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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탁이 제시한 새로운 소비의 기준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2기 박제우

프라이탁, 기업 로고

 요즘 길거리를 걷다보면 지저분하고 요상해 보이는 가방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백팩, 크로스백, 에코백 등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주변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한 친구가 새로 산 '프라이탁' 가방이라며 자랑하는 걸 보니 왠걸, 내가 요상하다고 생각한 그 제품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몇십만원을 호가한단다.


“프라이탁, 그래서 도대체 뭔데?” 


 금요일 밤 홍대거리를 활보할 것만 같은 힙하고 개성 넘치는 패션 피플부터, 과잠을 입고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하는 180도 상반된 학생들의 스타일에까지 이 브랜드의 제품이 침투해 있다. 누군가 쓰다 버린 듯한 떼 탄 디자인, 동묘 구제시장 바닥에서 볼 법한 가방이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핫 아이템이 되었을까?



FREITAG의 탄생


 프라이탁이라는 기업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탄생 배경부터 알아보자. 1993년, 스위스 출신의 프라이탁 형제는 취리히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였다. 이들은 스케치북을 배낭에 넣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곤 했는데, 여기서 두 가지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배낭을 뒤로 매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면서 무언가를 꺼내기 불편했다.

        둘째, 비가 매우 자주 오는 지역 특성 상 가방과 스케치북이 쉽게 젖곤 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줄 가방을 찾던 와중, 이들은 뉴욕에서 봤던 메신저 백을 떠올렸지만 학생이라 돈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스위스에는 그런 형태의 가방이 없었다. 게다가 메신저 백이 방수가 될리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집 밖에 화려한 색과 로고가 박힌 방수포로 덮힌 트럭들이 여러 대 지나가는 것을 보게되고, 이 ‘타폴린'이란 재질의 방수포로 본인들이 원하는 가방을 만들어 보기러 한다. 다행히 이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농가 작업장에서 뗏목이나 비누박스 자동차 등을 만드는 등 손재주가 좋았고, 가까운 공장지대에서 구해온 방수포와 자동차의 안전벨트, 폐자전거의 고무투브 등을 구해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페인포인트를 만족할 첫 메신저 백을 완성한다. 이후 몇 개의 가방을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팔아 점점 인기를 얻게 되었고, 자신들의 성을 딴 ‘프라이탁'이라는 기업을 설립하게 된다. 

프라이탁 최초의 메신저백, 1993

세상에 없던 가치의 탄생, ‘업사이클링'으로 정의된 비즈니스 모델


    21세기에 들어 '친환경' 키워드가 트렌딩 하고 있어,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에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1994년 리너 필츠(Reiner Pilz)는 ‘업사이클링'의 개념을 낡은 제품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버려진 제품을 새로운 제품 생산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프라이탁 최초의 혁신은 ‘업사이클링'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탄생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분명 프라이탁 형제가 새활용이라는 비전과 미션을 가지고 기업을 설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든 '기존에 없던' 가치나 지식, 환경은 혁신이 된다.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의 개념이 정의되기도 전인 1993년, 세계 최초로 폐소재를 활용해 제조한 패션가방제품에 상업적 가치를 불어넣었고, 오늘날 이들은 업사이클링을 통해 재창조를 이루어내는 가치 상향형 재활용 방식을 실천한 최초의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프라이탁은 단순히 재활용된 가방이 아닌, 새로운 미래가치를 창출해냈다. 폐소재에서 만들어낸 제품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혁신의 가치를 탄생시켰고, 친환경 소비 모델이 시장경제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했다. 



혁신적 가치를 빛내게 해준 혁신적인 브랜딩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아무리 프라이탁이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제시했다지만, 그들의 가치가 세상에 지배적으로 자리잡지 못한다면 이는 반쪽짜리 혁신이 아닐까?글쎄, 우리가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를 인지하고,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에 익숙한 이유는 바로 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현 시대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위스 한켠에서 시작된 작은 기업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영향력과 위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과정이 바로 프라이탁이 창출한 혁신의 연장선이자 나머지 반쪽이다. 

    설립 초기의 프라이탁이 재활용 디자인 사업의 시장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21세기 프라이탁의 혁신은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폭발적인 확산과 새로운 소비자 시장의 개척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두 갈래의 상호작용적인 브랜딩 전략에 있다.   


1) 이미지 브랜딩:  ‘자원의 순환'

    프라이탁의 브랜드 슬로건은 ‘We think and act in cycle’이다. 이들의 모든 기업 활동은 ‘자원의 순환’이라는 가치에 광적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재활용을 위한 자원을 사지 않고, 순환의 과정에 있어 본인들이 재소비하지 않으면 버려질, 유지 가능한 재료로 끊임없는 지속가능한 사이클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다음과 같이 7개와 ½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Frietag Manifesto’ 성명서를 통해 전달한다.


#1. We Keep Stuff in close cycle

#2. We only own objects that last

#3. We Repair

#4. We believe in systems designed for compatibility

#5. We prefer access over ownership

#6. We pay for results not resources

#7. We lose speed to win time

#8. …

P.S Happiness is Cyclical

(마지막 조항의 ‘…’ 은 앞으로 나아가고 발전해갈 프라이탁의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½ 조항으로 정의했다.)


즉, 프라이탁의 친환경적 비즈니스 모델과 모든 기업 활동의 정당성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브랜딩이자 표현인 것이다. 


