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로 개명하기 전 국민학교 소속으로 맞은 마지막 운동회. 운동장 교단 옆 화단 앞에서 반 대항 줄넘기 대회가 열렸다. 각 반에서 줄 좀 뛴다는 대표선수 한 명씩 나와 자웅을 겨루는 프로그램이지만 같은 시간 운동장에서는 다수가 참여하는 메인 경기가 펼쳐지고 있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경기였다. 긴장감과는 달리 승부 방법은 단순했다. 7명의 선수가 동시에 줄넘기를 시작해서 죽지 않고 가장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개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줄을 빨리 넘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오래 버티면 되는 경기였다. 줄넘기와 상관없이 제기차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줄넘기 경기 대표에 뽑혔다. 그리고 얼떨결에 2등을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한 명씩 줄넘기에 발이 걸리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열심히 두 발을 뛰었고 두 명이 남았을 때는 강렬히 우승을 기대했다. 그런데 야무진 꿈을 꾸던 바로 그 순간 발이 줄에 걸렸다.
정확히 20년이 지난 5월의 어느 날 사내 체육대회. 이곳에서도 줄넘기 대회가 열렸다. 방식은 국민학교 당시와 달라졌다. 40명씩 6개 조(A, B, C, D, E, F)로 나뉘어 3개 조가 동시에 줄넘기를 시작했다. 가령 A조가 줄넘기를 시작하면 B조 직원들이 A조 직원들과 짝을 지어 개수를 세어 준다. 6개 조의 줄넘기가 끝나면 그중 줄넘기 개수가 가장 많은 직원이 백화점 상품권(무려 10만 원)을 가져가는 룰이었다. 승자독식은 어릴 때나 성인이 돼서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승자독식의 달콤함은 21세기가 20세기보다 더 강렬해졌다.
40명씩 3개 조가 동시에 줄넘기를 시작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50개를 넘기지 못했다. 몇몇 직원은 100개를 넘겼고 각 조에서 겨우 한두 명 정도만 200개를 넘겼다. 일찍 줄넘기를 끝낸 직원들은 운동장에 앉아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잡담을 나눴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무 손잡이에 묵직한 고무 재질의 줄이 달린 줄넘기는 윙윙 소리를 내며 나를 가운데 두고 쉼 없이 돌았다. 400개 정도 넘었을까.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3개 조 120명 중 죽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600개를 넘으니 부장 아저씨들이 가까이와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걸리적거린다. 그냥 멈춰 버릴까. 이 정도면 상품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은 놀고 있는데 나 때문에 혼자 줄넘기 개수를 세고 있는 직원분에게도 미안해졌다. 하지만 조금 더 뛰어 안정권에 들고 싶었다. 아직 후반부 3개 조가 뛰어야 하니까. 사내 아나운서가 마이크로 타박을 준다. 너무 오래 뛰면 다음 프로그램 진행에 차질이 생긴단다. 대략 100개 내외에서 끝날 것이라 계산했나 보다. 800개를 조금 넘기고 줄넘기를 멈췄다.
