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9기 심하경
이 블라우스를 기억하는가? 18년도 봄, 한국 패션계를 휩쓸었던 블라우스이다. 시작은 블랙핑크 <제니>의 블라우스 착용이었다. 한동안 이 블라우스는 길거리 어딜 가든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중 80퍼센트의 블라우스는 지하상가에서 판매하는 “짝퉁”이었다. 이 블라우스는 명품 브랜드 구찌의 블라우스로, 브로치를 제외한 한 벌 가격이 1400달러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블라우스를 착용하기 위해서는 1500달러를 주고 진품을 사거나, 가품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제 3의 길이 열렸다. 네이버 ZEPETO에서 구찌 컬렉션을 내 아바타에게 입히면 된다.
올해 2월 5일 네이버제트(ZEPETO)는 구찌와 제휴를 맺고 구찌의 디자인을 활용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출시했다. 올해 구찌 컬렉션 의상, 핸드백, 악세사리 등을 나를 닮은 3D 아바타에게 입힐 수 있다. 가격은 저렴하다. 제일 비싼 아이템인 구찌 버킷백이 3000원이다. 또한, 제페토에는 유저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3D 월드맵이 존재한다. 구찌는 월드맵에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의 빌라를 구현해, 사용자들이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구찌가 아바타를 이용한 패션 아이템을 런칭한 까닭은 무엇일까?
ZEPETO는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게임 서비스이다. 메타버스는 "현실 같은 온라인"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VR, AR, MR 등의 특수기기를 사용해서 온라인에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넓은 의미의 메타버스는 온라인에 현실감을 가져다주는 모든 서비스를 포함한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서비스로는 ROBLOX(로블록스)가 있다. 레고 아바타가 되어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는 게임이다. 로블록스는 16세 미만 미국 청소년의 55%가 가입했고, 하루 평균 접속자만 4000만명에 육박한다. 네이버제트에서 런칭한 서비스 ZEPETO 또한 성공적이다. 현재 ZEPETO는 전세계에서 2억 명의 이용자를 유치하고 있고, 이 중 80%가 10대 이용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메타버스 트렌드를 읽은 구찌가 다양한 배경의 10대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으로서 제페토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찌가 ZEPETO를 마케팅 플랫폼으로서 택하면서, 공략하게 된 고객은 10대 소비자이다. 왜 구찌는 이들을 공략했을까. 10대를 명품 시장에서 공략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놀랍게도, 10대는 명품 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소비자이다. 과거에는 구매력이 높은 4~50대가 명품의 주요 타켓이었다. 하지만 플렉스 문화에 익숙한 10대들이 명품 매장의 주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학생복>에서 358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명품 구매 경험 유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6.4%의 청소년이 명품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향후 <명품 구매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는 76%가 "구매할 의향이 있다,"를 선택했다. 이는 10대들에게서 명품 소비가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다수의 10대들은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가 아니다. <명품 소비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서는 35.5%로 "경제적 능력보다 더 큰 명품소비"가 문제점이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반대로 <10대 명품 소비문화>를 묻는 질문에서는"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많이 사고 싶다"라는 답변이 나와, 10대의 명품 구매를 막는 제 1요인은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구찌의 제페토 콜라보레이션 전략은 이 점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청소년들에게 ZEPETO 내 구찌 아이템은 명품을 착용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서비스 내 최고가 구찌 아이템 가격은 3000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찌 아이템을 착용한다 하더라도 20000원이 넘지 않기 때문이다. 아바타에게 명품을 입힘으로서 대리만족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 콜라보레이션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ZEPETO 내 구찌 IP를 활용한 2차 콘텐츠가 40만개 이상 생성되었고, 조회수는 300만건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일회성의 이벤트를 통해 10대들이 당장 구찌 매장에서 비싼 명품백을 구매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10대들이 구찌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만들 수는 있다. 이는 후에 이들이 구매력이 있는 고객으로 성장했을 때 그 진가를 드러낼 것이다. 또한, 명품에 관심이 없던 새로운 10대도 잠재 고객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 심리학 효과 중 '단순노출효과'라는 것이 있다. 자주,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그 사람/물건에 대해 호감도가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이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구찌에 관심이 없던 ZEPETO 이용자들도 구찌를 각인하게 되었다. 관심이 없었던 이용자들도 구찌 월드맵 내 미로 탐험 게임, 입어보기 서비스 등의 다양한 경험들에 노출되면서, 구찌라는 브랜드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ZEPETO 서비스 내외로 새로운 2차 콘텐츠들이 생성되면서, 자연스레 홍보가 되는 것은 덤이다.
최신 기술과 트렌드가 결합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을 구찌X제페토의 콜라보레이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메타버스 트렌드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특히 메타버스 산업이 더 발달하게 되면 되면, 인터넷이 완전히 대체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마케팅 환경은 어떻게 변화할까?
우선 가상 인플루언서의 예시를 들 수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로, 현재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SNS를 이용해서 활동한다. 이미 가상 인플루언서는 매력적인 마케팅 도구이지만 메타버스 산업이 발전해 아바타를 보다 더 실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면, 가상 인플루언서의 활동 지평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특히 가상 인플루언서는 모델 의존성이 높은 패션 브랜드 등에서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모델들의 사생활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현재는 다소 낯선 단어이지만, 메타버스가 더욱 보편화되면 소비자들이 가상 인플루언서에게 느끼는 거리감이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메타버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과연 메타버스 시대의 마케팅은 어떨지, 기업들은 어떤 전략들로 소비자를 끌어들일지 기대된다.
연세대 신학 심하경
simhasd@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