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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같이 버는 회사, 개같이 쓰는 소비자

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31기 남지훈

EA로고 (출처: EA.com)


아는사람 얘기

    “게임을 플레이한지 2시간이 지났습니다. 과도한 게임이용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피시방에서 축구 게임을 즐기는 중학생 나에게 이 정도의 경고 메시지 따위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1-1 동점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니까...빨리 역전골을 넣어야 하는데.. 실제 시간으로 60초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상대편 호날두 선수가 공을 잡았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법한 시간인데, 귀신같이 빠르다. 우리 편 수비수는 발목에 족쇄를 달았나,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며 Shift키를 온힘 다해 눌러보지만 적토마와 같은 호날두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수비수들 스피드 성능에 투자 좀 할걸…

 2-1 패배. 4주째 같은 결과다. 결국 나는 한달 연속 2명의 저녁값을 내야만 했다. 

유저가 '투자'하는 플레이어 카드 (출처: The Mirror)

    여기서 잠깐.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위 일화에서 잘못된 것이 뭐가 있을까? 위 상황은 중학생 둘이 피시방을 찾아 작은 내기를 건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없어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답이 바뀔 수도 있다. 마지막 줄에 학생은 ‘투자’를 언급한다. 본인 명의의 계좌도 없는 중학생이 투자? 주식은 커녕 저축의 개념도 없는 철없는 아이가 건강한 투자를 했을 리 없다. 그에게 투자란 축구 게임 내 판매되는 카드 및 능력치를 구매해 한 선수를 강화하는 것 뿐이다. 본인이 번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본 글에서 필자는 스포츠 게임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도록 한 하나의 획기적인 혁신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다. 기업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천재적인 발명을 한다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를 매우 위험한 길로 이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EA Sports, It’s in the Game

     2000년도 후반까지 모든 스포츠 게임은 해당 스포츠의 주 리그와 선수들의 저작권을 빌려와 현실과 가장 근접하도록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매년 비슷비슷하게 출시되는 게임에 유저들은 질려있었고, 회사들은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이외의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9년, EA (Electronic Arts)가 그들의 베스트셀러 FIFA 09(피파 09, 베스트셀러 축구게임)을 통해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게 되고, 이후에 축구, 농구, 야구 가릴 것 없이 모든 메이저 스포츠 게임은 EA의 모델을 따라하게 된다. 

이를 통해 온라인 소액 결제라는 개념이 스포츠 게임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EA는 피파에 Ultimate Team이라는 새로운 게임 모드를 출시한다. 기존에 세팅되어있는 실존하는 팀을 고르는 것이 아닌, 카드 팩을 열어 무작위로 얻게 되는 선수들을 모아 나만의 유니크한 팀을 만드는 방식이다. 게임을 하며 기본적으로 얻게 되는 카드 팩이 있지만, 성능이 좋은 선수 카드를 얻어 세계 각국의 유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을 지불해 고급 카드 팩을 구매해야만 했다. 처음 보는 시스템에 흥미를 갖게 된 유저들은 빠르게 중독되기 시작했고, 피파는 EA의 자랑스러운 걸작품에서 또 하나의 흔한 캐시카우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NBA 2K (농구 게임 시리즈), Madden (미식축구 게임 시리즈), 그리고 한국 모바일 야구 게임 컴투스프로야구도 이 시스템을 따라하며 EA는 스포츠 게임 업계의 판도를 영원히 뒤집어놓게 된다.


또 하나의 캐시카우?                                                   

2000-2009 가장 많이 팔린 게임 TOP10 (출처: vgchartz)


    스포츠 게임 산업에서 게임 구매 후 게임 내에서 또 무언가를 위해 돈을 내는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던 개념이 아니다. 또한, 추가 구매 요인이 없었다고 스포츠 게임이 인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EA가 소액 결제라는 출사표를 던진 2009년 이전의 게임 시장을 보자. 200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Wii Sports이고, 스포츠 게임이 1등,2등, 4등을 했을 만큼 인기가 없었던 시장도 아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게임 내에 소액 결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2010년대의 게임 시장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2010년대에 가장 많이 팔린 10개의 게임 중 Terraria라는 게임이 유일하게 소액 결제를 포함하지 않고, 나머지 9개의 게임은 소액 결제 창으로 도배되어있다.  

    2022년 현재에도 EA의 운영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소액 결제는 EA에게 2015년에만 5.8억 달러를 안겨줬고, 2021년에는 한 해 소액 결제량이 16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숫자에 이르렀다. EA가 2021년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16억 달러는 순수익의 29%가 되는 수치다. 소액 결제가 EA가 벌어들인 돈의 ⅓ 에 가까운 수치를 담당했다는 뜻으로, 참으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회사와 비교한다면?

