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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는 한국인,
외로운 사람들과 물질주의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35기 박다빈


물질주의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의 필요성


   최근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 사회가 유교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무시하고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 한국인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줬다고 분석한 것을 담은 영상이 많은 한국인들의 공감을 사며 물질주의라는 논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물질주의에 대한 자각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담론은 이를 대한민국의 문화/역사적 특성에 따른 불가역적인 사회현상으로 정의 내리는 것에서 멈춰왔다. 그러나 물질주의에 대한 논의를 해당 지점에서 멈추는 것은 물질주의가 현재 너무나 다양한 한국의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물질주의만이 한국의 사회 문제들의 원인은 아닐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맨슨이 분석했듯이 물질주의가 대한민국의 우울증 문제와 나아가서는 저출산 문제에도 현상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한국에 물질주의가 자리 잡게 된 계기에 비해 현재 물질주의가 왜 한국을 집어삼키는 종교가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분석이 부족하다고 느껴, 오랜 시간 많은 사상들의 근간이 되었던 근본적인 개념인 ‘소유’와 ‘존재’를 중심으로 현 대한민국의 물질주의 생태를 조사하고자 한다.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라 고착화된 고도 물질주의


  대한민국의 고도 물질주의의 발단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단기간의 경제적 고성장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90년대의 정책 방향성과 더불어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물질적 성공과 재산 축적’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사회적 지위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고, 물질주의는 대한민국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17개 선진국들 중 유일하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물질적 풍요’를 고르는 나라, 국민의 55프로가 ‘강한 물질주의’에 빠져있는 나라가 되었다 (출처: PEW Research Center,"What Makes Life Meaningful?",  2021 & 장덕진, 데이터로 본 한국인의 가치관 변동, 2017). 이와 관련하여 심도 있는 다양한 분석들이 있고 위의 설명만으로 다뤄지지 않는 점들이 많지만 이 글의 초점은 복합적인 이유로 형성된 물질주의가 현세대에게 이어져 오는 과정에 있다.


  이전 세대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를 통해 ‘고착화된 문화’를 통해 물질주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고착화된 문화란 무엇이며 이는 어떻게 물질주의를 전파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 개념을 적용시켰을 때 비교적 명쾌하게 드러난다. 소유의 방식은 물질적 소유를 통해 자아를 규정하고 안정감을 찾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며 이때 성공, 지위, 재산 등의 외적 요소가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반면, 존재의 방식은 내적 성장, 경험, 인간관계, 창의성 등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며, 이는 물질적 소유에 의존하지 않고, 자아실현과 깊은 인간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방식을 강조한다. 핵심은 ‘존재’의 방향성으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소유’, 즉 물질주의에 이르지 않게 한다고 했을 때, 새로운 세대가 ‘소유’를 학습하는 상황에 얼마나 놓여있는지와  ‘존재’를 학습하는 상황에 얼마나 놓여있는지에 있다.



대한민국의 학생이 '존재'가 아닌 '소유'로 세상을 보게되는 과정


  대한민국의 초중고 학생의 경우, OECD 국가들 중 가장 오랜 시간 공부하는 이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대학 입시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물질적인 성공’과 ‘대학 입시에서의 성공’이 치환 가능한 표현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학생들은 매일 같이 물질주의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교육받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어떨까? ‘존재’는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식인 반면 대한민국의 초중고생들은 방과 후 평균 13분만을 가족들과 보내며 관계를 통한 존재 가치 형성의 기회를 잃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13분의 기회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경’에 대한 대한민국의 가정교육 강도는 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더불어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자질로서 ‘존재’와 연관되는 가치인 관용, 종교, 순종과 이타심은 세계 평균에 한참 뒤처지며, 특히 이타심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계 평균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출처: The World Values Survey, 2018). 정리하자면 한국의 학생들은 집을 나서서 집에 돌아와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존재’에 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하고 ‘소유’의 가치만을 학습 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인이 '존재'가 아닌 '소유'로 세상을 보게되는 과정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긴 공부 시간이 이례적으로 긴 노동 시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연평균 노동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OECD 평균에 비교했을 때에는 155시간 더 일하고 있는 한국의 성인들은 여전히 하루의 대부분을 ‘소유’와 관련된 활동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비슷한 노동량을 가지는 나라들이라고 대한민국과 비슷한 강도의 물질주의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다. 답은 역시 ‘존재’, 즉 관계성에 있다. 많은 노동량과 동시에 한국의 성인들은 ‘관계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터부시되기 시작한 인맥 중심의 관계는 한국인의 관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것의 문제성이 지적되며 인맥 중심의 관계가 줄어들며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은 관계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중세 시대 유럽에서도 일어났지만 그들은 긴 역사 속에서 상법과 계약법 등의 발전과 함께 익명의 사람과의 관계를 체화시키며 관계의 부족을 해결하였다. 이미 오래전에 가족/가문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난 그들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법, ‘모르는 사람과 상대하는 법’에 대한 규범을 헌장 도시의 형성에 이은 자발적 조직의 형성을 통해 장시간 축적하였고, 결과적으로 이웃 등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문화적으로 성숙하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조지프 헨릭 교수의 "위어드"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급속도의 사회 변화를 겪은 한국인들은 낯선 사람과의 사회성 (Impersonal Prosociality)을 기르지 못한 상태에서 돌연 기존의 관계 형성 관습을 떠나야 했고, 이는 그들이 사회에서 관계를 통해 ‘존재’를 체험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씨족 중심의 사회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충분한 기간을 보장했던 유럽과 달리 그 과정이 이례적으로 빨랐던 한국은 비교적 낯선 이들과의 관계 형성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 중 ‘이웃과의 대화에서 만족감과 소속감을 느낀다’는 사람의 비율은 9프로로 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54만 명의 고립・은둔 청년의 존재가 사회 문제로 언급되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의 2030 세대 중 연애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57.3%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해당 문제가 실제로 젊은 세대의 관계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집 안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서 혼자 독서, TV, 음악 감상 등으로 휴식하면서 만족하는 비율은 전 세계 1위인 반면 ‘가족과의 좋은 관계’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웃는 것’을 통해 즐거움이나 소속감을 느낀다는 비율은 각각 18%와 14%로 모두 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출처: IKEA, Life at Home Report,  2023). 즉 우리는 집 안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관계로부터 ‘존재’의 가치를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비율 역시 전 세계 최하위라고 하는데, 본인의 마지막 경험은 언제였는가?)



