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9기 임수연
초록빛 물결 위에 일렁이는 바다의 신 '세이렌'의 형상은 이제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세이렌을 로고로 두는 스타벅스는 전 세계 최대의 커피 체인점이다.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작은 커피 소매점으로 시작한 스타벅스는 2021년 현재 64개국에 23,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비록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5%나 감소하긴 했지만, 스타벅스의 매출액은 2조에 육박한다.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 있어서 '카페 = 스타벅스'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만큼, 그 명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커피 전문점에서 나아가 자신들을 '경험과 공간을 파는 기업'이라고 소개하던 스타벅스는 현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업이다. 사실상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된 커피, 그리고 없는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카페 레드오션. 커피 전문점들의 치열한 경쟁 속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전략이 도입되고 있다. 특히나 스타벅스의 경우, 고객들을 위한 로열티 제도를 강화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그 중 스타벅스의 효자 서비스이자 스타벅스 금융업 진출의 발판이 되는 사이렌 오더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스타벅스코리아는 2014년, 세계 최초로 사이렌 오더라는 기능을 개발했다. 이는 미리 어플로 음료를 주문한 후 원하는 시간에 이를 테이크아웃해가는 시스템이다. 불필요하게 음료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며, 주문과 결제 과정이 매우 간편해 많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2019년 한국 기준, 사이렌 오더 누적 주문 건수는 1억 건을 넘었다. 스타벅스 주문 중 22%가 사이렌 오더를 통해 이루어졌단 것이며, 언택트 마케팅 등의 이유로 현재는 그 비율이 더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이렇게 개개인이 주문을 할 때마다 최근 구매 이력 등의 결제 정보가 쌓이고, 그와 함께 고객이 음료를 주문할 때의 시간대, 당일의 날씨, 음료를 테이크아웃해 갈 매장 정보 등의 외부 데이터 역시 업데이트된다. 편리함과 소비자 맞춤 서비스에 힘입어 스타벅스 앱을 이용하는 고객 비율이 증가하는 만큼 기업이 가진 빅데이터는 날이 갈수록 정교해진다. 사이렌 오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치금이나 선불 카드를 어플리케이션에 충전해놓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 페이의 발판이자 스타벅스가 '은행'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본의 원천이다.
스타벅스는 도대체 왜 커피에 집중하지 않고 금융 쪽에 출사표를 던진 것일까? 궁극적으로 스타벅스 페이를 통해 다국적 통화를 통합된 디지털 자산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로 보인다. 스타벅스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을 활용해 장소를 불문하고 앱으로 현지 통화 결제가 가능케 하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와도 협력을 시작했다.
스타벅스 본사는 현재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예치금을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2조 500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 확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실상 미국의 중소은행이 가진 현금 액수와 맞먹는다. 놀랍게도 스타벅스 모바일 결제는 애플페이, 구글페이, 그리고 삼성페이를 뛰어넘었다. 스타벅스코리아 선수금 추이는 해가 지날수록 증가하는 양상이다. 이미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통해 스타벅스 페이의 편리함과 보편화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그리고 충성스러운 고객층 확보를 위한 물밑 작업을 충분히 진행한 만큼, 스타벅스는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
스타벅스 페이의 실현은 소비자들에게도 잃는 장사가 아니다. 환전이 불필요한 것은 기본이고, 수수료 지불 횟수 역시 현저히 감소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기존에는 커피 한 잔 값을 지불할 때마다 비자(VISA) 혹은 마스터카드(Mastercard)에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타벅스 선불카드 충전금 결제 시에만, 즉 딱 한 번만 수수료를 내면 된다. 미국 브랜드 컨설팅회사 모멘텀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제이슨 스나이더는 "스타벅스는 사실상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라고 명명했다.
현금에 이어 이젠 실물 카드조차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것이다. 스타벅스 페이로 아디다스 제품을 결제하는 상황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갑에서 '배춧잎'이 아닌 스마트폰에서 '초록빛 세이렌'을 꺼내들 날이 머지 않았다.
연세대 아시아학과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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