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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핸드 : 순간을,시간을 부르는 향수의 힘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8기 최승연


순간을, 사람을, 시간을 불러오는 향의 힘


"이른 새벽 집을 나설 때, 깨끗하게 세탁한 이불의, 첫 사랑의 향기". 여러분은 기억에 남는 순간의 향이 있는가? 분명 모두에게 잊지 못할 향이 있을 것이다. 본인은 항상 여행을 갈 때 향수 하나를 정하여 챙겨 가거나, 새로운 향수를 구매한다. 여행 내내 그 향수를 뿌리고, 현실로 돌아와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그 향기를 맡아보면, 다시 그 여행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필자는 오랜 시간 조향사를 꿈꿔 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져온 꿈이다. 향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그리고 필자는 그 힘을 믿는다. 향은 순간을, 사람을, 시간을 불러온다. 인생의 어느 장면이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향기는 기억에 남는다.



향며들다 ; 더 이상 기호 식품이 아닌,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향수

필자의 향수 컬렉션 중 애정하는 작품들의 일부이다




향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호 식품, 사치품의 이미지가 강하였다. 특히, 남성이 (필자도 남자다) 향수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난을 떤다' 라는 사회적 인식도 만연해 있었다. 

2020-2027년 글로벌 향수 시장 성장 예측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사회는 향수에 익숙해져갔고, 자신들을 가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향수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향수 시장은 향후 5년동안도 꾸준한 성장이 예측되며, 2027년에는 약 50조원의 규모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향만 좋으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 소비자들은 향을 넘어선 무언가를 갈망한다. 향수 시장의 성장에 따라, 브랜드들이 대중에게 향을 선보이는 방식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사고 싶어요


21세기의 주요 소비 디자인 트렌드 중 하나는 '감성 디자인'이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제품 자체'의 기능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들은 '경험'과 '가치'에 대한 소비의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의 주된 구매 경향은 제품의 기능, 특성에만 국한되지 않은, 자신의 정신적 만족 즉, 감성이 충족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향수는 후각, 시각, 청각, 촉각. 오감의 복합체이다. 즉, 소비자가 향수를 마주할 때, '경험'하고 싶고, 실제로 경험 가능한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뜻이다. 이에 유수의 해외 퍼퓨머리들은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오감 맛집 : 르라보, 이솝


르라보, 이솝 두 브랜드 모두, 자연주의적 이미지를 지닌 해외 브랜드이다. 고급 원료 사용과 오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좋은 향과 더불어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브랜드가 지닌 가치와 메세지를 온전히 소비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1) 르라보 : 나만의 향수

르라보의 라벨링 서비스

르라보는 2006년 뉴욕에서 대량 생산에서 벗어나, 대체불가능한 향수를 만들고자 하는 비젼으로 시작되었다. 향수의 이름 뒤에 숫자가 붙어 사용된 향료의 개수를 나타내는 (ex. PATCHOULI 24) 등 이들은 향의 높은 퀄리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르라보는 '라벨링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는 르라보의 시그니쳐 서비스 중 하나이다. 말 그대로, 제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원하는 문구와 제품을 구매한 장소 등의 정보를 향수 라벨에 프린팅 해주는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향수를 배합하는 과정을 보여주어, '시각적인 만족'을 제공함과 더불어 자신만의 향수를 구입하는 경험을 선사 해주는 것이다.


(2) 이솝 : 공간의 경험

이솝 사운즈 한남점

이솝은 호주 기반 코스메틱 브랜드이다. 이들은 공간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전달하고,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한다. 전세계에 위치한 이솝의 모든 매장은 디자인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르다. 각 매장을 설계할 때, 매장이 위치한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고려하여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이솝 사운즈 한남점은 한국의 전통 가마로부터 모티브를 따와, 실제 벽돌과 흙을 활용해 매장이 설계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차별화 된 매장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이솝의 자연친화적 브랜드 가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비자가 온전히 향을 경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도메스틱 퍼퓨머리의 반란

왼쪽부터 국내 퍼퓨머리 SW19, 논픽션, 그랑핸드의 제품

국내 역시, 향수 시장에 있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4400억원 규모였던 국내 향수 시장은, 지난 2019년 6000억원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는 65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기존 국내 향수 시장에서는, 신세계 인터네셔널의 주도 하에, 조말론, 딥디크, 바이레도 등 수입 퍼퓨머리가 우세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흥미롭게 SW19, 논픽션, 그랑핸드, 로이비 등의 신규 국내 퍼퓨머리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국내 향수 시장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오늘은 이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고, '경험 소비'라는 키워드에 충실한 '그랑핸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랑핸드 : 향의 일상화를 꿈꾸다


그랑핸드는 2014년에 시작된 국내 기반 퍼퓨머리이다. 향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에게 수많은 기억과 감정을 각인시키고, 나아가 우리 삶 속에서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향의 일상화를 꿈꾼다. 이들은 꾸준히 멀티 퍼퓸, 캔들, 사쉐 등 다양한 라인업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향들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고유의 향 이전에, 그랑핸드는 자신들만의 독창적이고 감성적인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큰 인기몰이에 성공하여 현재는 소격, 서촌, 북촌, 마포에 걸쳐 4개의 지점까지 매장을 확장을 하였다.