    EA는 소액결제를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게임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인가? P.O.P (Points of Parity, 유사점), 그리고 P.O.D (Points of Difference, 차별점)을 통해 소액 결제라는 개념을 사용했던 회사들의 예시를 비교해보면서 EA가 어떻게 새로운 바람을 주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EA와 같이 소액 결제 모델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다른 회사들의 가장 큰 유사점은 유저들의 소비가 이유 있는 소비라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그저 더 예쁜 비주얼의 아이템을 얻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 극복해야할 과제를 풀어나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EA가 선수 능력치 업그레이드를 소액 결제로 가능케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페이스북 초창기에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기여를 했던 게임 FarmVille이 있다.  유저들이 일일 미션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과일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높여주는 아이템을 소액 결제를 통해 팔기 시작했고, 느린 속도에 답답해하던 유저들에게 천원의 소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EA의 가장 큰 차별점은 실존 인물의 IP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 게임은 선수와 팀의 이름, 이미지, 음성을 사용하려면 팀과 라이센싱을 맺고 선수 개개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스포츠 팬들이 어린 나이부터 우상화하던 선수들의 커리어를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명경기를 재연하며, 팀을 마구잡이로 만들 수 있는 등 다른 장르의 게임의 유저들이 느낄 수 없는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이 포함돼있다. 단, 다른 회사와의 차별점이 많은 만큼 소액 결제가 들어갈 구멍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액 결제의 폐허 

    소액 결제는 스포츠 게임에서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몇몇 독자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 같은 타 장르의 게임에서도 “전리품 상자 (Loot Box)”라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여러가지 혜택 또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이런 확률형 아이템의 공통점은 결과가 랜덤이라는 것이다. 도박형 모델을 사용해 사용자들의 호기심, 모험심, 그리고 결과에 대한 불만족이 불러오는 짜증이라는 심리의 사용이 카지노에서의 도박과 다를 게 없다. 


확률형 아이템과 도박의 경계는? (출처: Online Bingo)

    실제로 소액 결제와 도박성 심리를 다룬 연구는 셀 수 없이 많다. 확률형 아이템 구매율이 높을수록 도박중독의 심각성도 증가한다는 다수의 연구결과에서 소액 결제가 유저들에게 미묘하게 미치는 악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도박심리가 이용되는게 앞서 언급된 카드 팩과 전리품 상자들은 희귀도에 따라 구성품의 획득 확률이 상이하다. 

    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병적 도박(Problem Gambling)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는 행동이 병적 도박과 높은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병적 도박이란 도박에 대한 탐닉이다. 게임 중독은 흔히 들어본 문제점이지만, 게임 내의 병적 도박은 일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어서 더욱더 위험한 사회적 문제라 생각된다. 또한, 소액 결제에 사용되는 액수가 일반 도박장에서 사용되는 액수보다 훨씬 적은 만큼 동등하게 심각한 문제로 인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유저에게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가 하면, 기업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공정한 게임플레이에 방해를 주는 소액 결제들이 생기면서 팬들은 크게 실망하고, 회사를 보이콧하는 현상도 생기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스포츠 게임의 카드 팩 소액결제 시스템은 P2W (Pay-To-Win) 모델의 가장 전형적인 예시다. P2W 모델이란 돈을 많이 낼수록 승산이 높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모든 유저들이 동등한 발판에서 플레이하는 틀을 깨버린 모델로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공정한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어드밴티지를 얻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회사 입장에선 돈이 되기 때문에 절대 이 모델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고치지 못한 고질적인 질병이다.


그렇다면 약은 있나? 백신이라도?

    소수 유저들의 울부짖음이 효과가 있었던걸까, 몇몇 정부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을 개정해 솔루션을 찾고 있다. 도박과 다를 것 없는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소액 결제를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작게나마 일어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게임 내 구매 가능한 전리품 상자의 구성품의 개별 획득률이 몇%인지 누구든 알아볼 수 있게 명시해야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상자, 카드 팩들의 도박성이 우려되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다. 

    EA가 게임 업계의 역사를 뒤바꾼 큰 파장을 일으킨건 확실하지만, 현 시점에도 그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는 소액 결제가 하나의 회사가 이끌어나가는 신규 트렌드로 보기보단 이미 모든 게임에서 땔래야 땔 수 없는 하나의 기능(feature)으로 레벨업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큰 변화가 생길 가망성은 낮다. 세계적으로 운영하는 대형 게임 회사들을 국가들이 나서서 일일히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몇몇 유저들이 보이콧을 해봤자 게임 회사들의 소액 결제 관련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회사들의 근본적인 돈 버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상징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된다. 

    EA가 본인들이 바꾼 패러다임을 현재 주도하지 않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이 게임회사 경영진과 게임 유저들의 삶에 미친 영향력만 따지자면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큰 성공을 루어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선구자 역할을 한다고 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한 만큼 우리도 그 영향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 국제학과 남지훈

namjihoon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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