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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코로나 19에서 살아남기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여석원


2020,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2권 [출처:알라딘]

    필자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분명 ‘살아남기 시리즈’를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정말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서 살아남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편이 하나가 있다면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이다. 그 당시에는 아프리카 오지로 탐험 캠프를 떠나 여러 바이러스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주인공 일행의 여정이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2020년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된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전세계를 덮쳤고, 기존에 우리가 누리고 있던 소중한 일상을 앗아갔다. 이에 따라 정말 다양한 산업 내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본 글에서는 국내 힙합씬의 관점에서 코로나 19가 가져온 변화들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FLEX의 원천


힙합 음악의 백미는 공연이다  [출처:더블유 코리아]

    FLEX. 힙합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단어이다. 염따가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이 단어는 ‘힙합=FLEX’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강하게 심어주었다. 힙합 가수들의 시계 자랑, 차 자랑은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가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돈 자랑을 보면서 여러분은 분명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돈이 많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물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수치적으로 공개된 자료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래퍼도 자신의 수익을 공개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추론과 힙합씬에 오래 관심을 가진 필자의 경험을 종합해 보았을 때, 래퍼들의 주수입원은 바로 공연 수익이다. 아직까지도 힙합 아티스트가 음원 수익으로 꾸준하게 큰 돈을 벌기는 어렵다. 현재 국내 스트리밍 업체들의 저작권료 상정 방식 상, 저작권료 지급이 인기 가수들의 독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해당 기사 참조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6/2020020603462.html). 즉, 차트인을 하지 않으면 음원 수익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근데 창모 정도를 제외하면 최근 차트인에 성공한 힙합 가수가 있는가?

    이렇듯 음원 수익이 없어도 래퍼들이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연 수익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매년 1만5천 개 이상의 행사 및 축제가 개최 되었었고, 전국의 수백개의 클럽에서는 매주 공연이 열렸었다. 소위 A급 가수 같은 경우는 행사 당 페이가 많게는 몇 천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에는 일년에 공연을 10개만 뛰어도 몇 억을 벌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의 힙합


트래비스 스캇의 포트나이트 공연 [출처:포트나이트]

    하지만 작년에 코로나 19가 터지고 모든 것은 달라졌다. 잡혀있던 많은 축제들은 취소되었고 많은 클럽들은 문을 닫았다. 대부분의 힙합 가수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코로나 19 이전에 충분한 부를 축적해놓은 인기 래퍼들은 타격이 덜하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인디 래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어쩔 수 없이 부업으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부업을 시작하게 되면, 음악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음악의 퀄리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원래 공연은 인디 래퍼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홍보 수단이었는데 코로나 19의 상황 하에서는 그것이 힘들어졌다. 음악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신을 홍보할 기회가 줄어듦에 따라 인디 래퍼들은 끝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렸다.

    대부분의 인디 래퍼들이 이렇게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났다. 일례로 힙합 전문 유튜버인 ‘전공과 교양’은 ‘MAJOR CULTURE’라는 공연을 개최하여 코로나 19로 인해 고통 받는 래퍼들을 도와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 공연은 조회수가 2500회에 그치는 등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빌스택스, VMC도 비슷한 행사를 개최하였지만 마찬가지로 크게 효과적이지 않았다. 국내 힙합씬에서 비대면 공연이 성공적인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코로나 19에 대해서 국내 힙합씬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점점 죽어가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VR 공연으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인기 힙합 가수인 트래비스 스캇은 2020년 4월에 포트나이트와 협력하여 VR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포트나이트라는 게임 내에서 트래비스 스캇의 모습을 3D 모델링하여 3일 동안 5차례의 공연이 개최되었고, 총 200억의 매출이 기록되었다. 트래비스 스캇의 포트나이트 공연은 코로나 시대에 분명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지만, 이정도 스케일의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는 인기와 자본을 가진 아티스트는 국내에 없다



포스트 코로나: 비대면 공연?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Mosh Pit을 즐기는 모습 [출처: Festival Sherpa]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가 공연 예술 분야에 가져온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로 비대면 공연을 꼽으며, 현장 공연의 시공간적인 제약을 해결해줄 미래의 트렌드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비대면 공연은 코로나 19 이전에도 우리의 삶 가까이 있었다. 매주 진행되는 인기가요 등의 음악 방송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같은 음악 관련 예능들도 어찌보면 전부 비대면 공연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대면 공연들이 존재하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현장 공연을 찾았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오면 국내 힙합씬(공연 예술계)은 코로나 이전의 양상으로 ‘그대로’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대해서 비대면 공연에 VR기술이 결합된다면 분명 산업 내의 양상이 변화할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연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본다면 의견이 달라질 것이다. 공연의 본질은 (적어도 힙합에서는) 가수 그리고 공연장 내의 다른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들이 동원된다. VR 기술의 발전으로 분명 시각적인 부분들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감각들이 과연 10년 안에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청각, 즉 오디오 관련 기술은 이미 수십년째 정체기에 놓여있다. 공연장에서 듣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음질을 집에서 들으려면 현재는 수백~수천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오디오 관련 기술이 이미 정체기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이 비용이 단기간 내에 대폭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촉각이나 후각 등의 감각들도 마찬가지로 집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경험들이다.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원하며


    종합해보자면 국내 힙합씬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해 산업 내의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다기보다는, 적절한 대응 방식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국내에도 백신이 보급되고 있어서 연말 정도에는 공연이 개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공연을 다니기 좋아하는 장르 팬으로서 어서 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어 코로나 이전처럼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여석원

ysw110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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