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기 윤동현
‘올림픽’이라 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펜싱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 부터 온 국민을 짜증나게 했던 축구 8강 ‘침대 축구’의 온두라스전 까지. 하지만 뒤이어 개막했던 ‘패럴림픽’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역시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번에 이러한 패럴림픽의 시각장애인들의 종목인 ‘축구’와 ‘골볼‘이라는 종목을 소개하려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공으로 하는 운동 경기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다는 걸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라 했던가. 축구와 골볼 모두 시각 대신 ‘청각’을 주로 이용한다. 둘다 방울이 삽입되어 있는 공을 이용한다. 축구의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풋살과 규정이 비슷하게 적용되고 파울을 누적 적용시키는 룰이 있는데 이는 농구의 팀파울과 유사하다. 골볼은 양 옆에 사람 3명정도 나란히 누울 수 있는 크기의 골대가 있고, 각 팀당 선수 3명씩 나와 볼을 굴려 넣고 막는 게임이다. 쉽게 말해서 골기퍼 3명이서 공을 굴려 한쪽에서는 골을 넣고 반대편에서는 막으려고 하는 게임이다. 확실히 비장애인들이 하는 운동과 다름없는 효과를 보여준다.
축구, 골볼 등 소위 ‘공놀이’를 시각장애인이 한다는 것은 신기하게 다가온다. 공 안에 방울을 넣는다는 아이디어는 놀랍지만 사소한 것이고, 사소하지만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패럴림픽 종목은 휠체어 농구, 럭비, 펜싱 등과 같이, 실은 골볼과 같이 새로 발명된 스포츠 보다는 원래 존재하던 것이 대부분이다. 기존의 룰 안에서 작은 변화가 장애인들도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패럴림픽은 그 자체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관점으로 사소한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전 세계 인구 15%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운동 경기에 참여하고 열광할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패럴림픽의 많은 장애인 스포츠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부상당한 퇴역군인들의 재활을 위해 생겨났다. 니즈가 확실히 보이기 시작하자 조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분명 필요했지만, 그 니즈를 파악하지 못한 것 뿐일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스스로의 니즈에만 집중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사회에 내재된 어떠한 문제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개개인이 속한 내집단의 관점이 아닌 외집단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패럴림픽의 탄생은 이를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글 ∙ 20기 윤동현 | 검토 ∙ 18기 기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