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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얼어붙은 영화계, 봄날은 올까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9기 임수연


  며칠 전, 필자는 오랜만에 영화관에 방문했다. 평일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영화관은 조용하고 허전했다. 영화를 발권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도, 팝콘과 음료를 구매하기 위해 메뉴판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더 이상 없었다. 영화 관람 전엔 QR코드 확인과 열 체크가 필수가 되었고, 마스크 없이는 영화관에 입장이 불가했으며, 좌석 중간중간엔 앉지 말라는 표시의 노란 테이프가 부착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달달하고 고소한 팝콘 향, 광고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들뜬 말소리, 자리를 찾느라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 모두 사라졌다. 관객들은 모두 거리를 둔 채 각자의 의자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영화관이 죽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영화계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유진투자증권


  기존 영화 산업 매출의 대다수는 극장에 의존했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20년 국내 극장 관객 수와 극장 매출액 모두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대비 70% 이상이 감소했고, 매출액 역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바닥을 쳤다. 100만 명가량을 웃돌던 주말 극장 관객 수는 20만 명에 달하는 처참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를 소비한다. 코로나19로 극장이 우는 대신, OTT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OTT, 뉴노멀(New Normal), 성공적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화 산업 자체는 죽지 않았다. 영화관에 가는 행위가 사라지고 있을 뿐. 어쩌면 이제 영화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더 날개를 달게 된 걸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OTT 시장이 어마어마한 강세를 보인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의 OTT 플랫폼이 최근 2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사실 OTT는 코로나19 전부터 꽤 주목을 받던 서비스였다. 코로나19로 이 트렌드가 가속화된 것이다. 언택트 플랫폼을 찾은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수많은 작품을 집에서 볼 수 있는 OTT의 편리함과 효율성 때문에 OTT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30 OTT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상승곡선을 그린 후, 5060 사용자 역시 유사한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기존 전체 영화 관객 중 10% 정도가 50대였고, 이들은 1020과는 달리 변동이 거의 없는, 사실상 확보된 극장 관객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코로나19에 가장 민감히 반응하는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OTT로 이동한다는 것은 코로나19가 상당히 많은 것을 바꿨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에게 극장은 언제 어디서 코로나19에 걸릴 지 모르는 두려움의 공간이 되었기에 영화 개봉 및 상영의 공간을 OTT로 옮기는 건 배급사 측의 현실적인 결정이다. <반도>와 같이 이미 극장에서 개봉했던 영화가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에 들어오는 것을 넘어 오로지 넷플릭스에서만 단독 개봉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낙원의 밤>의 경우,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등 배우 라인업도 상당하다. 바야흐로 영화 소비의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다.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OTT 서비스의 가속화에는 제작자의 자율성 보장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넷플릭스는 기본적인 작품 제작 틀은 있되 그 안에 창작자와 창작물을 가두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을 취한다. 예산과 흥행에 더 이상 묶여있을 필요가 없는 감독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씬을 스크린에 구현해 영화로 탄생시키고, 볼거리가 풍성해지면 사람들은 열광하는 선순환이 지속되기에,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감독들은 OTT 플랫폼에서 최초로 자신의 영화를 공개할 것이고, 관객들은 계속 OTT 플랫폼을 애용할 것이다.



영화인들의 축제, 영화제도 집에서 노트북으로?


  OTT를 통해 상업 영화들은 더 많은 흥행을 기록할 수 있지만, 독립 영화는 OTT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유명한 배우 혹은 감독, 그리고 자극적인 스토리와는 사뭇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독립 영화들은 일반적으로 '영화제'라는 축제 하에 한자리에 모인다. 그렇다면 어려운 상황 속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이 영화제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을 택했을까?

  

  얼마 전 마무리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경우, 팬대믹 시대 속 '영화는 계속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행사 정상화를 선언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을 기본으로 하는 대신, 전체 좌석의 1/3만을 오픈했다. (원래도 치열했던 예매 과정이 세 배는 더 치열해졌다.) 영화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 등 감독/배우와 관객의 교류는 온/오프라인 형식을 혼용했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해 OTT의 힘을 빌렸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94편의 작품 중 142편은 국내 OTT 서비스인 웨이브(wavve)를 통해 유료 상영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전주국제영화제와 동일한 형식을 취했으며, 부천판타스틱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등도 비슷하게 정상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저항의 풍경>의 관객과의 대화(GV), 출처: 경향신문


  그렇다면 전주국제영화제가 어려운 환경 속 오프라인 영화제 개최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넘게 국내 대표 영화제의 위상을 지킨 전주국제영화제는 책임 때문이라고 답했다. 영화관이 없으면 감독과 관객의 교류도, OTT의 범위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작품들도 사라진다. 특히나 OTT의 등장으로 대형 작품들에 더욱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며, 방송 및 영화계의 기저에 깔려 있던 스타 시스템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전처럼 오로지 작품성과 연기력만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며, 영화인들 사이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OTT가 일상이 되어도 책임감을 가진 영화제들이 존재하는 한, 영화관은 남아 있지 않을까.



#SaveOurCinema


출처: The Korean Herald


  필자는 영화 덕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관' 덕후다. 넷플릭스를 정말 애용하지만, 그럼에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영화관에 방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에는 제약이 없으며 기억 속에 더 오래 각인되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의 관객은 자신이 관람하길 선택한 영화에 보다 깊이 동화된다. 영화관이 사라져도 영화는 계속 볼 수 있지만, 진흙 속 진주를 캐내듯 뛰어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극장에서 선택하고 이를 보며 느끼는 그 특별한 경험은 OTT에선 찾을 수 없다. 상업 영화의 그늘에 가려진, 빛나는 독립 영화들이 부러지고 바스러지지 않길, 그리고 앞으로의 순간에도 계속 영화관이 우리 곁에 함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연세대 아시아학과 임수연

sysl03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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