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3rd BITor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시작: 웅진코웨이의 렌탈 서비스


    흔히 ‘제품을 구매한다’의 정의로 우리는 만질 수 있는, 혹은 디지털화된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을 가장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유·무형의 제품 뿐만이 아니다.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 보자. 보통  제주도에서의 이동 수단으로 대중교통과 렌트카 대여 중에서 고민하기 마련이다. 이때 렌트카 서비스는 자동차 자체를 구매한다기보다는 제주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구매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이렇게 제품 자체가 아닌 제품의 사용 기간을 판매하는 렌탈 서비스는 고가 제품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크게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렌탈 서비스만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제3의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두 가지 형태를 보인다. 상기 언급된 제주도의 렌트카 서비스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렌탈 서비스 역시 현재로서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상용화되어 있으나, 약 2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조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은 제품 자체의 생산과 판매의 비중이 대부분인 상당히 단순한 모델이었다. 본 저널에서는 1990년대 후반, 국내 제조업체의 비즈니스 모델을 최초로 혁신한 웅진코웨이의 전략과 그 임팩트를 탐구하고자 한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단발성 비즈니스 모델


    웅진코웨이는 생활 가전 제조업체로, B2C와 B2B를 아우르며 현재 정수기와 공기청정기부터 매트리스, 안마의자 등 다양한 라인업의 가전 제품과 사후 관리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웅진코웨이의 초기 사업 모델 역시 제품 자체를 판매하는 것까지에서 그쳤다. 이러한 1차원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한계점이 존재했다. 먼저, 웅진코웨이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제품 생산 시 발생할 수 있는 매출이 오직 해당 제품이 판매될 때의 판매가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러한 1회성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최대한 많이 판매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생활 가전 제품이라는 웅진코웨이의 제품 믹스 특성 상 교체 주기가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으로 상당히 길다는 것 역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요소였다.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대부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생활 가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였고, 이러한 경쟁 형태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긍정적인 구도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고객 입장에서도 구매 여정에서 상당한 페인포인트가 존재하였다. 우선 구매 고려 및 구매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크기가 크고 고가인 생활 가전 제품들을 구매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식기류와 같은 소형 제품들보다 당연히 가격대가 나가고, 그 중에서도 매트리스 같은 제품들은 크기와 구성에 따라 가격대가 천지차이였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하나 구매할 때 큰 금액이 한 번에 빠져나가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구매 이후에도 정수기와 같은 주방 가전들은 필터를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거나, 제품 구조가 복잡하여 청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IMF라는 통제 불가능한 환경적인 변화가 들이닥쳤다. 우리나라는 특정 산업군을 불문하고 시장 전반적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경제가 침체되며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었고, 웅진코웨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심각한 규모의 손실을 입고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할 수 밖에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 가격 구조 개편과 관리 서비스 출시


    이에 웅진코웨이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편하여 당사가 마주한 외부 환경의 위기를 타파하고 가전제품 제조업체의 고질적인 한계였던 수익 구조의 불안정성을 해결하고자 했다. 먼저, 자사 제품을 일정 기간 동안 일정액을 월별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렌탈 서비스를 출시하여 가격 

웅진코웨이의 현 가격 구조 일부 (출처: 웅진코웨이)

구조를 두 종류로 다각화하였다. 웅진코웨이의 고객은 기존의 방식과 동일하게 몇 백 만 원의 생활 가전 제품을 일시불로 구매하여 제품 자체를 소유하거나, 매달 몇 만 원을 납부하여 사전에 계약한 일정 기간 동안만 제품을 사용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관리 방법이 복잡하거나 어려워 생활 가전 제품들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과도한 금전적인 지출을 겪는 소비자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해 케어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웅진코웨이

웅진코웨이의 현 케어 서비스 일부 (출처: 웅진코웨이)

는 자사의 제품만을 취급하는 전문적인 생활 가전 관리 기사  ‘코디’를 직접 교육 및 파견하고 있다. 고객은 원하는 점검 시기에 약 4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코디’ 서비스를 신청하여 구매한 가전 제품의 설치와 같은 1회성 서비스부터 필터 교체, 청소와 같은 정기적인 사후 관리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 개편을 통해 웅진코웨이는 생활 가전 제품 구매 여정에서 구매 단계만 담당하는 것이 아닌, 구매부터 구매 이후 관리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담당하는 스마트홈 기업으로 거듭났다. 고객이 제품을 경험하는 모든 단계에서 웅진코웨이를 사용하고,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렌탈과 케어 서비스를 통해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비교적 적은 금액의 돈으로 원하는 기간 동안 관리와 처리를 걱정할 필요 없이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통합한 웅진코웨이의 혁신


    기존의 산업 시장에서 유통 및 소비되는 재화의 형태는 유형의 제품과 무형의 서비스 로 이분화되어 있었다.  2차 산업은 제조업, 3차 산업은 서비스업으로 산업군 자체가 분리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웅진코웨이의 렌탈 서비스는 유형의 생활 가전 제품을 매개체로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하여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를 무효화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질적인 판매 상품은 렌탈 서비스와 케어 서비스이고, 매트리스와 같은 제품은 이러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중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할부와 유사한 렌탈 사업은 출시 초기에는 제조원가보다 턱없이 부족한 월 렌탈료만이 매출로 집계되므로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웅진코웨이의 제품 중 정수기를 예로 들면, 렌

웅진코웨이 정수기 1대의 현금흐름 (출처: 아이투자)

탈 후 1개월까지는 약 10만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1년 안에 약 14만 원의 이익이 창출되므로 1년 안에 손실을 상쇄하고 BEP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강력한 수익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웅진코웨이의 렌탈 전략은 또한 시의성이 매우 적절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생활 가전 시장의 모든 제품군에서 웅진코웨이는 약 50%에 달하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렌탈 서비스를 출시하고 초반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당시 현금 흐름이 중요했는데, 그 당시 삼성, LG와 같이 현금  흐름이 높은 대기업들은 전기밥솥과 같은 생활 가전 시장에 진입하였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 공격적인 진출을 꺼리고 있었고, 웅진코웨이를 제외한 시장 플레이어들은 상대적으로 기업의 규모가 작고 현금 흐름이 낮아 초반의 손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웅진코웨이의 now & next


    1990년대 후반에 출시된 웅진코웨이의 렌탈 서비스는 기업과 소비자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킴과 더불어 시장 상황과 맞물려 웅진코웨이만의 차별적인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그 후 201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렌탈 시장은 호황기를 맞았고, 시장의 파이가 점점 커짐에 따라 웅진코웨이 역시 순조롭게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현재는 국내 대기업들이 점차 렌탈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고 있고, 이들과 비교하여 브랜드 파워에 밀리는 웅진코웨이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형국이나,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대 주주인 사모펀드가 지분 전체를 매각하기도 하였고, 계열사와의 분쟁도 여러 차례 겪었다. 웅진코웨이가 다시 한 번 당사가 겪는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next step을 밟기를 기대하며 본 글을 마친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최하영

qorhvkbb@yonsei.ac.kr

매거진의 이전글 더 저렴하게, 더 많이! Enapter의 수소 혁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