스는 인천을 상징하는 몇 안 되는 단어이자, 스스로가 인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던 올해 초, 무려 20년간 함께하던 SK가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SSG가 들어섰다.
인수 의향을 밝힌 지난 2월부터, 신세계는 SK의 이름이 더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광폭적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1,300억 대의 금액을 지불하며 야구단의 지분을 100퍼센트 인수했고, 선수단과 직원 구성도 그대로 승계했다. 27억을 들여 미국에서 돌아오는 추신수를 잡는 데 성공했으며, 개막을 앞두고 CI로고를 교체하고 재정비하는 등 기존 SK행복드림구장을 리모델링 하는 데 20억 원 가량을 들였다. 여기에 더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클럽하우스에 나타나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며 야구단 운영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신세계는 왜 이 큰돈을 들여 야구 구단을 인수할까? 또 이번 인수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모든 스포츠 구단 유니폼의 가슴팍에 커다란 로고가 박혀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기업이 스포츠 구단에 스폰서로 참여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누리는 것은 가장 전통적인 마케팅 방안 중 하나이다. 국내 유통업계의 또 다른 거인이자, 실업팀 시절부터 롯데자이언츠를 후원하는 롯데는 이미 자사의 마케팅에 구단을 활용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모바일 앱을 통해 롯데 자이언츠와 관련된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한다. 지난 2월에는 자체 청백전을 생중계했는데, 이 때 최대 동시 접속자는 2만 5천 명, 누적 접속자는 12만 명에 달했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여 롯데는 시즌권과 굿즈를 판매하는 등 롯데자이언츠를 매개로 자사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유저를 유입하고 있다.
SSG도 구단 인수 이후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마트는 4월 1일부터 나흘간 '랜더스 데이' 행사를 진행한다. 구단명이기도 한 '상륙'을 포인트로 아예 기획전에 나서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계열사 신세계푸드는 지난 12일 '추추바', '추추빵빵'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랜더스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인 추신수를 활용하여 아예 상품 개발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항간에는 스타벅스를 통해 SSG랜더스의 굿즈를 출시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돈다.
스포츠 구단의 스폰서 중에서도 유통업계가 더 매력적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스포츠 구단 자체가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를 활용하여 브랜드와 결부한 마케팅을 하기도 쉽고, 특히 유통업계의 경우 이미 마련되어 있는 자체 유통 시스템과 채널을 통해 굿즈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본업(유통업)이 스포츠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잘 누릴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신세계그룹은 그룹명 대신 자회사인 'SSG'를 전면에 내세웠다. SSG가 온라인 시장을 담당하는 신성장 기업인 만큼, 2030의 비중이 60%에 달할 정도로 연령대가 낮은 야구와 결합했을 때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기저에 있었을 것이다. 이는 후발 온라인 중심의 유통업체들에 뺏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신세계와 야구, 유통업과 스포츠업의 연결이 온라인상에서 일어났다면, 신세계는 오프라인 공간과의 결합도 꿈꾸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꾸준히 유통업에서의 체험과 오락 측면을 강조해왔다. 2016년 8월 스타필드 하남점 개점을 앞두고는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며 아예 야구장을 언급한 적도 있을 정도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홈구장인 SSG 랜더스필드에는 신세계 계열의 매장들이 다수 입점할 계획이다. 야구 방문을 위해 구장을 찾은 팬들이 자연스럽게 신세계의 다양한 서비스를 체험하고 돌아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SK와이번스 기준 한 시즌의 관중 수는 100만 명에 달할 정도임을 고려하면, SSG의 팬이 신세계가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지는 것은 꽤 큰 효과를 가질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한 술 더 떠 아예 오프라인 쇼핑몰과 야구장을 엮을 계획까지 선보였다. 그는 얼마 전 클럽하우스를 통해 야구 경기 후 관중들이 떠나는 게 아쉽다며, 이를 위해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종합쇼핑몰 '스타필드 청라'에 돔구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야구장이 야구만 보는 공간이 아닌, 야구를 보기 전후로 쇼핑도 하고, 끝나고는 호텔에서 잠도 자며, 야구가 열리지 않을 때는 콘서트까지 열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하는 것이다. 기존 야구장이 고객을 잡아둘 수 있는 시간이 경기 시간인 3시간 정도였다면, 이제는 짧게는 하루종일, 길게는 며칠간 고객을 머물게 하며 신세계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일본의 이커머스 1위 기업인 라쿠텐도 프로야구단을 인수하여 홈구장 옆에 테마파크와 숙박 시설을 마련했다. 최근들어 미국에서도 야구장과 인근 상권을 복합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수년 전부터 활발하며, 유럽에서는 유통과 스포츠를 결합한 ‘스타디움 쇼핑(Stadium shopping)’ 전략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유통을 너머 체험과 오락, 나아가 고객을 시간을 잡는다는 신세계의 전략이 마냥 신기루가 아닌 이유다.
여기에 더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용진이 형'은 다른 기업 총수와는 다르다. 사내 채널에 나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이태원 클라스를 따라하는 것에서 왠지모를 어색함이 느껴지는 최태원 SK회장보다는, 논란이 될 말까지 서슴없이 자기 생각을 전하는 일론 머스크에 더 가깝다. 그는 57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이고, '맛남의 광장'에서는 백종원의 전화를 받고 흔쾌히 못난이 감자 30톤을 매입하여 완판에 성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 그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웬만한 마케팅 이벤트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다.
이번 신세계의 SK와이번스 인수전에서도 가장 전면에 나선 인물은 정용진 부회장이었다. 그룹의 공식 입장보다도 더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클럽하우스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입담이었는데, '카카오도 야구단에 관심 있다.', '팬들이 내 인스타그램 많이 팔로우 해줬으면 좋겠다.' 등의 솔직한 모습은 꽤나 이슈몰이에 성공했다. 어제(30일) 이뤄진 창단식에서도 기사화가 제일 많이 되고,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정용진 부회장이었다.
'정용진'이라는 사람은 이미 신세계와 이마트를 알리기 위한 마케팅 방법으로써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SSG랜더스는 이를 더욱더 증폭시킬 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친근하고 사회 기여적인 이미지에 더하여, '야구단 구단주'라는 드라마 설정 같기도 한 컨셉은 정용진을 통해 신세계를 고객에게 알리고, 더 잘 팔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세계가 SSG Landers의 주인이 되기 이전에 SK 와이번스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SK는 기존의 야구단 스폰서들이 기업이 망하기 직전에서야 포기한 것과 달리 아주 건실한 기업이기도 하다. SK와이번스는 지난해 8억60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그나마 난 수익 또한 대부분은 SK계열사를 통한 광고에서 났다. 다른 팀이라고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스포츠 스폰서를 통해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이 문장은 프로 스포츠 산업군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야구에서조차도 유효하다. 즉, 단순히 스포츠 스폰서쉽을 통해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목표라면 신세계는 하지 않아도 될 지출을 했을 수도 있다.
결국 1,300억 짜리 '야구단 인수'라는 도박은 신세계가 유통과 스포츠의 시너지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천 시민으로서, 또 야구팬으로서 신세계의 과감한 배팅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태연
naty04@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