이 경기에서 결국 또 2등을 했다. 후반부 3개 조에서 900개를 넘긴 직원이 등장했다. 듣기로는 권투를 몇 년 다녔다고 했다. (심지어 잘생겼던) 그 직원은 줄넘기를 오래 뛰어도 아나운서가 타박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줄넘기 쪽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대학 시절, 친구와 다이어트 대결을 했는데 밤마다 학교 운동장에 나가 줄넘기를 뛰었다. 처음에는 2천 개를 뛰다가 점점 개수를 늘려 3천 개씩 뛰고 들어왔다. 대략 100개를 뛰는데 1분이 걸리지 않으니 중간에 멈추는 시간을 고려하면 3천 개를 뛰는데 30분 정도 걸렸다. 처음에는 한 번에 100개도 뛰지 못하다가 점점 늘어 나중에는 한 번에 천 개씩 뛸 수 있게 됐다. 서너 번의 시도로 3천 개를 거뜬히 하고 나면 괜히 뿌듯하고 몸도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줄넘기를 오래 뛰려면 처음 100개가 중요하다. 100개 정도 뛰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리듬을 찾아야 한다. 리듬이 궤도에 오르면 힘을 쓰지 않고도 줄넘기는 계속 돌아간다. 타탁-타탁-타탁-타탁. (다이어트 대결의 결과는 기억나지 않지만 줄넘기로 감량은 성공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줄넘기 시험을 본다고 한다.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아무튼 이 충격적인 소식을 첫째 아이와 태권도 학원 상담을 하면서 듣게 됐다. 줄넘기가 뭐라고 시험씩이나... 그래서 그런지 태권도 학원에서도 줄넘기가 주요 커리큘럼이었다. 태권도 수업 전 워밍업 운동으로 줄넘기를 해야 하고 아이가 잘 못하면 사범님이 가르쳐 준다고 했다. 학원 벽 한쪽에는 핑크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컬러의 줄넘기가 수십 개 정도 걸려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일 년 여 앞둔 첫째 아이는 과연 줄넘기를 할 수 있을까. 태권도 학원을 등록하고 돌아오며 쿠팡으로 우선 '김수열 줄넘기 아동용'을 주문했다.
다음날, 아내가 카톡으로 짧은 동영상을 하나 보냈다. 처음 태권도 학원에 간 첫째의 모습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줄넘기를 폴짝폴짝 뛰고 있는데 양손에 하나씩 줄넘기를 쥔 첫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양 손의 줄넘기를 뒤로 붕붕 돌리고 있었다.
팔을 돌리고, 뒤꿈치에서 시작한 줄넘기가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고, 이내 두 발을 모아 뛰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묶음으로 동기화가 필요한 모양이다. 첫째 아이의 동기화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팔로 줄넘기만 돌리고, 앞으로 잘 넘기지도 못하고, 돌린 줄은 제멋대로 떨어지고, 눈 앞에 돌아오는 줄넘기를 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줄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발을 뛰는 지난한 과정이 하나씩 지나가자 아이는 차츰 줄을 넘을 수 있게 됐다. 학원을 다닌 지 한 달 정도 됐을까. 아이는 줄넘기를 30개나, 중간에 걸리지 않고, 뛸 수 있게 됐다.
나는 두 발을 모아 뛰는 방법으로 줄넘기를 하지 못한다. 할 수는 있지만 금방 줄에 걸려 버린다. VJ특공대에 나오는 권투 체육관의 모습처럼 한 발씩 번갈아 뛰는 게 편하다. 왼발을 앞에 놓고 오른발을 뒤로 빼고 두 번, 다시 발을 바꿔 오른발을 앞에 놓고 왼발을 뒤로 뺀 채로 두 번. 이렇게 번갈아 뛰어야 천 개를 넘을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책을 찾아보며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뛰는 게 편했다. 두 발을 모아 뛰더라도, 혹은 한 발씩 엇갈려 뛰더라도 결국 줄이 발바닥을 지나가는 순간에는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떠 있지 않나. 내게 편한 리듬이 중요하다.
아이는 늘어나는 줄넘기 개수가 신기하고 재미있던지 오밤중에도 불구하고 퇴근한 아빠를 놀이터로 이끌고 나가 줄 넘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츰 줄을 넘기 위한 본인만의 리듬을 찾는 것 같다. 줄넘기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하나씩 리듬을 찾고 있다. 글씨도 쉬운 단어는 점차 익숙하게 쓰게 되고, 자고 일어나는 생활 패턴도 본인의 기준이 생기고 있다. 요즘 아이가 가장 주력으로 미는 유행어도 ‘내 맘대로야. 그것도 몰라?’
날이 따뜻해지며 놀이터로 아이와 줄넘기를 들고 내려갔다. 아이는 점점 개수를 늘리는 도전을 하고 있다. 스스로 방법을,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조만간 친척 결혼식이 있다. 나도 아이 옆에서 다시 줄넘기 손잡이를 잡고 리듬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