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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Mar 15. 2021

밤이 내렸어

약 10년 전,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렸다. 연예인 자녀들의 솔직하고 귀여운 모습이 큰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아이들이 정답의 힌트를 설명하는 퀴즈 코너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제시어를 보고 아이들은 저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을 했고 대부분의 어른(부모)들은 좀처럼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성인의 상식과 발상으로는 도무지 아이들의 설명을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스튜디오의 부모(연예인)뿐만이 아니었다. 시청자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면 속 아이들을 바라보게 됐는데 그런 공감이 인기의 요소였다. 심지어 방송이 끝난 후에도 식사자리에서 방송에 나왔던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설명이 자주 회자되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의 독창적인 설명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고 나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면서 다른 지점에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됐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독창적인 표현(묘사)은 그들이 가진 어휘의 범위 안에서 찾아낸 최선의 표현방법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성인의 영역으로 다가갈수록 당연히 구사하는 어휘가 다양해지고 보다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반면 표현의 참신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아이들도 종종 나를 깜짝 놀라게, 그러나 이내 미소 짓게 만드는 표현을 하곤 한다. 정신없는 기억 속에서 휘발되기 전에 그중 몇 개를 조금이나마 기록해본다.     


[밤이 내렸어]

어둑어둑 어스름이 지던 어느 날 저녁,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밤이 내려요.”

두 돌이 겨우 지난 아기에게 밤은 귀신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시간이다. 제 딴에는 밖으로 나가서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아 말한 문장이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밤이 됐어’보다는 ‘밤이 내렸어’를 공용으로 쓰게 됐다. 이 표현을 입으로 말하면 할수록 좋다. 어딘가 ‘밤이 됐어’보다 낭만적인 느낌도 들고, 어둠으로 물드는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밤이 내려오는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아이는 지금도 밤이 내린다고 말한다.     


[치킨에 김치가 들었어]

한동안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찾아 이 브랜드, 저 브랜드를 헤맸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는 몰랐다. 대부분의 후라이드 치킨 튀김옷 속에 매운 양념이 돼 있을 줄은... 그게 아니면 카레양념이 있거나... 

하루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브랜드로 후라이드 치킨을 시켜 아이에게 조금 잘라줬다. 관심을 보이며 몇 번 치킨을 씹던 아이는 이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치킨에 김치가 들었어”

치킨이 맵다는 뜻이었다. 평소 빨간색 음식은 매운 거라며 케첩도 먹지 않는 아이가 빨간 음식의 대명사로 김치를 선택해서 표현했다. ‘빨간색=김치=매운맛’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매운맛을 김치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결국 아이들 치킨은 여러 브랜드를 전전하다 교촌치킨 허니콤보로 최종 선정됐다.)      


[아빠는 깃털이 많아]

층간소음 가해자인 아이들에게 매일 집에서 뛰지 말라고 큰소리치지만 다행스럽게 아직은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TV를 보다가도 지나가던 아이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면 두다다다 뛰어와 양반다리 위에 앉는다. 첫째가 하루는 뛰어와 다리 위에 앉더니 말했다.

“아빠는 다리에 깃털이 많아서 따가워”

나는 다리털이 많은 편이다. 많다. 그리고 해당 발언의 시기가 겨울이라 털이 다소 짧아진 상태였을 것이다. 또 아이는 팬티바람으로 돌아다니다 내게 안겼으니 다리가 따가웠을 것이다. 그래도 ‘깃털’로 우아하게 표현해줘서 아이에게 고맙다. 아니라면 진화가 덜 됐다는 뜻일까...     


[용기 낼 게]

이 표현은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신선한 표현은 아니다. 다만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고 요즘 기분 내키는 대로 거의 모든 상황에 ‘용기를 내고’ 있다.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볼 때, 컵에 직접 물병을 들고 물을 따를 때, 엘리베이터 버튼을 가장 먼저 누를 때, 언니로서 동생에게 뭔가를 보여줄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언니니까 할 수 있지?]

“응, 용기를 낼게”

오늘은 힘껏 용기를 끌어올려 시리얼이 담긴 그릇에 우유를 흘리지 않고 따랐다.     

나도 용기를 내서 아이가 더 많은 단어를 쓰고 배울 수 있게 옆에서 도와줘야겠다. 날마다 퇴근하면서 ‘오늘은 한글 공부를 시켜야지’라고 다짐하지만 거의 매번 피곤함이 다짐을 이긴다. 오늘도 출근길에 같은 다짐을 했지만 저녁자리가 생겼고 집에 오니 어느덧 밤이 내렸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신비아파트’ 캐릭터 이름을 하나씩 연필로 써줘야겠다. 그리고 나와 아내를 웃음 짓게 만드는 아이들의 문장도 자주 써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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