     프라이탁 본사 건물 역시 ‘순환'을 실현하는 요소들로 이뤄진 건물이자 인프라다. 이들은 인건비가 싼 공장을 찾기 위해 취리히에 본사를 고집하고 있고, 여기서 절감한 비용을 재생 콘트리트로 친환경 본사 건물을 짓고, 버려진 화물 컨테이너 박스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었다. 현재 프라이탁 공장의 50%는 재활용열로 운영되고, 세척 등의 가방 제작과정에서 필요한 물의 30%를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 또한 취리히 북쪽의 오에리콘 지역의 공장 역시 생산, 물류, 사무를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다. 심지어 프라이탁의 물류 사이클까지도 스위스에서 원재료의 공정을 마치고 여러 국가에 있는 재단 시설에 보내져 제품이 조립된 후, 스위스의 본사로 다시 돌아와 검수를 해 판매하는 '순환'의 과정을 모방하고 있다.


프라이탁의 스위스 본사 플래그십 스토어

    프라이탁은 제품의 소비과정에도 순환의 가치를 부여한다. 프라이탁의 #5 번 manifesto는 ‘소유’하는 행위가 자원의 순환을 멈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비자들끼리 가방을 교환하는 커뮤니티인 S.W.A.P (Shopping Without Any Payment)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며, 자전거 백팩 무료 대여 캠페인, 그리고 1년에 한 두번 열리는 FREITAG RARITIES 통해 결함이 있는 제품들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즉, 소유로 인한 폐기를 줄이고 공유를 통한 순환 과정에 기여하자는 프라이탁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전략들이다. 


     그렇다면 프라이탁은 위와 같은 전략들의 의미를 어떻게 압축하고 소비자들에게 전달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까? 바로 간단하고 직관적인 미디어의 사용을 통해서다. 프라이탁의 홈페이지와 오프라인 매장의 입구에는 가방을 만드는 과정을 재료 수집부터 생산까지 사진과 영상으로 미니멀하지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Freitag의 ‘F-’를 붙여 F-worker, F-abric, F-store, F-community 등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 소비자로 하여금 소속감과 재미, 연결성을 부여한다. SNS나 광고에서도 농담을 섞은 친근한 말투로 자칫하면 멀리 느껴질 수 있는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손쉽게 전달하고 고객들이 소비하도록 하며, 구매 시에도 사용 설명서와 제품 설명서를 상세하게 제공하여 공동체적인 느낌을 형성하도록 하고 있다. 


     즉, 프라이탁은 기업의 모든 활동을 ‘순환'이라는 가치에 광적으로 유지하며 확고한 이미지 브랜딩을 한다. '익숙한 게 좋아'라는 말이 있듯이 일관적인 기업 가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정을 받게 되고, 정당성이 부여된다. 또한 이를 재밌고 확실하게 소비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업사이클링'과 '친환경'이라는 키워드의 대한 진입장벽을 허물고 소비를 촉구하는 전략이 됐다.


2) 제품 자체의  ‘품질’과 개성’  

     두번째 브랜딩 전략은 바로 제품 자체의 ‘품질'과 ‘개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프라이탁의 제품들은 가방 자체의 본질에 매우 충실하다. 방수포를 활용해 방수와 충격에 강하고 공간성 역시 좋다. 심지어 폐 안전벨트와 고무튜브를 사용한 가방끈과 마감은 원 재료를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깔끔하고 튼튼하게 가공되어 있다. 또한 프라이탁은 업사이클링 제품의 최대 단점인 ‘깔끔하지 않다'를 숨기지 않고 여김없이 드러낸다. ‘더러움' 자체를 개성으로 삼고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개성을 강조하는 또다른 판매전략은 바로 100%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폐기된 방수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프라이탁의 제품 라인업에는 완벽하게 동일한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프라이탁은 이를 소비가치로 삼기 위해 모든 제품에 각각의 유일한 상품코드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FXX_00000처럼 앞의 코드는 제품 군이고 뒷 숫자는 각 제품의 고유숫자다. 또한 이는 소비자들이 제품에 그들의 ‘고유성’을 담고 싶어하는 심리를 타게팅하고, ‘개성’'이라는 특이한 가치에 묶여 상호작용하는 시너지를 형성한다. 특히 요즘 2030 세대들이 본인들의 가치를 따라가는 소비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제품이 주는 ‘친환경성’은 어린 세대들의 자아 표출과 개성 표현에 한껏 힘을 실어주는 경쟁력이 된 것이다. 



마치며


     오늘날 프라이탁은 원자재 탐색, 타프 커팅, 세탁, 디자인, 재봉까지 5단계를 걸쳐 연간 30만개의 가방을 생산하고 있고, 390만 톤의 방수포와 3만6천개의 자전거 튜브, 22만개의 차량용 안전벨트가 폐자재에서 수거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2019년 기준 기업은 연매출 700억을 달성하기도 했다. ‘순환’에 가치에 부합하는 모든 기업 행동과 이미지 브랜딩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프라이탁을 어느 기업보다 확실한 도덕적 올바름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제품이 주는 ‘실용성’과 ‘개성’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정당성과 특별함을 불어넣어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프라이탁은 우리 사회에 재활용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을 입증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혁신을 이루어냈다. 프라이탁의 성공 후로 2003년 설립된 글로베호프, 2005년에 설립된 엘비스앤크레세 등 다양한 업사이클링 기업의 출발에 기여했다. 국내시장 내에도 ‘큐클리프(CUECLYP)’나 ‘바다보석' 같은 기업들이 업사이클링이란 가치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프라이탁은 여성 전문 경영인 적극 도입, 저개발 국가 노동자 및 장애우 고용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시도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프라이탁이 친환경 기업의 선두주자를 넘어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불어넣을 기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연세대 산업공학 박제우

jaewoo06272@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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