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1st BITo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럭셔리 패션 브랜드, 예술을 입다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0기 최지원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구찌(GUCCI)의 전시회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변형'이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렸다. 전시회의 예매표가 돌연 매진되며 브랜드의 인기를 증명하는 듯했다. 백화점에서, 편집샵에서 만나는 구찌가 아닌 미술관, 전시회에서 만나는 구찌. 백화점은 상품, 특히 고가의 의류나 잡화를 구매하는 공간인 반면, 미술관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이다. 언제부터 럭셔리 브랜드는 백화점과 미술관을 넘나들며 ‘명품'과 ‘예술' 사이를 줄타기했을까?    


예술이 마케팅이 되는 시대

사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예술은 동떨어진 개념은 아니다. 패션 브랜드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접점이 있다. 따라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디자인에 예술을 차용하거나, 아티스트와 콜라보를 진행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을 활용해왔다.

1965년 보그(Vogue)지에 실린 Yves Saint Laurant (이브 생 로랑)의 Mondrian Dress (몬드리안 원피스)


과거에는 브랜드와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브랜드 안에 예술을 포함시키는 방식이었다면, 현재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브랜드만의 문화재단 설립, 브랜드 철학을 내세우는 전시회 개최, 브랜드의 상품 자체보다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문화 예술을 매개로 전달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등. 과거엔 소비자가 브랜드의 상품을 통해 그 안에 깃들어있는 예술적 가치를 접했다면, 오늘날엔 그 순서가 역전되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먼저 전시회,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예술적 가치를 몸소 경험하고, 이러한 경험이 상품 소비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롯이 예술만을 위한 공간인 미술관 및 전시회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접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는 디스플레이 형식을 벗어나 공간 자체를 브랜드의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도록 브랜딩 하는 사례가 많아지게 되었다. 즉, 예술이 고객을 브랜드로 유인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를 장려하는 마케팅 요소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은 매장 내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여 브랜드의 예술적 가치를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외관을 설계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은 매장의 4층을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전시 공간으로 마련하여 브랜드가 추구하는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활용하였다.

루이비통 메종 서울의 4층 전시 공간 (출처=메종 Marie Claire)

또 다른 럭셔리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는 에르메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복합 문화 공간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오픈했다. 이곳은 상품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에르메스만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카페와 음료를 파는 등, 그야말로 오감을 통해 에르메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 체험 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에르메스 스트리트 콘서트를 열어 지역 주민과 연주자의 교감을 추구하고,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였다.

에르메스 도산파크 (출처=노블레스)

이처럼 다양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일상에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미학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예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구찌(GUCCI), 예술화 전략으로 MZ세대를 공략하다

    루이비통, 구찌, 샤넬 등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브랜드의 노후한 이미지를 쇄신하고, 명품계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MZ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구찌의 전시회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변형'의 경우 13개의 멀티미디어 공간으로 나누어 각 테마별로 구찌의 6년 캠페인의 성과를  ‘감정의 놀이터'처럼 연출해냈다고 한다. MZ세대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가의 컬렉션은 뒤로 한 채, 각 테마 공간을 통해 브랜드가 캠페인을 통해 추구하는 바와 미학적 가치를 스토리텔링 하고자 한 것이다. 말 그대로 놀이터처럼 자유롭게 연출된 공간에서 MZ세대는 브랜드와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며 해당 브랜드를 ‘자신들과 관련 있는 브랜드'로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MZ세대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명품 브랜드를 처음 접하게 되는 경험이 '백화점에서 비싼 가격표를 보고 놀라는 것'에서 '문화예술 공간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는 것'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찌다움과 한국의 미(美), 구찌 가옥에서 만나다

한남동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의 포스터

구찌가 예술화 전략을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브랜드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픈한 구찌의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은 상대적으로 MZ세대가 많이 찾는 한남동에 문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플래그십 스토어의 이름을 ‘뉴욕 5번가점’과 같이 거리에서 따오는 것과 다르게 구찌 가옥은 한국의 전통 주택인 ‘가옥(家屋)'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과 같이 플래그십 스토어의 방문객들은 구찌만의 브랜드 감성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미(美)’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구찌 가옥의 외관은 한국 조각가 박승모 작가와 콜라보해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전통미가 느껴지도록 디자인되었다.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는 화려한 클럽 분위기의 조명과 내벽, 그리고 한국적인 전통미가 느껴지는 바닥 무늬로 꾸며졌다. 이질적여 보이는 디자인 요소가 잘 어우러져 화려한 복고풍의 구찌만의 특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방문객은 매장 곳곳에 놓여있는 구찌만의 감성과 한국적인 미가 융합된 인터랙티브 아트나 소품 등을 구경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명품 브랜드의 명품 레스토랑

예술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구찌의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찌는 이번 달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 6층에 구찌의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을  오픈한다. 이탈리아의 피렌체,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본 도쿄에 이어서 서울에 네 번째로 상륙한 구찌의 레스토랑에서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문화가 융합된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레스토랑 내부는 이탈리아 감성과 구찌의 미학적 요소가 느껴지도록 꾸며지며, 시그니쳐 메뉴인 5만 원짜리 ‘구찌 버거'를 판매한다고 한다.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에서 판매하는  ‘구찌 버거'

2 전성기를 맞이한 구찌(GUCCI),

 기세를 이어나가려면

이러한 예술화 전략에 힘입어 구찌는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총매출의 약 60%가 35세 이하에서 발생할 정도로 구찌는 MZ세대를 성공적으로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찌가 이러한 긍정적인 기세를 앞으로도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를 명품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품격 있고 미학적인 가치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명품 브랜드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 안에 담겨있는 미학적 가치와 스토리를 함께 소비하기 때문에 예술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좋은 도구로써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듯 구찌를 포함한 다수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줄이어 예술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 대다수의 예술화 전략은 다소 획일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 전시회 개최, 팝업 스토어 혹은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브랜드의 감성을 담은 카페 오픈 등. 각 브랜드 안에 담긴 아이덴티티와 스토리가 다양하더라도, 예술화 전략 자체가 획일화되어버릴 경우 소비자는 결국 브랜드의 문화예술 경험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고, 매출 증대를 위한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인식해버릴 것이다. 

따라서 구찌가 앞으로도 계속 예술화 전략을 통한 성공적인 MZ 고객 타겟팅을 이루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기존 예술화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구찌의 레스토랑 오픈은 다소 도전적이지만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각적인 자극만을 고려했던 기존 예술화 전략에서 벗어나, 구찌는 고급 레스토랑을 오픈하였고, 방문객의 시각뿐만 아니라 미각을 자극하여 브랜드 경험의 폭을 넓혔다. '입는 브랜드'가 '먹는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이 다소 생소할 수는 있지만, 소비자는 오감각을 통해 브랜드를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브랜드는 더욱 잊히기 힘들게 될 것이다.


구찌가 획일화된 기존 예술화 전략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예술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시행해나간다면, 소비자는 구찌를 더 이상 단순 명품 패션 브랜드로만 인식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구찌를 ‘입는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예술적 가치'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구찌다움'이 하나의 예술적 가치로 인정받기 시작하면 브랜드의 포지셔닝은 확고하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연세대 문화디자인경영 최지원

jiyomi6314@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핫한 동네, 성수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