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7기 김다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 전역을 덮친 지금, 경기 침체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심각한 매출 저하와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위기에 봉착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최근에는 기업 '제너럴 밀스'를 대표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의 국내 매출이 전년 대비 급성장을 보였다는 발표가 연이어 등장했다.
일찍 찾아온 4월의 무더위가 빙과 제품군의 소비를 앞당겼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유독 하겐다즈라는 브랜드가 사랑받게 된 이유로는 충분치 않은 듯하다. 코로나와 하겐다즈, 언뜻 보아서는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두 키워드 간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겐다즈는 유사 제품군 내에서 상대적으로 일상적 수요가 높은 제품이 아니다. 어쩌다 한번 큰 맘 먹고 사먹는, 나름 고급 간식인 셈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경제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급된 국가재난지원금으로 구매력이 오른 소비자들이 하겐다즈를 찾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의 재난지원금 사용이 불가한 상황에서 편의점 등의 소규모 매장에서 접근이 쉬운 식품군 위주로 소비가 이루어진 결과다. 실제로, 세븐일레븐 내 고가 아이스크림(나뚜루·하겐다즈 등) 매출이 21.6% 증가한 반면, 일반 저가형 아이스크림은 9.9%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와 같은 하겐다즈 매출 증가에는 ‘포미족’을 중심으로 한 '작은 사치' 트렌드가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포미족이란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첫 자를 모아서 만든 신조어로, ‘나를 위한(For-me)' 소비를 지향하는 신세대 소비자들을 일컫는다. 포미족의 특별한 소비성향은 경기 침체 속에서 새로운 활로로 부상하며 다양한 산업군의 매출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겐다즈는 건강하고 고급스러운 '소확행' 브랜드로서 가치소비에 주목하는 포미족을 공략한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다.
더불어, 하겐다즈가 매출 증대에 성공한 데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슈퍼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겐다즈는 물가 상승에 따른 원가 변동 등을 이유로 연말연초에 가격을 계속해서 인상해왔다. 동결된 가격으로 넓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고자 하는 여타 아이스크림 브랜드와는 상반된 선택이다. 가격 인상은 소비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만큼 신규 유입 고객은 물론 기존 사용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는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하겐다즈는 높은 가격을 오히려 브랜딩 전면에 내세워 경쟁사가 침범할 수 없는 원조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으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설립 당시부터 타사 제품들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을 책정하며 차별화 전략을 고수해온 브랜드 히스토리가 이러한 움직임에 설득력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소비자의 눈에 '비싼 값어치를 하는 제품'으로 보이기 위한 하겐다즈의 뿌리 깊은 노력이 코로나 사태 속 작은 사치 열풍에 힘입어 제대로 빛을 발한 것이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여러 명이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눠먹는 것을 기피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선호는 ‘같이 먹는 디저트’에서 ‘각자 먹는 디저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예시로, 최근 카페나 빙수 전문점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한 사람이 먹기 좋은 양의 ‘혼빙’ 상품을 출시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혼코노미 문화’는 적은 용량으로 혼자 집에서, 또는 연인이나 가족 등 소수의 인원이 나눠 먹는 아이스크림이라는 하겐다즈의 브랜드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단적으로, 같은 컵 아이스크림에 속하는 ‘투게더’는 용량이 900㎖에 달하지만 하겐다즈의 파인트 컵은 그 절반에 그치는 473㎖에 불과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제품을 공유하거나 냉동 보관해두고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먹게 되는 제품은 청결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시되는 요즘의 소비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외출이 줄어든 1인 가구가 그때그때 원하는 만큼만 사서 남기지 않고 소비할 수 있는 작고 편리한 하겐다즈 컵은 코로나가 증폭시킨 ‘혼코노미’ 트렌드에 최적화된 상품이다.
코로나 확산 직후, 하겐다즈는 언택트 소비 트렌드에 맞춰 벤딩머신이나 언택트 배달 등으로 유통 구조를 빠르게 확장시켰다. 이제 브랜드는 자사 공식몰인 '하겐다즈몰'에 더해 SSG닷컴과 카카오 선물하기, 쿠팡 등의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에서도 공식 판매처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더 빠른 배송을 위해 5000원 이상 주문하면 1시간 이내 즉시 배달하는 배달의민족 'B마트'에도 입점했다.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소비 패턴을 파악하고 빙과류의 기존 유통 과정을 탈피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는 데에 시사점이 있다. 흔한 비유이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하겐다즈는 호수 위 백조와 같다. 그저 고고히 유영하는 듯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을 젓고 있는 백조처럼, 하겐다즈의 매출 성장은 표면적으로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얻어 걸린 행운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적극적으로 시장 개척에 뛰어들어 스스로 일궈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겐다즈의 매출 성장은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와 생활 양식, 그리고 이에 대한 브랜드의 발빠른 대처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 치 앞의 시장 상황도 내다보기 어려운 오늘날, 하겐다즈의 성공 사례가 이토록 험난한 시대에 무엇이 소비자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하는지에 대한 분석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연세대 경영 김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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