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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정 Jul 03. 2017

1-3. 소울푸드

어디? 폴란드?










003. 소울푸드





여행 초반
바람도 쌩쌩 불고 비도 수시로 내리고
폴란드는 이상하리만치 추웠다.









뼈를 파고드는 기온과
세찬 비바람에 놀라
가장 두터운 외투 하나만 계속 껴입고
단벌신사로 돌아다니니

사진도 칙칙
얼굴도 칙칙
마음도 칙칙해졌다.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갔던 날은
날씨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덕분에 수용소의 역사를 닮은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초반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투어를 시작했지만,
우산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비를
살벌하게 맞고 난 뒤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만이 떠올랐다.



"라면 먹고 싶다."

한국에서의 따뜻한 날씨를 뒤로하고
몸에 한기가 가득 해지는 폴란드에 와서
때늦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자니
생각나는 건 오직 라면뿐이었다.








뭘 먹어도 라면 생각이 계속 났고
직접 장을 봐서 저녁을 해 먹기로 한 날,
목표는 하나였다.



"라면을 먹는다."



폴란드의 날씨는
그 별거 아닌 라면을
별거로 만들었다.


저렴한 생활물가 덕분에
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던 그때,
한 켠에 자리 잡은 컵라면을 발견했다.
(육개장 컵라면이 눈에 보이는 순간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라면 찾았다!!!"
"대박!! 이렇게 먼 곳에서 우리나라 컵라면을 팔다니!!"

"후루루루루룩~!!"
"아아...   같다."
"크아~!!"

사발 째 들고 국  모금 들이켜는 순
비로소 온몸이 뜨뜻하게 풀렸.



  먹은 컵라면  그릇은
투뿔 한우와도 맞바꿀  없었다.




...

...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비로소 폴란드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드로 감자가 많이 나오네."
"여기 감자는 우리나라  같은 느낌인가 봐."
"절인 양배추는 항상 나오는구나.
김치나 피클같이."



익숙한 맛들이 많아서인지
음식들은 다 잘 맞았지만,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게 하나 있었다.

웬만한 장정처럼 먹는 셋이건만
사이드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내 생에 찐 감자를  번에 이렇게 많이 먹긴 처음이야..."
"음식 남기기도 미안하다 이제..."
"다음에는 무조건 2인분씩 키자!"
(그래놓고 매번 까먹고 다시 3인분을 시켰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까지
넘치는 정(?) 덕분에
폴란드에서는 배고플 새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불리 먹어도
돌아서면 '입이 심심'해지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길거리에서 사 먹는 소소한 음식들로
얻게 되는 행복이
상대적으로 더 큰 법이다.






식도락 여행
먹방 여행
먹거리 탐방

.
.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식이고

각국의 수많은 현지 음식과
산해진미를 접하기 위해 가는 게
여행이지만,


그래도 이길 수 없는 게 소울푸드다.
(일명 고생하고 먹은 음식)


폴란드 여행에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음식들을 먹고 왔지만

돌아와서 맛있었던 음식을 돌이켜보면
세 명 모두 입 모아서 얘기한다.


"마트에서 사온 컵라면."
"트래킹 때 먹은 핫도그."
"비 쫄딱 맞고 먹은 수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순하다.
다시 먹어도 그때 그 맛이 안 나기 때문.


여행 자체를 머금은 음식이고,
영혼으로 먹은 음식이기에,
항상 소울푸드가 위너다.










보너스 컷 :)









3화 끝 :)





4화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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