물질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문제를 ‘존재’와 ‘소유’의 관점에서 분석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주의를 ‘불가역적인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는 가슴 아프게도 일정 부분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미 형성된 사회의 틀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학생들은 지금처럼 공부하지 않기 어렵고, 어른들은 지금보다 덜 일하기 어렵다. 더불어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다양한 사건사고들로 비롯된 불신으로 인해 비단 불편할 뿐만 아니라 두렵게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결론 지으며 담론을 멈추는 것은 명백히 병들어 가는 한국 사회를 고려했을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록 거시적으로 사회 구조 전반을 뜯어고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개인의 인식 변화는 여전히 기대할 수 있는 해결책이다.


  사회/문화적 현상이 원인이 되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문제이니 만큼 그 해결점의 방향성을 찾는 것은 비교적 쉬울지 몰라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아는 것과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해결책을 찾는 데까지 이어져야 하기에 개인적인 해결책을 얕게나마 두 가지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철학 교육은 학생들이 다른 관점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


  첫째로 학생의 시기에 적용시킬 수 있는 해결책으로써 교과과정 내 철학 교육 의무화를 제안한다. 이는 관계성을 직접적으로 회복시키는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제안이다. 혹자는 철학을 교육 과정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학문이 대입을 위한 형태로 변질될 것이고 의도된 이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여타 다른 과목들과 같은 형태로 ‘소유’의 가치를 가르칠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물질주의’외의 다른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소유’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철학이 암기 과목의 형태로 변질되더라도 간접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절대 무의미한 변화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단기간에 바꾸기 힘든 것은 교육열과 학벌주의, 이에 따른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다.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동시에 학교나 학원에서는 경제적 성공을 위한 대입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잠시나마, 간접적으로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물질주의 외의 다양한 방법과 가치를 노출시킬 수 있다면 장기적인 변화에 유의미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이 제안한 다섯 가지 대안 중 철학이 포함된다는 사실도 본 해결책의 이론적인 유효성을 뒷받침한다.)



낯선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공간이 필요하다


  둘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곳’을 다양하게 만들고 그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다. 두 번째 제안은 관계성 회복을 집적적으로 다루지만 표현이 비교적 넓기 때문에 ‘해결책’이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울 수 있으나 그 방향성 만큼은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이전 일본 오사카 여행에서 일본의 선술집 문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현지 지인과 함께 방문한 그곳에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술을 기울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선술집은 단순한 술집이 아닌 사회적 교류의 장임을 알게 되었다. 선술집 문화를 우리나라에 도입시키자는 말은 아니지만 현지에서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은 ‘서로 잘 모를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의 존재가 그들이 외로움을 달래는 삶의 중요한 요소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공간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면 우리의 낮은 Impersonal Prosociality(낯선 이와의 사회성)가 서서히 향상되지 않을까? (최근 저자의 집 앞에 이 선술집 문화를 그대로 가져온 일본식 술집이 생겼는데,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매일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사회와 가정에서의 관계 회복이 '소유'에서 벗어나는 길


  어쩌면 물질주의와 관련된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관계’를 통한 ‘존재’로의 인식이 물질주의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개인의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 형성.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절대 허상이 아닌 이러한 해결책이 저자는 분명히 한국 내 물질주의의 영향력을 낮추고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버드의 인류학 교수 조지프 핸릭은 그의 저서 “위어드"에서 익명에 사람에 대한 친화력/친절함과 자발적 조직력에 대해 강조한다. 더불어 다양한 연구 자료들의 가족과의 깊은 관계가 ‘존재’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영향을 강조한다.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의 관계를 회복한다면 철저히 물질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도 우리는 ‘존재’로의 나를 찾고 ‘소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과 박다빈

dada150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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