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어느 날, 결혼을 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밤늦게 돌아오는 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가장 특별한 긴장의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서민 가정의 자식으로서 택시를 타는 일은 특별한 일이었다. 택시는 매우 긴급하고 어쩔 도리가 없는 특별한 상황에나 탈 수 있는 대중(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쉽게 탈 수 없는) 교통수단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까지도 택시를 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어쩌다 택시를 타면 미터기 위에서 열심히 달리는 말을 벌벌 떠는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취직을 하자 택시 공포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택시요금은 생각보다 쌌다. 돈을 버니 택시가 비로소 대중교통수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출근, 퇴근, 회식, 주말 약속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여자 친구는 내가 택시비를 1년만 아끼면 프라다 가방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취직부터 결혼까지 약 3년 반 동안 꼬박 택시로 출퇴근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다양한 택시를 만났다. 모범택시급으로 친절한 택시부터 술에 취한 택시, 말이 많은 택시, 음악소리가 큰 택시, 냄새나는 택시, 교회 다니라고 전도하는 택시, 카드 거부하는 택시까지.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버전의 택시를 타봤다고 생각했다. 1부터 10까지 모든 레벨의 택시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새로운 레벨의 택시를 탔다.
결혼식은 고향에서 하기로 했다. 직장은 서울이지만 결혼식은 집안 행사인 만큼 고향에서 하는 것이 타당했다. 예식 전날인 금요일, 원활한 예식을 위해 퇴근하면서 회사 근처에서 차를 렌트해왔다. 장거리를 조금 밟아서 가야 하는 일정이라 6기통 엔진의 고급차를 빌렸다. 토요일,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 5시 반에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8시 반에 미용실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함께 가져가야 하는 폐백음식이 미용실로 도착하지 않았다. 발을 동동거리다 퀵이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고향으로 출발했다. 토요일 오전이라 차가 많았다. 뒷좌석에 아내와 드레스 헬퍼를 태우고 평소보다 조금 더 밟았다. 티맵의 권고와 알림을 무시하고 운전해 11시 50분 예식장 도착. 1시 예식에 맞춰 다행히 적당한 시간에 도착했다.
예식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인사를 하고, 다시 아내와 서울로 올라왔다. 토요일 저녁이라 여지없이 길이 밀렸다. 티맵 화면에는 계속 빨간색 선만 보였다. 여유 있게 렌트카 반납 시간을 밤 10시로 맞춰놨는데 점점 시간이 간당간당해졌다. 집에 도착해 짐을 부리니 저녁 9시 반, 다행히도 반납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됐다. 지금처럼 쏘카가 집 앞에 있다면 좋았겠지만 렌트카를 반납하러 다시 여의도로 향했다.
정시에 차를 반납하고 여의대로로 나왔다. 집으로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는데 토요일 밤 여의도에는 택시가 별로 없다. 직장인이 없으니 택시도 없다. 그대로 한참을 기다려 맞이한 택시에 오르자 결혼식을 치른 그날 가장 신경 쓰이고 긴장되는 순간이 시작됐다.
차에 탄 순간부터 택시는 이상했다. 운전석은 거의 수평으로 젖혀져 있었고 택시 기사도 의자 각도를 따라 거의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합정역 지나 서교동 사거리로 가주세요.”라고 목적지를 말했지만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차는 출발했고 온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기사는 앞을 보지 않았다. 계속 사방팔방 두리번거렸다. 말이 좋아 두리번거린다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어딘가에 초점을 두고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시선의 방향도 대중없었다. 계속 고개를 흔들거렸다. 차는 마포대교에 올랐다. 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내려가려면 4차선이나 5차선으로 가야 하는데 차는 1차선을 달렸다. 풀악셀이었다. 금세 시속 120km를 넘어섰다. ‘나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새로운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마포대교 북단에서 급하게 속도를 줄인 택시는 차선을 옮겨 다행히 강변북로로 길을 갈아탔다. 기사는 여전히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영화에서 약을 하면 저런 모습이던데, 혹시 술이 아니라 약을 한 택시기사인가. 걱정을 넘어 영화 같은 상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강변북로 본선에 오른 택시는 다시 풀악셀로 속도를 올렸다. 마포대교 북단부터 합정으로 빠지는 양화대교 북단까지 고작 3km 남짓한 짧은 구간이다. 여기를 시속 140~150km로 달려 나갔다. 앞서 있던 차들이 휙휙 뒤로 사라졌다. ‘이렇게 사고가 나서 죽는 것일까. 결혼 첫날인데. 내일 인천공항에 가야 하는데.’ 몇 년간 택시를 타면서 겁이 난 적은 없었는데 그날 그 택시는 정말 겁이 났다.
천만다행으로 택시가 무사히 양화대교 북단에서 합정으로 나왔다. 완만한 우회전 오르막길을 따라 택시가 속도를 줄이자 나는 (마음은 무척 다급하지만) 짐짓 침착한 목소리로 우회전 진입로 끝에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서교동 사거리까지 신호는 두 개, 길은 500m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더 이상 택시를 탈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한 위치에 제대로 내려줄지 의심도 들었다. 운전석에 누워 운전하던(정말 전방주시를 하긴 한 것일까) 기사는 다시 뭐라 중얼거리며, 여전히 고개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차를 멈췄다. 우회전 진입로 옆 가전제품 재활용센터가 있는 후미진 곳이었다. 카드결제를 하며 문을 열고 오른발을 밖으로 뺐다. 여차하면 굴러서라도 내릴 요량으로.(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결제 완료 알림 소리가 들리자마자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바람처럼 내려 문을 닫았다. 택시는 저 멀리 상수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내린 자리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안도하는 마음, 그리고 온갖 좋지 않은 시나리오가 떠올랐던 머리가 뒤엉켰다. 전여친 현와이프에게 이 얘기를 해야 할까. 의외로 내 얘기를 심각하게 듣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다.
밤 11시. 집 앞 ㅇㅇ가든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우리 둘은 깔깔거리며 다음날 신혼여행 준비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덧. 결혼 이후 택시는 다시 긴급하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타는 교통수단이 됐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더더욱 특별한 일이 됐다. 출근길 택시는 어림도 없는 일이며, 회식을 마친 밤에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스정류장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