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9기 이정운
(게임의 장르 특성상 삽입된 이미지가 다소 불쾌할 수 있으며,
필자는 게임을 제외한 해당 회사의 상품을 이용해본 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해외 유명 포르노 회사인 'Studio FOW'가 개발한 Subverse가 3월 27일 스팀 발매 직후 폭박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019년 초 개발 소식을 알리며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이 어마어마한 후원(킥스타터로 모금했으며 예상치의 10만 파운드의 약 17배에 달하는 166만 8626파운드가 모금되었다.)을 받았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앞서 해보기(Early Access)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최고 인기 게임 발헤임을 제외하고 스팀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에 등극했다. 유저 반응은 스팀에서 유지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매우 긍정적(Very positive)', 총 리뷰를 작성한 4700여명의 유저 중 약 90%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게임 전문 회사도 아니고, 게임 개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회사는 왜 갑자기 게임을 만든걸까?
도대체 얼마나 야하길래? 라는 생각을 했다면 다소 잘못 짚었다. 물론 이 게임은 성인들을 위해 포르노 회사가 만든 성인용 게임인만큼 게임 곳곳에 은유가 가득하고, 기대하는 유저들이 만족할 만 한 수위의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게임 자체가 재미있어서이다. 다른 요소를 제외하고 그냥 게임으로 바라봤을 때 잘 만든 편이다.
게임의 전반적인 구성은 전투와 드라마 두 부분으로 나뉜다. 우주를 누비며 지상과 우주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투를 하고, 때때로 발생하는 이벤트들을 통해 동료 승무원들과 소통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우주 전투는 슈팅게임을 표방하고 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탑 뷰 슈팅 장르이며 난이도는 드래곤 플라이트와 동방 프로젝트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른바 탄막 슈팅이라고 표현할 만큼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얕봤다가는 game over 당할 수 있다. (필자는 굉장히 만만히 봤다가 꽤 많이 죽었다) 지상 전투는 턴제 전략 전투이다. 동료 괴물인 '맨티코어'와 동료 승무원을 배치하면 전투가 시작되며 각각의 필살기와 충성도, 경험치량을 적당히 고려하여 플레이해야 한다. 이미 재미가 검증된 두 장르의 게임을 꽤나 퀄리티 있게 합쳐 놓았기 때문에 하다보면 재미가 있다. 드라마 부분을 기대하며 시작했지만 어느 새 전투 부분에도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파트는 이른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진행 방식과 유사하다. 승무원을 포함한 다른 등장인물들과 대화하며 관람하는 방식이다. 자동 진행 및 지난 대화 보기 등의 시스템도 갖추고 있어 원하는 방식으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대화 이후 선내 시설 이용 시에는 맨티코어를 업그레이드 하는 등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할 수도 있고, 특정한 포인트를 소모해 다양한 비디오 콘텐츠를 개방할 수 있다. 다만 아직 많은 후원자들이 기대한 만큼 보다 다양하고 퀄리티 높은 기능들과 비디오들을 이용할 수는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앞서 해보기(Early Access) 단계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약간은 부족한 볼륨이 이해가 된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게임의 제작사인 'Studio FOW'은 앞서 말했다시피 포르노 영상을 제작하는 미국의 제작사이다. 그 중에서도 밸브의 소스 필름메이커를 사용해 유명 게임의 캐릭터를 활용해 정교한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포르노 장르를 전문적으로 제작했으며 전문 성우팀까지 구비되어 있어 자체적으로 음성 대사를 구현하는 등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해당 행위는 국내법 상으로는 범법행위임이 자명하나, 동인클럽 활동(2차 창작 및 성인물 제작) 또한 판매수익을 얻지 않는한 미국 법 상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 만의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가 아닌 다른 유명 캐릭터를 활용해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을 내고 단체를 성장시키는 데에 한계가 명확했다. 저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동인 서클을 표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작품을 직접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우선 무료로 공개한 뒤 서클에 대한 공개적 후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었다. 즉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는 이러한 방식으로 비영리활동이라는 동인 본연의 정신과 서클 운영 자금이라는 현실을 조화롭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매달 30000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미래가 불확실함을 의미했다.
2017년에 절다의 전설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을 활용해 만든 작품이 닌텐도 측의 요청에 의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내려지기도 했다. 캐릭터를 소유한 기업에서 본인의 캐릭터들이 성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FOW의 영상들은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유한 캐릭터와 IP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게임이다.
국내 게임의 선두주자라고 불리우는 이른바 3N(넷마블, NC소프트, 넥슨)은 치열하게 IP 경쟁을 벌이고 있다. NC소프트는 뚜렷한 성공적인 후속 IP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IP인 리니지 만으로 거대한 회사를 운영할 만큼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넥슨은 국내에서 아무리 적자가 나도 중국에서 던전앤파이터가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넷마블은 많은 성공적인 게임을 퍼블리싱 했음에도 경쟁력있는 자체 IP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경쟁력있는 IP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회사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정이다.
'Studio FOW'는 경쟁력 있는 IP를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미 게임 판매 수익만으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웰메이드 게임을 만들어 성공적인 게임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단체로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체 IP를 만들어내어 보다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게임은 캐릭터를 활용한 OSMU 사업의 꽃이라고 불린다. 'Studio FOW'가 만든 그들만의 세상에서 활개치고 있는 캐릭터들을 보다 다양하게 보여줄 계획의 첫 단계인 첫 야겜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정식 출시와 추가 콘텐츠, 후속 게임 출시 과정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이들은 본인들에게 주어진 명확한 한계를 벗어났다.
연세대 경영 이정운
cloudi@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