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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Apr 02. 2021

면접, 망하다

봄도 아닌, 그렇다고 여름도 아닌 6월의 어느 하루. 대전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 탔다. “ㅇㅇㅇ연구원으로 가주세요.” 전날 비가 내린 탓인지 또는 여름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계절 탓인지, 아니면 긴장한 속내가 드러났는지 양복 속으로 단추를 여민 소매가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눅눅하다.     


‘6년 차 회사원이 신입사원 면접이라니... 서른셋에 신입 면접이라니...’     


택시가 대전천 뚝방길로 접어들었다. 약 한 달 전, 경영지원실장의 선전포고 후 회사의 젊은 직원들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40%가 퇴사를 해야 한다니. 갖고 있던 토익점수 유효기간도 지났는데. 보잘것없는 내 경력으로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지금 시기에 직원을 뽑는 회사가 있나. 왜 정치인 때문에 우리가 이런 피해를 봐야 할까’ 


택시의 창 밖으로 답이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다시 택시는 널찍한 신작로로 들어섰다. 


‘그래도 지난주 필기시험은 꽤 잘 본 것 같은데. 학교를 졸업한 지 6년이 됐지만 아직 머리가 돌아가는군. 까짓 거 면접이라고 특별한 게 있을까. 홍보 업무도 2년 하면서 웬만한 이슈는 적당히 의견을 던지고 설명도 할 수 있으니 다른 애들보다는 잘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망상을 빵처럼 부풀렸다.     


‘합격하면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야 하나, 확 하나 사야 하나. 평당 얼마나 하지? 둔산에서 살아야 할까 아니면 좀 멀어도 고향집에서 출퇴근을 해야 할까. 그러면 차를 좀 바꿔도 되겠군. 신입이어도 월급은 그렇게 짜지 않다고 했는데. 미친척하고 아우디 뽑아도 되나. 여기 살면 앞으로 동창들하고 자주 보겠네’     


ㅇㅇㅇ연구원 경비실을 지나 미터기가 멈췄다. 잔돈 오백 원은 쿨하게 받지 않았다. 쿨한 척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작은 덕을 쌓아보자고 순간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해보자... 로비에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입사동기인데 일 년 남짓 다니다 퇴사하고 두 번 직장을 옮겨 여기로 온 녀석이다. 남들은 한 번 입사하기도 어려운 공기업을 마트 장 보듯 쉽게 왔다 갔다 하는 녀석이다. 부럽다. 친구는 '아아'를 한 잔 사들고 지난겨울에 낳은 아들 자랑을 했다.      


“내가 지금 네 아들 자랑 듣게 생겼냐”     


내 타박에 빙긋 웃더니 간단한 면접 팁을 알려줬다. 전문직 선발도 아니고 지원조직 스탭을 뽑는 자리라서 크게 어려운 질문은 없을 거라고 했다. 영어 면접을 보긴 하는데 짧게 하니까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면접비도 꽤 많이 줄 거라고 했다.     


친구와 다시 보자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면접 대기실에 입장. 신분 확인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다 호명당하고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한 조를 이룬 지원자는 누가 봐도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여성이었다. 함께 면접장으로 입장하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너머에는 예닐곱 명이나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1분. 시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압박 면접도 없고, 자기소개서에 있는 내용 위주로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앗, 얼라리’     


순간, 말 그대로 벽안의 외국인이 갑자기 면접장에 들어왔다. 


‘벌써 영어 면접인가?’ 


본인의 이름을 소개한 외국인 면접관이 갑자기 면접장을 휘어잡았다. 아까 한국어로 대답한 질문이 갑자기 영어로 얼굴을 바꿔 밀고 들어왔다. 옆자리 지원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술술 대답을 이어갔다. 머릿속에 구글 번역기가 들어있는지 막힘이 없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스타트업에서 잠깐 통번역 인턴생활을 했다나 뭐라나. 흡족한 답변과 흐뭇한 끄덕거림이 끝나고 외국인의 눈길은 나를 향했다.      


“um, Mr. Ahn!”     


어영부영 내 소개를 영어로 다시 했고, 이후 장면은 조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어떻게 30분 넘는 면접시간이 지나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옆자리 지원자가 웃으며 말하던 장면이 기억났다. 이후 면접관들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우리말로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다시 한 것도 떠올랐다. 아니, 안쓰러웠던 것인지 조롱이었는지도 불확실하다. 정말 단 한마디도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왜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했다. 이곳에 입사해서 어떤 부서 업무를 하고 싶은지도 말하지 못했다. 서류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불경기에 찾아온 면접을 이렇게 화끈하고 시원하게 걷어찼다. 그 와중에 면접 교통비를 받는 계좌번호는 혹시나 잘못 알아보지 않도록 정자로 기입했다. 죄인처럼 건물을 빠져나왔다.     


카카오로 호출한 택시가 신작로를 지나 대전천 뚝방길로 내려섰다. 영화 '테넷'의 카체이싱 장면처럼 아까 왔던 길을 거꾸로 짚어 돌아가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생각났다. 요즘 배운 말이 ‘화이팅’인데 아침에도 나에게 그 말을 외쳤다. 아내 배 속에서 크고 있는 둘째도 떠오른다. 초음파 사진이 엄마를 닮았다.      


‘몇 달 안에 구조조정이 끝날 텐데 희망퇴직을 하고 나면 앞으로 애도 둘인데 어떻게 하지. 다른 면접 기회가 와도 지금 같을까. 결혼할 때 혼자 벌어서 잘 살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나. 왜 영어로 면접을 봐야 하나 한국에서. 나는 대학 다니면서 어학연수도 안 해보고 뭘 했을까. 와이프에게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집에 가서 아이 얼굴을 보지. 왜 아까 그 질문에 대답조차 못하고 먹통이 됐을까’     


아까 대답하지 못한 영어문장이 그제야 떠올랐다. 어려운 단어도 없는데, 지금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면접이 있긴 한데 신경 쓸 필요 없다던 동기도 갑자기 미워졌다. 


'그러고 보니 너는 일본어 잘하잖아 이ㅅㄲ...'


"서른 넘도록 뭐한 걸까 나는..."


대전역을 출발한 KTX는 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서울역에 들어섰다. 방금 전까지 면접장 건물에 머물렀던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인데도 기차를 타고 오는 시간이 끝도 없이 긴 것 같았다. 새빨간 얼굴로 내렸다. 전철을 타고 내려 집 앞 골목까지 오는 동안에도 새빨간 얼굴은 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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