또한 제품 구매 시, 오른쪽의 사진과 같이 구매자가 희망하는 문구와 구매 지점을 스탬프로 찍어주는 라벨링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그랭핸드가 앞서 살펴 보았던 르라보와 이솝과 자연주의 감성적 이미지 뿐만 아니라 세부적 '경험 소비' 부분 또한 상당히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랑핸드를 좋아하는, 그랑핸드의 팬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은 2퍼센트 부족하다.



향을 맡게 하는 것이 아닌,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필자가 그랑핸드에게, 더 나아가서는 국내에 신규 런칭되는 퍼퓨머리에 감히 제안하는 노선이다.


앞서 말했듯, '경험'이라는 단어는 향수 시장에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고, 필자 역시 이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솝의 매장에 가보면, 모든 직원들은 고객에게 제품을 '사용'해보라고 하지 않는다. '경험'해보라고 한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유망하게 생각하는 그랑핸드의 발전을 위해, 이들의 보완 가능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향수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랑핸드는 한국판 르라보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카피 브랜드의 느낌도 든다. 그러나 국내 퍼퓨머리에서 전례 없던, 2030세대를 성공적으로 타겟팅하여 힙한 상권에서의 감각적인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그랑핸드는 벌써 4호점까지 개점하여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러나 관건은, 과연 그랑핸드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이다. 해외 퍼퓨머리가 장악한 국내 프래그런스 시장 내에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지만, 반짝 그 순간 뿐이다. 몇 년전, 이성을 유혹할 수 있다는 일명 '페로몬 향수'가 국내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였으나 금새 시들해졌다. 그랑핸드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을 보고, '어, 예쁘다'가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브랜드에 대한 인지와 리텐션이 유지되어야한다.


이를 위해, 아래의 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해본다.


1. 경험 영역의 확장

아쿠아 디 파르마 X 시그니엘 (좌) , 논픽션 X 라이즈 (우)

매장을 깨고 나와야한다. 그랑핸드의 오프라인 매장이 매력적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실제로 이것이 소비자에게 어필 포인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매장만에 의지할 수는 없다. 매력적인 매장은 순간의 호기심에 그쳐, 일회성 오락에 그칠 수도 있따. 이에, 단순 매장에서의 제품 판매가 아닌, 타 영역에 진출하여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로, 많은 향수 브랜드가 해당 전략을 취하고 있다. 르라보는 하얏트호텔과의 제휴를 통해 어메니티를 제공하고, 국내 브랜드 논픽션 역시 라이즈 호텔과의 제품 패키지 상품을 기획한 바 있다. 또한 아쿠아 디 파르마는 롯데 시그니엘 호텔과의 협업으로 디저트 상품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그랑핸드 또한, 자사의 잠재 고객이 분포한 새로운 산업 영역에서 브랜드 미션과 가치를 전달하며,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 나간다면 기존의 단기적 어필 채널인 오프라인 매장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다 구체화 된 퍼스널라이제이션

러쉬 퍼퓸 라이브러리

단순히  개인화 된 스탬프를 제공하는 것 역시, 일회성 오락에 그칠 수 있다. 이에, 앞서 형식적인 퍼스널라이제이션이 아닌, 본질적인 퍼스널라이제이션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즉, 소비자의 입장에서, '내가 정말 나 하나만을 위해 몰입받는다' 라는 '경험'의 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기반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는, 향수에 대한 1대1 컨설테이션을 제공해준다. 소비자의 다양한 특성을 바탕으로 향수를 추천해주고, 쿠키와 같은 간식, 책 등을 통해 보다 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완전히 몰입된 퍼스널라이제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그랑핸드 역시 스탬프 서비스와 더불어, 개인 퍼스널라이제이션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브랜드의 키치한 감성과 어울리는 타로 서비스를 운영하여, 매장 방문객의 타로점을 봐주고 그를 기반으로 향을 추천해주는 서비스 등이 있다면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연세대학교 문화디자인경영학과 최승연

seungyeon96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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